권토중래 (捲土重來) 

捲(말 권) 土(흙 토) 重(거듭 중) 來(올 래)

실패 후 재기를 다짐하는것을 비유한 말.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 두목은 패배의 수치를 참지 못하고,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채 자결해 버린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수치를 삼키고 참는 것이 바로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재능있고 뛰어난 이들이 많은데,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올 것은 알지 못 하였구나(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捲土重來) 란 실패 후 재기를 다짐함을 비유한 말이다.

  




근열원래 (近悅遠來)

近(가까울 근) 悅(기쁠 열) 遠(멀 원) 來(올 래)

좋은 정치의 덕(德)이 널리 미치는것을 비유한 말

  

논어 자로(子路)편의 이야기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다.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채(蔡) 등의 나라를 돌다가 당시 초(楚)나라에 속해 있던 섭읍(葉邑)에 이르렀다. 


이 당시 초(楚)나라에는 심제량(沈諸梁)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는데, 그의 봉지(封地)가 섭읍이었으므로, 스스로 섭공(葉公)이라 했다. 


섭공은 공자를 보고, 그에게  정(政) 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는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政)이란, 가까운 데서는 기뻐하고, 먼데서는 오는 것입니다(近者悅, 遠者來). 이는 정치를 잘 하면 인근 국가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게되어 기뻐하고, 먼 나라의 사람들도 정치 잘하는 것을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것을 뜻한다. 


근열원래 (近悅遠來) 란 좋은 정치의 덕(德)이 널리 미침을 비유한 말이다.

  




미능면속 (未能免俗)

未(아닐 미) 能(능할 능) 免(면할 면) 俗(풍속 속)

전해 내려온 풍속을 따를 수 밖에 없음을 뜻함.

  

세설신어 임탄(任誕)편의 이야기다. 진(晉)나라 초, 완함(阮咸)과 숙부 완적(阮籍)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길의 남쪽에 살았으며, 그밖의 완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길의 북쪽에 살았다. 


그런데 북쪽의 완씨들은 모두 부유했지만, 남쪽의 완씨들은 매우 가난했다. 당시에는 매년 7월 7일에 겨울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마치 잘 사는 티를 내는 시합을 하는 것같았다. 어느 해 7월 7일, 관습대로 북쪽의 완씨들은 옷을 꺼내 말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훌륭한 비단 옷들뿐이었다. 하지만 남쪽의 완함과 완적은 이 일에 대해 이미 신물이 난 상태인지라, 완함은 긴 장대에다 낡은 포대기와 헌 바지를 걸어 놓고 햇볕을 쪼였다. 


어떤 이가 이를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완함에게 물었다. 완함은 웃으면서  풍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을 뿐이오. 라고 대답했다.  


미능면속(未能免俗) 은 전해 내려온 습속을 따를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죽두목설 (竹頭木屑)

竹(대 죽) 頭(머리 두) 木(나무 목) 屑(가루 설)

못 쓰게 된 것들을 모아 후에 다시 활용하는것을 비유한 말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의 이야기다. 진(晉)나라 초, 파양( 陽)이라는 곳에 도간(陶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그는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오히려 검소했다. 도간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자랐다.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절약하였다. 


그가 배를 만드는 일을 관리하던 때, 이 과정에서 많은 대나무 뿌리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은 시켜 이것들은 전부 모아 기록해 놓도록 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어느 해, 새해 모임이 있었던 날, 많은 눈이 내린 후 날씨가 풀리자, 길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도간은 즉시 나무 가루을 꺼내 길위에 뿌렸다. 그는 후에도 많은 폐품들을 모아서 여러 가지 급한 곳에 사용하였다.


죽두목설(竹頭木屑) 이란 못 쓰게 된 것들을 모아 후에 다시 활용함을 비유한 말이다.

  




호의불결 (狐疑不決)

狐(여우 호) 疑(의심할 의) 不(아닐 불) 決(터질 결)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것을 비유한 말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다.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의심많은 여우의 성질을 이용한 사람들의 지혜. 이는 사람들이 여우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의불결(狐疑不決)이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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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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