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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컴 1993년 12월호 - 뿌리를 찾아서2, PC의 세상살이 

 

 

 

인텔의 공학자 테드 호프의 노력으로 세상에 태어난 4004칩의 상업적 성공은 1971년 가을, 인텔 8008칩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바야흐로 1950년대에 방 전체를 차지하던 크기의 컴퓨터가 발휘하던 능력을 겨우 조그마한 동전보다 작은 은빛 실리 콘 칩 하나가 구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상을 움직일 조그만 두뇌는 이렇게 태어났다.


사실 PC가 탄생한 직후는 그 조그만 물건이 지금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다. 그러던, PC가 가계부 관리나 단순한 서류 작성으로만 쓰는 것은 PC에게 있어 수치로 여겨질만큼 지금은 복잡한 과학 응용분야와 3차원 CAD(Computer Aided Design)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크기만 엄청난 에니악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물론 지금 PC가 누리는 영광 뒤에서 온몸을 투신한 개척자들의 손길이 없었더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현재의 개인용 컴퓨터 산업계는 대단한 설비로 무장한 개발 연구소를 지닌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업들로 그득하다.

 

지금 컴퓨터 연구자들은 거의 전문 직업인들이다. 그렇지만, 초창기 컴퓨터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대개 취미로 시작했거나 신기술에 마냥 매료되어 스스로 배워간 이들이었다. 그들은 처음 만들었던 원형이 된 시스템을 잡지에 소개 하면서 주문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생긴 돈으로 창고같은 곳을 얻어 프로세서를 조립하면서 시작했다.

 

PC의 서막에 등장했던 개척자 기업들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소수지만, 초창기 멤버로서 그들이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PC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인물들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고, 스티브 잡스가 자동차를 팔아 탄생시킨 '애플 I'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만든 개인용 컴퓨터가 광고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추어 라디오광들을 주독자층으로 하는 잡지, 'QST'의 1974년 3월호였다. 광고된 제품은 'Scelbi-8H'로서 판매 성적은 2백여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Scelbi 바로 뒤에 등장한 '앨타이어 (Altair, 견우성이란 뜻으로 독수리성좌의 큰별이다)-8800'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뉴 멕시코에 있는 MITS사가 만든 앨타이어는 4백달러가 채 못되는 값으로 키트(Kit) 형태로 제공하는 제품이었다.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지 (Popular Electronics)의 1975년 1월호에 실렸던 이 제품 소개 기사는 PC에 관한 일반의 관심을 증폭시킨 기폭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세계 PC사의 한획을 그은, 아니 지금도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도 탄생했다.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앨런(Paul Allen)이라는 두 명의 젊은 프로그래머가 베이직(BASIC) 프로그램을 완성하면서 생기게 된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밀어두었다가 자세히 하기로 하자.

 

앨타이어로 일어난 PC 바람을 타고 순풍에 돛단듯 순항한 PC 회사는 애플컴퓨터이다. 1975년 후반에 탄생한 애플컴퓨터도 모험 기업이라면 첫 출발지인 예의 차고인 그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때는 1976년. 컴퓨터에 깊은 관심을 가진 평범한 10대들 중의 한명이 모스 테크놀러지사(MOS Technology)의 20달러짜리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다가 컴퓨터를 직접 만들어 냈다.

 

조그만 키보드에 케이스도 없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었지 만, 그 당시 그 컴퓨터를 구경했던 사람들은 이 엉성한 외모의 제품에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고 당시 구경꾼 중의 한 사람은 전한다.

 

제작자는 지금도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며 신화를 만들어가는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inak)이다. 물론, 이 천재도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던 휴렛팩커드사에 워즈니악은 디자인을 들고가 제품 생산을 제안했지만, 흥미를 끌지 못했다.

 

결국,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만나게 됨으로써 스티브 잡스가 자동차를 팔아가며 만든 자본을 가지고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우여곡절을 겪어, 태어난 것이 '애플 I'이었다. 애플 I은 2백여대가 생산되었고, 워즈니악은 곧이어 애플 II의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렇게 산업계에 발을 디딘 이들은 공학자이며 인텔의 마케팅 고문이던 마이크 마큘러 (Mike Markkular)를 영입함으로써 그의 전문적인 경영 지식과 재정적인 보탬으로 지금의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1970년대에 컴퓨터는 소수의 애호가나 학교에서나 쓰이던 물건이었다. 이런 PC를 대중화한 일등 공신은 '좋은 소프트웨어'이다. 개인의 목적에 적합한 소프트웨어로 작업을 해 본 사용자들을 쉽게 컴퓨터 앞에서 떠나기 어렵게 만들었다.

 

1978년에 개발된 최초의 스프레드시트라고 할만한 '비지칼크'도 그런 소프트웨어의 대표였다. 보고서를 읽고, 쓰며, 차트와 도표를 작성하고, 엄청난 용량의 데이터 관리가 가능했던 이 제품은 컴퓨터 산업 전반의 성장을 이끈 촉매제였다.

 

 

 


IBM-PC 시리즈로 소형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IBM

1977년말까지 주도적인 기종들은 애플사의 애플II와 탠디 코퍼레이션사(Tandy Corporation)의 TRS-80 모델과 앨타이어 (Altair) 컴퓨터의 전기적 상호접속 개념을 사용한 수십종의 브랜드들이었다.

 

이렇게 수십여종의 제품들이 선보이며 일기 시작한 PC 사용붐은 곧 사용자들로 하여금 더욱  은 메모리와 고속의 처리속도, 고해상도의 모니터, 대용량의 주변장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PC에 대한 요구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IBM이 놓칠리 없었다. 중·대형 컴퓨터의 대표 기업으로 지내오던 IBM은 16비트 PC를 생산하기로 단행했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81년, 기억 용량이 64KB인 IBM-PC가 발표되었다.

 

예상밖의 수요 폭발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IBM의 대성공은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말은 8비트 PC 기업인 애플과 탠디 코퍼레이션사는 기울고 있다는 또다른 표현이다.

 

한차례 성공을 거두면서 IBM의 PC가 사무용 표준으로 자리잡아 PC시장을 주름잡기 시작하였다. XT기종은 인텔의 8086칩을 CPU로 사용하고 IBM사는 곧이어 가정용 수요를 겨냥해 PC Jr 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기종은 계산속도나 용량이 IBM의 첫번째 PC가 가진 성능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재 도전을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 XT의 상위기종인 AT였다. AT는 과거 8086, 8088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력해진 80286칩을 CPU로 채용했다. 80286 CPU는 멀티태스킹 기능으로 고속의 작업 전환을 가능하게 하였다.


XT에서 AT로 넘어간 이동은 컴퓨터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중대 사건이었다. IBM이 만든 개인용 컴퓨터가 마치 PC 산업의 표준이나 되는 것처럼 'IBM PC 호환기종'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의 엄청난 성공덕이다. IBM이 내놓은 PC는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PC가 되었다.

 

그러나, 어디나 영원한 승자란 있을 수 없는법. 85년, 재빨리 80386칩의 발표에 이어 386 PC를 새롭게 선보인 컴팩컴퓨터는 IBM의 강력한 도전자로 급부상했다. 이때부터 XT나 AT란 단어대신 PC에 386, 486이란 명칭이 나타났다. 컴팩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의미이다.

 

다급해진 푸른 제국(Big Blue: IBM의 규모를 의미하는 뜻에서 big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blue는 회사 로고에 사용된 푸른색에서 빌려 만들어진 별칭이다) IBM은 시장 만회를 위해 1987년, 차세대 컴퓨터로 명명한 PS/2 에 생산에 돌입했다.

 

 

 

 

IBM이 키운 MS-DOS의 마이크로소프트사

앞서 조금 언급하긴 했지만, 이제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의 황제 빌 게이츠 얘기를 좀 해 보자. 컴퓨터를 알면서 베이직 언어를 못 들어봤다면, 그 실력의 진위를 의심해도 된다.

 

빌 게이츠와 친구 폴 앨런은 하버드대학 재학중에 교내의 컴퓨터로 6주만에 이 언어를 완성한다. 최초의 상업용 마이크로컴퓨터인 앨타이어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 언어 베이직이 완성되자 빌과 앨런은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꿈을 실현할 마당인 마이크로소프트사를 1975년에 세웠다. 당시 회사의 기본방침은 '세계 모든 가정의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었다.

 

드디어 그 꿈은 1981년에 실현의 가망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꿈을 IBM이 심었다. IBM은 당시 대표적인 운영체제인 CP/M을 개발했던 디지탈리서치사를 물리치고, 어린 아이나 다름 없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DOS IBM-PC의 운영체제로 낙점한 것이다.

 

그러나, MS-DOS는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품이 아니었다. 빌 게이츠가 시애틀 소프트웨어 하우스에서 'QDOS'를 사들여 개선한 제품이었다. 그렇다고, MS-DOS를 두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명작이 아니라고 우기지는 못한다. MS-DOS가 현재 버전 6.0까지 발표하며 지금의 영예를 누리게 된 힘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금껏 이끌어온 버전업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운영체제에 관한한 거의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식이라 해도 무방하다. 1987년에 IBM의 차세대 PC, PS/2 를 위해 개발했던 운영체제 OS/2도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작품이었다. OS/2는 아주 다른 방식의 운영체제로 메뉴방식과 멀티태스킹, 데이터 교환 및 통합 등의 중요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Graphical User Interface)는 PC 사용에 획기적인 새로운 발상을 제공하였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제록스사의 팔로알토(Xerox's Palo Alto) 연구소가 이미 20년이 넘게 연구를 해 온 것으로 개념상으로는 신선한 것이 아니었지만, 실제 제품에 응용했다는 데서 크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때, 윈도우의 기틀이 잡혔던 것은 물론이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로 성공한 사람의 모법답안이다. 탁월한 예견과 개발 능력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자신도 억만장자의 방석에 앉은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고 우상이다.

 

 

 


비운의 '사과'를 딴 스티브 잡스와 매킨토시

애플사는 1982년, 매킨토시의 전신이라 할 리사(Lisa)의 실패로 다소 주춤거렸다. 사실 리사는 사용자에게 새로운 PC환경을 제공하긴 했지만, 값이 비싸고 수준이 너무 높아 사용상의 불편이 많았다. 리사의 실패로 주춤거릴 수는 없었고,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설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그렇지만, 매킨토시 그룹을 만들고 일어서려는 이 시기에 개발팀의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일어났다.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분리시키려 한다는 구설수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경영진들과 심각한 대립으로 회사를 떠나 1989년에 넥스트 (NeXT) 사를 세운다.

 

애플사는 펩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y)를 영입했고, 1984년 1월 매킨토시가 발표되었다. 이 기종은 그래픽을 중심으로 한 인터페이스가 다른 PC들보다 훨씬 친근감을 주었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우수한 성능과 컴팩트한 크기, 경제적인 유지비와 재미있는 사용법 등의 장점을 겸비했는데도 개인 사용자에게 깊숙히 파고 들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점차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사용자들에게 인식되면서 1986년에는 고속의 SCSI (Small Computer System Interface)장착된 매킨토시 플러스가 47만대나 팔리는 호조를 보였다.

 

매킨토시 II는 애플사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이 기종은 IBM-PC의 형태와 비슷한 베이지색 외장과 키보드와 마우스로 기능을 선택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매킨토시 II는 설계와 기능면에서 최초의 완벽한 32비트 PC였으며, 액세스 가능한 메모리가 1기가바이트에 달했다. 1988년에는 스컬리 회장이 이끄는 애플이 거대한 공룡 IBM을 제치고 판매 대수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흔들리는 푸른제국 IBM, 탄탄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엄지손톱보다 작은 실리콘칩이 발명된지 20년이 흐른 지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은 PC 한 대로도 예전 대형컴퓨터의 성능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의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고, 경영진이 바뀌거나 많은 기업 들이 흥망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

 

이런 시간의 흐름속에서 언제나 의연할 수 있는 기업은 없었다. IBM, 디지탈 이퀴프먼트, 컴팩 컴퓨터 등 대표 기업들도 흔들거렸다.

 

그러나, PC 제조업체들의 흔들거림은 아랑곳 없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IBM의 운영체제를 공급하면서, 인텔(Intel:INTegrated ELectronics) 은 CPU인 80x86 시리즈 칩을 생산하면서 차세대 컴퓨터 업계를 이끌고 나갈 무서운 신세대로 등장한 것도 바로 이즈음이다.


대형, 소형 컴퓨터와 PC를 생산하는 최대의 다국적 기업인 IBM은 1987년 이후 시장의 절반 넘게 잠식당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이 다시한번 빈말이 아님을 입증한 것이었다. IBM은 실로 큰 타격을 입었다.


격렬한 시장쟁탈전은 1991년 컴팩컴퓨터가 가격을 30퍼센트 이상 내리면서 다시 불붙기 시작하고, IBM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PC시장 재편에 노력하면서 컴팩, 델과 시장을 공유하고 있다. 이 3사는 현재 세계 컴퓨터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으며, 애플사의 매킨토시도 생존을 위한 시장확보에 주력하면서 IBM과 기술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인간인가 컴퓨터인가, 기술교체의 과도기

컴퓨터는 제4세대에서 5세대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서 있다. 1981년 일본의 기업들은 정부와 협력하여 5세대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한 연합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이들은 차세대 컴퓨터가 목소리를 인식하고, 사진같은 그래픽 영상을 직접 입력하며, 외국어를 번역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더불어 컴퓨터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학습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지니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우는 기업합동 금지법안으로 인해 개발협조 체제를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에 5세대 컴퓨터 개발에서 일본에게 뒤지게 되었다.

 

제 5세대 컴퓨터의 실현을 위해서는 광학과 초전도체, 병렬 처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번역 및 새로운 입력방법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한 분야만 해도 인간의 사고와 판단능력을 컴퓨터가 모의 실행하게 하는 두뇌를 만들어 내는 작업으로 컴퓨터 공학 외에도, 심리학, 언어학 등 특수 학문분야의 광범위한 연구가 접목되어야 한다. 아직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능을 갖추고 인간처럼 학습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컴퓨터의 등장도 이젠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수많은 개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제 중생대를 풍미했던 공룡처럼 놀라운 힘을 지닌 PC가 여러분 곁에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SF류의 소설에서 즐겨 다루었던 인간과 컴퓨터의 권력다툼(?)이라는 걱정거리를 제쳐두고 보면, 세계는 바야흐로 컴퓨토피아의 시대로 접어 들고 있는 것이다. .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1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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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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