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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4 세계사 100장면 - 83. 미국,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1945년)



세계사 100장면 - 83. '엄마 따라 갈 거야'

-미국,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1945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43년/학병제 실시

1944년/여자정신대근무령 공포, 20여만 명이 정신대로 끌려감

1945년/8, 15해방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경, 일본 히로시마의 하늘에 은빛 B29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8시 15분, 9천 6백미터 상공에서 비행기는 지름 71센치미터, 길이 3.05미터, 무게 약 4톤의 원자폭탄을 떨구었다. 


50초 후 섬광이 번득이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히로시마의 60%가 파괴되고, 반경 500미터 이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즉사했다.


34만 가량의 히로시마 인구 중 7만 8천 명이 죽고, 부상자와 행방불명이 5만 1천 명에 달했다. 그리고 그후 5년 동안 24만 명이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했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인순간에 엄청난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그 희생자 가운데는 한국인도 수만 명 포함되었다. 이들은 징용으로 끌려갔거나, 가난에 못 이겨 살길을 찾아 일본에 건너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본이 항복하고 조국이 해방되자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들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과 원폭 피해자라는 꼬리표였다. 그후 4만 3천 명이 후유증으로 앓다가 사망ㅎ고 현재 2만 명 정도가 살아있다.


어둠의 그림자는 2세, 3세에까지 전해졌다. 원폭병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말과 달리 피폭 2세들은 기형적인 외모로 태어나거나 정상이더라도 갖가지 선천성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이 이들은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이들 한국인 피폭자들과 그 2세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시대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삶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는지. 그 한 예를 보기로 하자.


이름 : 이정자

일본 : 이름:구니모토 사다코

당시 나이 : 15세

주소 : 히로시마 시 후쿠지마 마치 673

학교 : 후쿠지마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덴마치 국민학교로 옮겨 졸업. 천만 여자고등학교 2학년 중퇴

가족 : 양친과 5남매. 그 중 장녀.

피폭지 : 집 앞 들판에서 맞은편에 있는 양피주머니 공장 여공들과 어울려 양털을 늘어놓다가 등에 불

          길을 느끼고 마차 밑으로 기어듦.

피폭상태 : 등 전체 화상. 1주일 후 뒷머리에 풍선처럼 커다란 혹이 부풀어 절개수술을 받았는데 한 동이에 가까운 피고름이 쏟아진 후 계속 부풀어 2, 3회 더 수술을  받았음. 까까중머리로 그해 10월 귀국.  


피폭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 : 섯째 동생 병준의 죽음. 7살이던 병준은 둑에서 피폭당했는데, 상처를 비집고 곧 창자가 쏟아져 나올 것처럼 보였다. 이어서 온몸에 주먹만한 물집이 생겨 가위로 잘랐는데 자꾸 생겨났다. 어머니가 쌀물이며 송장가루며 구해서 발라주고 필사적인 간호를 했지만 파리가 상처에 수없이 구더기를 슬었고 어린 동생은 아직도 살아있는데, 마치 시체에 달려들 듯이 파리떼와 구더기가 무섭게 온몸을 뒤덮으며 기승을 부렸던 그 참상. 동생은 결국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정자 여인은 한국에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들 둘, 딸 셋을 낳았다. 그러나 영하 20도의 엄동 설한에도 차오르는 열기 때문에 알몸으로 냉방에서 지내야 했고 숨이 차서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1970년 보다 못한 고1짜리 큰 딸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갱지 열장에 이르는 긴 사연이었다. 두 달만에 온 회신은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가 있으니 그리로 가보라.'는 내용이었다. 보사부장관 명의로 온 답장이었다. 


그러나 달려간 협회에서는 신입회원 명단에 이름을 써넣었을 뿐이었다. 가난한 피폭자들의 이름뿐인 모임이었던 것이다. 그후 이 여인은 울산의 바닷가로 이사를 했다. 


'큰딸애 직업요? 한동안 병원 청소부로 다녔는데 오래 못 가네요. 목과 눈이 튀어나오고 한동안 갑상선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다녔어요. 올해 서른 셋인데 날 닮았나 봐요. 큰아이뿐 아니라 모두 약해요. 성한 아이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 막내딸은 나 때문에 늘 밤잠을 잘 안 자요. 내가 혹시 숨이 막히지 않았나, 살아 있나, 흔들어보기 위해서지요. 그애의 제일 고약한 증세는 겨울이고 여름이고 겨드랑이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증세예요. 온몸이 항상 습하고 냉한 그애는 엄동설한에도 그 땀 아닌 물 때문에 속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겨드랑이의 맨살이 꽁꽁 얼어붙고 만답니다. 

난 그애가 조용해지면 겁이 덜컥 나요. 그러면 여지없이  '엄마 왜 날 낳았어요? '내가 제일 싫고 무서워하는 그 말을 하구 말지요. 아무 대답을 못하는 엄마에게 그앤 다짐하듯 말을 보탠답니다. 

  '엄마 따라 갈 거야'


8월 9일 또 한 개의 원자폭탄이 이번에는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인구 27만 가운데 2만 4천이 죽고 부상 4만 1천, 행방불명 2천, 기타 피해자 17만 7천을 기록했다. 


두 차례에 걸친 원자폭탄 세례와 소련군의 선전포고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일본은 8월 15이 마침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항복을 앞당기고 전후 세계정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원폭투하를 감행한 것이다. 7월 16일 뉴멕시코에서 세계 최초로 실험에 성공한 지 한달도 채 못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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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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