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90. 상처입은 거인
-베트남 전쟁 종결(1975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경부고속도로 개통
1972년/7, 4남북공동성명 발표. 10월유신
1975년 4월 23일 미국의 포드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11년 전 통킹 만 사건으로 시작된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은 베트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어 4월 26일 베트콩은 사이공총공격을 개시했다.
사이공을 함락한 베트콩은 남북 베트남 총선거를 실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1964년 7월 30일 발, 미 해군은 북베트남의 영토인 통킹 만에 있는 두 섬을 공격했다. 북베트남은 니 같은 사실을 즉각 비난하고 나섰지만, 미군은 이를 허위조작이라고 역공했다.
사흘 후인 8월 2일 밤 미국의 구축함대가 통킹 만에 접근해 들어왔다. 북베트남은 이를 공격했다. 그러자 8월 4일 오전, 미국 대통령 존슨은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북베트남 통킹 만 밖 공해상을 순찰중이던 미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 항공모함 탑재기가 반격을 가했다
이것이 이른바 통킹 만 사건 이다. 다음날 미 공군은 북베트남의 어뢰정 기지와 석유 저장소 4개 지역을 폭격하고 선박 25척을 격침시켰다. 존슨은 의회에 전쟁권 부여를 요청했고, 의회는 이를 가결시켰다. 이로써 미국과 베트남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베트남의 근대사는 매우 험난하다. 1883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는 캄보디아와 라오스까지 병합, 인도차이나반도의 절반 이상을 손에 놓고 냉혹한 지배정책을 실시했다. 베트남 인들은 의병운동, 게릴라전 등을 펼치며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에 대항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호치민이다. 그는 명문 집안 출신으로 19살에 선원이 되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후 1918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대회에 참석했으며, 1924년 중국 광동으로 가 국공합작을 지도하던 러시아인 보로딘의 비서가 되었다. 그곳에서 베트남 혁명청년동지회 를 결성, 청년들을 교육시켜 국내로 들여보내던 그는 국공합작이 깨지자 모스크바로 갔다. 그리고 1930년 2월 홍콩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창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베트남에는 새로운 지배가 일본이 나타났다. 베트남은 이제 일본과 프랑스 두 제국주의 국가와 싸워야 했다.
공산당은 각계각층의 혁명세력을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모으기 위해 베트남 독립동맹(베트민) 을 조직했다. 독립을 얻지 못하면 민족 전체가 노예가 되어 나라도 계급적 이익도 영원히 잃게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베트민은 일보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8월 13일 일제히 봉기하여, 1945년 9월 2일 호지명을 수반으로 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이를 8월 혁명이라 한다.
그러나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다시 돌아온 것은 프랑스였다. 연합군은 베트남을 북위 17도선에서 남북으로 분할하여 북엔 장개석군이, 남엔 영국군이 진주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영국을 따라 들어와 행정기관을 장악하고, 저항하는 베트민을 진압했다. 북의 장개석군은 일찌감치 손을 뗐다.
베트민은 다시 항전을 개시했다. 베트민은 1954년 봄, 디엔 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궤멸시켰다. 프랑스는 휴전협정을 맺고 17도선 이남에서의 총선거 실시를 약속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총선거 시한을 3개월 앞두고 철수해버린 것이다. 전국적 총선거는 유산되고, 17도선 이남에는 베트남 공화국이 들어섰다. 원수가 된 고 딘 디엠은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잠정적인 군사분계선이었던 17도선은 국경선이 되었고 베트남은 남북으로 양단되었다. 미국은 남베트남에 수천 명의 장교를 파견하고 대규모 군사시설을 지었다.
디엠 정권의 전횡과 탄압, 무능, 부패는 남베트남 인들을 다시 저항의 길로 내몰았다. 이들을 디엠과 미국은 베트콩(베트남 코뮤니스트) 이라 불렀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공산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1960년 남베트남의 혁명세력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고 전면적인 무장투쟁에 나섰다. 해방전선은 지지기반을 확대하여 심지어는 디엠 정부의 고위 공무원과 그 군대에도 상당수의 협력자를 갖게 되었다.
미국은 베트남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주둔병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나아가 통킹 만 사건을 조작, 전면전을 시작했다. 초강대국 미국과 베트남의 싸움은 당연히 미국의 승리로 예견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미국을 실컷 괴롭히고 공포에 떨게 한 다음 마침내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 무기는 첫째 교묘한 유격전술, 둘째 대중을 겨냥한 정치투쟁, 셋째 남베트남 군에 대한 설득공작이었다.
해방전선은 신출귀몰하게 이동하면서 전후방도 없이 기습공격을 벌여 미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한편, 정글 속에 소형 레이더와 대공화기를 숨겨두고 미군의 최신예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남베트남 병사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총부리를 돌리는 일이 허다했다. 막대한 군수물자가 투입되고 애국심에 넘치는 미국 젊은이들이 베트남 정글에서 목숨을 바쳤지만 미군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고립되었다.식수는 필리핀에서 공수해오고 음식은 통조림만 먹어야 했다. 베트남인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73년 2월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지칠 대로 지쳐서 아시아의 일개 후진 민족과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상처를 입고 물러갔다. 참전했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었던 전쟁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번민에 빠졌다.
미국이 하는 일은 무어든 정당하며 또 승리한다는 미국의 우월감은 여지없이 실추되었다. 100여 년에 걸쳐 프랑스, 일본, 미국과 차례로 싸워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운 베트남, 세계 역사상 이들처럼 강대국과 맞서 끈질긴 싸움을 벌인 예는 달리 찾아볼 수 없다.
'알쓸신잡 > 세계사 100장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사 100장면 - 94.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개시(1986년). 새롭게 펼쳐지는 팍스 아메리카나. (0) | 2020.03.29 |
---|---|
세계사 100장면 - 93.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 추진(1986년) (0) | 2020.03.17 |
세계사 100장면 - 92. 제1차 석유파동 발생(1973년). 세계를 뒤흔든 아랍의 자원민족주의 (0) | 2020.03.10 |
세계사 100장면 - 91. 중화인민공화국, 유엔 가입(1971년). 새로운 국제질서, 데탕트 (0) | 2020.03.04 |
세계사 100장면 - 89. 아폴로 11호, 달 착륙(1969년). 우주시대의 개막 (0) | 2020.02.23 |
세계사 100장면 - 88. 제3차 중동전쟁 발발(1967년). 아랍의 바다에 둘러싸인 유태인 섬 (0) | 2020.02.21 |
세계사 100장면 - 87. 제1차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개최(1955년), 떠오르는 제3세계 (0) | 2020.02.15 |
세계사 100장면 - 86. 6, 25전쟁 발발(1950년). 한민족을 둘로 가른 비극의 전쟁 (1) | 2020.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