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7월호 - 21세기 첨단 연구소 6 

 '서울대 컴퓨터 신기술 연구소' 

 

 

관악산이 에둘러 있는 서울 구석에 앉은 서울대학안에서도 한참을 쑥 들어간 곳. 6월 대학가 분위기라고 하기에는 낯설기까지 한 적막함이 감도는 관악산 산자락 한켠. 그곳에 서울대 컴퓨터 신기술 공동연구소(이하 신기술 연구소)가 있다.

 

막 풀을 먹인 빳빳한 이불이 살갗에 닿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연구소 건물은, 지은지 얼마 안된 탓도 있지만 푸른 빛 감도는 색과 미끈한 외형이 유난히 첨단 냄새를 풍긴다.


컴퓨터 산업에서도 더욱 앞선 '新(신) 기술' 개발의 본바닥으로 자리 매김받고자 하는 신기술 연구소는 전기, 전자, 제어계측, 계산통계, 컴퓨터공학과 등 컴퓨터 관련학과를 모두 아울렀다. 각 과 교수들의 책임하에 전공에 맞춰 석,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 혹은 박사들이 연구진용을 짜고 있다.

 

물론, 필요할 때는 누구든 합류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이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여타 연구소와는 달리 "장기적인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미래지향적 신기술, 기초 이론 연구"가 이 연구소의 기본 이념이다.

 

 


함께 연구하는 '공동' 연구소촌에 자

컴퓨터의 신기술 개발은 컴퓨터 지식말고도 여타 공학 분야의 광범위한 지식을 요구한다. 서울대 신기술 연구소는 그런 면에서 '사면이 관련 연구소로 둘러싸인 지리상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부설 자동화시스템 공동연구소, 기초 전력 공동연구소, 반도체 공동연구소, 정밀기계 설계 공동연구소 등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련 첨단연구소들이 들어앉을 예정으로 있어 일부러 의도치 않았던 연구단지 청사진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전엔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들만 컴퓨터가 있었죠. 희소성도 있고 해서 폼도 났었는데, 지금이야 컴퓨터없는 연구소가 있습니까. 컴퓨터가 없이는 연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는 분야가 없죠. 그만큼 컴퓨터는 어느 한 곳 참녜하고 있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주변 학문과의 연계는 필연적"이라고 연구소의 출판과 자료 관리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박창현 박사는 말한다.

 

관련 분야 연구소가 가까운 이웃이라 정보 교환이나 보완 작업이 쉬워 연구 시간도 단축되고, 개발한 기술을 실제 분야에 빨리 적용해 볼 수도 있어 좋은 환경이다.

 

신기술 연구소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사촌과의 좋은 관계는 물론, 멀리 있지만 심리 적으로 가까운 친척인 전국 대학 컴퓨터 관련학과 교수들을 연구소 소속으로 두어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있 다.

 

 


초특급 신인의 화려한 등장

연구소에 불을 밝힌지 이제 두 해. 지난 1989년 10월 5일 설립된 신기술 연구소는 1년만에 삼성문화재단이 전액 기부한 35억원으로 1992년 5월 5층짜리 연구 등지를 마련했다.

 

이 안에 컴퓨터 설계 연구센터, 컴퓨터 네트워크 연구센터, 기초연구부, 응용연구부, 신기술연구부 등의 순수 연구 부서와 신기술 정보부와 기획부, 행정실 등의 연구 지원부서들이 있다.

 

각 부별로 보면, 기초연구부에는 컴퓨터구조, 시스템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공학, 프로그래밍 언어, 데이터베이스, 운영체제 연구실이 있다.

 

응용연구부에는 음성 및 화상인식, 인공지능, 정보통신, 설계자동화, 기계번역, 실시간시스템 연구실이 있고, 제 5실 연구실까지 있는 신기술 연구부는 차례로 중형컴퓨터 시스템, 고성능 워크스테이션, 지능형 컴퓨터 시스템, 고속 병령처리 시스템, 멀티미디어 연구실 등이 속해 있다.

 

연구 지원을 위한 신기술정보부에는 교육지원실, 출판자료실, 대외 협력실이 있다. 1992년 9월 16일 연구동 개관식을 가진 신기술 연구소는 비록 일년 밖에 안 된 신인이지만, 그냥 '신인' 이라고만 말하기엔 이들이 지닌 무게가 너무 무겁다.

 

신인은 신인이지만 초특급 신인이다. 연구인력이나 규모 면에서도 그렇다. 이들이 일궈낸 실한 성과들은 그걸 증명한다. 이미 보도된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지난 연구동 개관식 때 발표한 것들을 연구실별로 보고, 이후 계획도 함께 들어보자.

 

 


설계자동화 연구실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칩의 집적도를 높였고 칩 설계도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하게 됐다. 설계자동화 연구실은 바로 이 정밀한 칩 설계 툴 개발이 목표다. 캐드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로 구현하는 캐드 가속기 연구도 더불어 진행중이다. 

 

이들이 개관전시회 때 내놓은 SNUMP(마이크로프로세서)는 워크스테이션 시스템의 성능을 극대화시킨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이다. SNUMP는 강결합 다중 프로세서를 채택, 제한된 능력을 가진 프로세서로도 프로세서 보드는 최대 6개, 메모리 보드 4개를 장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텔의 80486 프로세서 를 장착했고, 입출력 용도로 채택한 EISA 버스는 기존 PC들과 호환성이 있어 SUNMP로 확장해도 기존 주변장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한 제품이다.

 

 


정보통신 연구실

음성과 화상 데이터 전송을 위한 종합정보통신망 (ISDN) 구축에 관한 연구를 맡은 정보통신연구실은 음성과 화상 인터페이스를 위한 멀티미디어 단말기 설계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정보통신 연구실에서 선보인 다기능 종합정보통신망(ISDN) 카드는 AT이상 PC에 장착하면 PC로도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기능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다. 이 카드는 협대역 ISDN 환경에서 PC를 이용한 음성, 데이터, 비디오 이미지 등의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을 가능케 한다.

 

 


실시간 시스템 연구실

실시간 시스템 처리의 응용분야는 광범위하다. 예컨대, 공장자동화, 우주항공시스템 제어, 온라인 트랜잭션 처리 분야에서 제한된 시간내에 반드시 처리, 수행해야만 하는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는 것이다.


개관 기념 전시회에는 소형 컴퓨터 운영체제인 SNUDOS(Seoul National University's Disk Operating System)를 개발, 발표했다. MS-DOS, PC-DOS와 호환성이 있고 이제껏 공개된 기존 도스 시스템 사양들을 만족하고 있다. 호환성은 유지하지만, 내부 수행 알고리즘이나 자료 구조는 기존 도스와 상관없이 설계하고 구현돼 서로 다른 운영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음성 및 화상 연구실

음성과 화상을 통합한 자연 맨-머신 (Man-Machine) 인터페이스 시스템 개발과 제 6세대 컴퓨터라 일컫어지는 신경회로망 컴퓨터 구현과 응용 연구 등이 음성 및 화상 연구실의 연구몫이다.

 

특히, 음성연구에서는 우리말 중 고립단어와 연결단어 인식 문제, 음성 합성 장치 연구 등을 바탕으로 한국어 명령어 인식 시스템 개발에 애쓰고 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내용을 듣고 이해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디지탈 신호처리 (DSP) 칩이 내장된 보드를 이용한 '음성인식 도스 명령기'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사용자가 컴퓨터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 개발에 애쓴다.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윈도우용 한글 워드프로세서, '위한글'도 이 팀에서 나온 열매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연구실

유닉스 및 도스 위주의 시스템 소프트웨어들을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 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시스템 개발을 위해 멀티미디어 또는 X-윈도우 시스템 구현 및 응용 연구, 분산 및 병렬 컴퓨터 개발을 위한 환경구현 및 응용 연구를 담당한다.

 

기념전시회에는 조합형 한글로 작성된 문서를 음성 신시사이저를 통해서 읽어줄 수 있는 한글 음성합성시스템을 내놓은 시스템 소프트웨어 연구실은,앞으로 특정 시스템에 국한되지 않고 완벽하게 호환되는 멀티미디어 지원 체제 연구, 각종 병렬 수행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분산 및 병렬 컴퓨터 운영 체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인공지능 연구실

컴퓨터도 사람처럼 작동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목적이다. 전문가 시스템, 객체 지향형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시각 시스템 등을 연구하며, 궁극적으로는 멀티미디어를 지원하는 것이 인공지능 연구 실의 목표다.

 

개관 기념 발표때도 가장 많은 전시물을 내놓은 인공지능 연구실은 SUN 워크스테이션상에서 C언어로 구현한 전문가 시스템 구축언어,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객체 지향 데이 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객체지향 전문가 시스템 셀인 POKET 시스템, 지식 기반 영상검색 시스템 등을 발표했다.

 

이중, POKET 시스템은 객체 지향적 지식 표현 기법을 지원하는데, 사실 지식, 휴향 규칙 지식, 절차적 지식 등을 모두 동원해 전문가 시스템을 구축을 쉽게 해 주는데 다중 윈도우 환경의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기계번역 연구실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르는 우리 나라의 외국어 배우기 열풍이 기계 번역 연구실의 활성화 정도와 반비례 할 것으로 보인다. 기계번역 연구실은 우리 말을 영어로, 영어를 우리말로 기계 번역하고, 우리 글 문법을 교정하는 시스템을 개발중이다.

 

작년 전시회에는 영한기계번역시스템인 'KSHALT-S'를 발표했다. 단어 중심이 아닌 숙어 중심의 번역을 도입한 이 시스템은 사전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들어 온 문장에 쓰인 숙어적 표현을 이해하고 사람이 한 것만큼이나 매끄럽게 번역하는 시스템 개발이 목표다.

 

 

 

 

소프트웨어공학 연구실 

자동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케이 (Computer Aided Software Engneering) 환경과 방법론 지원 시스템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이와 더불어 소프트웨어 품질과 개발 비용 예측을 위한 연구도 수행한다.

 

개관기념 전시회에는 시스템 분석가와 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데 도와주는 구조적 설계를 위한 그래픽 편집기, ADVISE/SD를 전시했다. 그 외에도 방법론 지원 시스템을 위한 모델링 도구, GUIDE와 비용산정도구인 ADVISE/CET, 구 조적 분석 지원 케이스 도구인 ADVISE/SA 등을 발표했다.

 

 

 

데이터베이스 연구실

데이터베이스 연구실은 문자, 화상, 그래픽, 음성 등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저장, 관리, 검색하는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과 각 미디어 타입의 데이터가 멀티미디어 정보로 입력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한다.

 

입력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리, 저장하고 상호 관련 성을 유지, 관리하여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저장 시스템 역시 이들이 연구 진행중이다. 전시회에는 관계 데이터베이스를 접근하는 사용자에게 편리한 응용 생성 환경을 제공하도록 하는 윈도우 기반 응용생성환경인 WADE를 발표했다.

 

 

 

컴퓨터 아키텍처 연구실

고속, 고성능 범용 다중 프로세서 시스템의 구현을 목표로 연구를 수행하는 컴퓨터 아키텍처 연구실은 이를 위해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병렬 처리 환경에 적합한 계산모델, 혼합형 계산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병렬 컴퓨터 구조에 관해 연구한다.

 

하드웨어 원형 시스템의 구현으로 기술을 축적해 최종적인 범용 다중 프로세서 시스템에 적합한 프로그램 개발 환경을 구축키 위해 병렬 프로그래밍 언어, 컴파일러, 디버거를 설계, 구현을 연구중이다.

 

 


운영체제 연구실

높은 병렬 하드웨어 구조를 가진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 개발을 목표로 한다. 또한 운영체제 국산화와 한글화에 관한 연구, 차세대 컴퓨터용 운영 체제 개발도 역시 운영체제 연구실의 몫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연구실

프로그램을 직접 작성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이들의 연구 목적이다. 고수준의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와 국방 관련 분야와 적합한 국방 표준 언어의 개발과 이를 지원하는 환경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와 함께 실세계의 객체를 중심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게 하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을 목표로 한다.


특히, 고수준의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의 요구 사항을 분석해 고수준의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를 설계하고, 장기과제로서는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의 컴파일러와 링커 등의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지원 환경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형컴퓨터 개발, 마냥 꿈만은 아니다

신기술 연구소는 지금 한창 연구소 법정화를 추진중이다. '법정화'란 연구소 설립의 목적과 수행할 프로젝트 등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제출하면 이를 정부에서 검토, 연구소 존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법정화되면, 그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정부 측의 지원이 제공된다.

 

신기술 연구소에서 현재 추진중인 가장 큰 프로젝트는 '대형 엔터프라이즈 서버 개발', 즉 간단히 말해 대형컴퓨터 개발이다. 상공부와 국내 기업체, 서울대 신기술 연구소가 공동 작업하는데 신기술 연구소가 총괄 기관이다.


"글쎄, 서울대가 과연 할 수 있냐 없냐로 웅성거리고들 있지만, 완벽한 상용화 제품은 아니라고 해도 프로토타입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기획실을 맡고 있는 특별연구원 이재황 박사는 주장한다. 

 

올 7월부터 97년 12월까지 5년동안 진행될 대형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외국 유수 메인프레임 업체에 제안서를 보내달라고 공문을 띄웠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기만 하면 이재황 박사 말대로 '고도의 기술 점프'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럼, 이런 신기술을 흡수할 능력은 있는가?

 

 

"인재가 없다, 없다 하는데, 우리 상황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하지 못한 탓이 더 크지요. 아직은 업체들이 상품화에 급급해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 이라고 박창현 박사는 주장한다.

 

"학교는 물입니다. 물줄기가 제대로 흘러가야 기업도 살 수 있습니다. 자원을 쥐고 있는 기업에서 물 흐름을 제대로 유도해야지요. 엉킨 실타래같이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는 산학협동의 문제는 이젠, 그 타래를 풀어야 할 때"라는 이재황 박사의 말처럼 이젠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신기술연구소는 그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래야 우리나라 컴퓨터 신기술 개발 활성화의 물꼬가 터지게 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기술 연구소는 여러모로 기술 연구분야의 노둣돌이다.

 

신기술 연구소의 성과와 노력을 얼만 튼실하냐가 우리가 얼마나 쉽게 기술강국 대열로 올라설 수 있는 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문을 연 이들의 양 어깨에는 버겁기까지 한 짐이 놓여있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7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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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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