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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3.14 마이컴 1993년 11월호 - 한글날 기념, 한민족 한글 정보화 학술대회 3

 

 

 

 마이컴 1993년 11월호 - 한글날 기념, 한민족 한글 정보화 학술대회 

 

 

 

지난 11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 1층 강당에서 문화체육부 주최, 국어정보학회 주관으로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해외 동포의 한글 정보화 공동 발전'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547 한글날 기념으로 마련된 이 세미나에서는 국내의 정보화 상황과 중국 연변의 정보화 상황, 북한의 정보 기술 상황 등에 대한 연구 논문이 발표되었고, 북한을 제외한 남한 및 연변의 학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토론회로 진행되었다.


'한글 문화권의 정보화와 민족어의 여러 문제'라는 주제로 한양대 김정수 교수가 '범민족 전산기 문화 발전의 절박한 과제'를 연변대학 정보 처리 연구실 김진용 실장이, '연변의 한글 정보화 산업'은 연변 천지컴퓨터공사 최명수 총경리(우리식 표현은 사장)가, '중국의 기계 번역 발전과 전망'에 대해서는 김숙자 중국 조문 신식처리학회 부이사장이, '정보 통신의 발전과 한글 문화권의 형성' 이란 제목으로 진용옥 경희대 교수가, '한글문화권의 바람직한 코드'에 대해 이균하 인하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였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중 컴퓨터와 관련된 부분을 간추려 갈무리하였다. 특히, 북한의 현재 정보기술 상황을 알 수 있는 경희대 진용옥 교수의 추가 자료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중국에서 온 교포 학자들의 표기는 모두 그들의 표기법을 따랐다.

 

 

 

 

 중국에서 한글 전산화 

최명수(연변천지컴퓨터공사 총경리)

 

중국에서 가장 처음 한글로 인쇄된 책은 1882년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번역 출판한 '예수성교로가복음전서' 였다. 조선문 신문잡지 부문의 처음은 1909년 건민교육회가 연길에서 출간한 '월보'였다. 이를 시작으로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은 상해에 조선문 인쇄공장을 세우고, 독립신보, 독립신문 등의 신문잡지와 '한국독립운동진상', '공산당 선언' 등을 인쇄하였다. 잡지로는 '천지', '소년아동', '대중과학', '연변대학학보' 등 20여 종이 출간되었다.


1947년 3월 24일에는 조선문 출판업체로서 연변교육출판사가 첫 문을 열었다. 이후 급속히 증가한 출판사들이 지난 1백년 사이에 내놓은 책과 간행물은 무려 1만 8천여종으로 3억 2천만 책이나 된다.


텔레비죤 방송은 1938년 4월 1일, 연길에서 시작한 조선말방송이 처음이다. 지금은 연변인민방송국, 연변텔레비죤방송국, 흑룡강인민방송국에서 조선말 방송과 텔레비죤을 보내고 있으며, 연변에는 70여만대의 텔레비죤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서 한글 전산화

기계적인 한글 타자는 50년대 말, 한글 타자기를 기초로 하여 상해에서 1천 5백자의 한글 활자를 쓸 수 있게 만들어져 한글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됐다. 2벌식이거나 3벌식으로 조합하여 타자되는 기계식 타자기는 중국에서 연구되고 제작된 역사가 없었다.


제 1세대 컴퓨터 한글 타자기는 1983년에 일본의 동화기연에서 연구 개발된 것이 처음으로 연변에 들어왔으며 워드프로세서는 1985년 여름에 들어왔다. 한글전산화 기초 작업은 정보교환용 한글코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보교환용 한자코드계', '문자와 부호형성설비용 보충 확장 제어기능' 등 국가 표준이 쓰이고 있었는데, 국가기술감독국과 국가전자공업부에서는 1986년 봄에 '정보교환용 조선문코드계', '정보처리용 15×16돗트조선문폰트계', '24×24 돗트조선문폰트계', '32x32 돗트조선문폰트계', '조선문글자판배치' 등 국가 표준 작성 임무를 연변 전자정보센터에 주었다.

 

중국에서는 한자문화권과 수시로 정보교환이 있어야 하는 형편이라 '정보교환용 조선문코드계' 규격이 '정보교환용 한자코드계'와 일치되어야 했다. 즉, 조선 문자 하나를 2바이트로 표시하고 한 바이트를 7비트로 표시되도록 한 이른바 완성형 코드계를 취하였다.


완성형 코드에 올릴 문자 선정은 조선문사전과 서적에 오른 문자와 큰 인쇄공장에서 현실에 쓰고 있는 모든 조선문 활자수, 이미 출판된 간행물과 도서를 기준하여 조선문 사용 빈도를 통계, 분석하였다. 이렇게 얻어진 현대 조선문자는 수학적으로 11172개의 음절자를 조합할 수 있지만, 중국경내에서 50여년래 실제 쓰이는 음절자수는 3천 5백개를 넘지 않 다.

 

조사를 통해 알게된 것은 중국에서 쓰는 조선 글자의 사용 빈도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50개 글자에서 40개 이상이 한국과 차례는 다르지만, 겹치고 있다. 참고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를 차례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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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는 KCDOS, 워드는 한글한자 워드프로세서 사용

지금 중국에서는 '정보교환용조선문코드계' 표준에 따른 한글한자 디스크오퍼레이팅 시스템, 'KCDOS' 가 개발, 사용중이며, 문자 처리 영역에서는 한글한자 워드프로세서가 개발되어 쓰이고 있다. 전자출판 분야에서는 1991년부터 연변전자정보 센터와 연변신화인쇄공장이 연합으로 20여종의 128×128 돗트인 조선문 폰트를 제작했다. 

 

그중 대부분은 국가 심의를 거쳐 신문잡지와 일반 도서의 출판 인쇄에 쓰이고 있다. 자판은 '조선문 글자판 배치' 국가 표준작성과업이 시달되였지만 아직은 착수하지 않고, 'KSC 5715 표준 자판'을 이용하고 있다.

 

한글 입력속도가 느린 두벌식 자판의 문제를 높히기 위해 단어 입력 프로그램으로 단어를 입력하라는 주장이 높다. 예를 들면,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등 고유명사는 키를 네번 눌러 입력시키므로 입력속도를 높히는 것을 말한다.

 


"국제간의 한글 정보교환을 제대로 이룩하려면 시급히 한민족의 언어문자 통일을 다그쳐야 한다. 한글의 자모 을 서로 통일해야 하는 일부터 착수하여 코드계에서 완성형이냐 조합형이냐 하는 분쟁을 통일하고 자판배치부터 두벌식이냐 세벌식이냐 하는 분쟁을 통일해야 한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한민족은 그 통일을 바라고 있다."

 

 

 

 

 

 

 기계번역의 발전과정과 한중기계 번역의 전망 

김숙자(중국연변대학 기계번역연구소)

 

서로 다른 민족 사이의 언어 장벽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으나 수 천년이 지나도록 철저한 해결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국제 교제활동이 빈번한 현대 사회에서 언어 장벽은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의 정보교류에 크나큰 장애물로 되고 있다. 번역 수요에 대한 비약적 증가는 오늘 전문번역 일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이 문제를 컴퓨터로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는 당연한 것이다.


 전산과학, 언어학, 수학의 결합산물인 기계번역은 간단한 단어의 대역으로부터 초보적으로 지능화한 번역 시스템 연구개발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취를 갖고 있으나 아직도 사람의 번역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주. 김숙자 교수의 논문중 중국기계번역 발전과정 부분만을 요약하였다.

 

 


중국 기계번역 발전과정

1956년에 기계번역 연구계획을 세운 중국은 1957년부터 로-중, 영-중 중국은 기계번역연구를 시작, 1959년 104컴퓨터로 로-중 기계번역시험 (2030개 단어와 29개 문법규칙)을 초보로 성공했다. 주요 연구 단위로는 중국과 학원전산기술연구소와 중국사회과학 원언어연구소이며 그 외에도 북경로 어학원 화남공학원, 활빈공업대학, 중국과학기술정보연구소 등이다.

 

1966년부터 1975년 사이는 문화대혁명으로 기계번역 연구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1975년 11월 중국과학 기술정보연구소에서 영-중 기계번역 연구를 시작하였다. 1978년 하반년에 언어연구소 기계번역연구실을 다시 회복하였으며 흑룡강대학에도 영-중 기계번역연구소를 세웠고 1979년에는 활빈공업대학에 로-중 기계번역연구소를 세웠다. 이 시기에 비교적 성공한 시험시스템은 JFY-II 영 -중 기계번역시스템과 ECMT-78 영-중 기계번역시스템을 들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 언어학의 연구성과와 전산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중국기계번역발전에 큰 촉진이 있었다. 1988년 9월 8일 중국소프트웨어기술 회사는 처음으로 상품화된 영-중기계번역 시스템, '역성(譯星)'을 내놓았다.

1987년 12월 중국기계전자공업부 전산국과 중국소프트웨어기술회사는 일본통산성통산정책국과 일본국제정보화협력 중심(CICC)과 협정을 맺고 일본정부 개발원조항목(국제합작개발항목)인 ODA에 가담했다. 일본정부가 ODA에 도입한 금액은 60억일원에 달하며 ODA는 산업과 기술자료를 위주로한 다종언어 기계번역 시스템이다.

 

가담한 기구는 일본 국제정보화협력 중심(CCC), 중국 쏘프트웨어기술회사(CSTC), 말라시아과학기술환경부(MOSTC), 인도네시아기술응용평고청(EPPT), 타이과학기술에네지부(MOSTE)이다. 지능형 기계번역의 연구를 국가 중점과제로서 1986년 시작한 중국은 현재 전국의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년, 홍콩에서 열린 제12차 국제 컴퓨터쏘프트웨어박람회에서 중국과 학원전산기술연구소 진조웅(陳) 박사가 전시한 863-IMT/EC 시스템은 이미 영어기본단어 약3.5만개, 중국어 단어 약2.5만개, 특수규칙과 언어생성규칙 15만개, 통역규칙 0.15만개 등의 규모를 갖춘 제품이었다.

 

중국의 대외개방정책은 국제 왕래와 기술 교류가 빈번해 날로 중시되고 있으며, 전문 연구기관과 회사, 대학에서 활발한 연구와 논문발표가 전개되고 있다. 그 외에 이제 막 시작된 중-한 번역시스템 연구와 개발은 비록 늦기는 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영-중, 영-한, 일-한 기계번역연구자료와 경험을 기반으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첫 발자국을 뗄 수 있으리라고 본다(중 략).


한-중 기계번역에 국한되지 않고 더 나가 다종언어 계통으로 확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발하려면 ITM/ EC의 처리방법 (언어지식과 규칙을 분리시키고 통용처리기로 대역언어의 지식과 규칙을 결합, 통일적인 규칙 형식으로 번역에 쏠 각종언어지식을 표시하며 동일한 지식베이스 관리기구 아래에 서로 번역할 두 언어의 지식과 규칙을 한층한층 저정하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한-중기기번역시스템 연구개발은 두나라 국제합작연구과제로 이미 제기되었으며 그 연구결과가 문서번역 뿐만아니라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기계번역서비스망, 자동통역전화, 통역 회의시스템 한-중대역사전 등에도 활용될 것이다.


5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하여 세 단계의 발전을 거쳐 지능화한 기계번역시스템의 실용화 단계까지 이르렀다. 한-중기계번역연구는 국제합작 연구과제로 갓 시작되었으며 지능화한 기계번역시스템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정보통신과 한글 문화권의 형성의 기초 

진용옥(경희대 교수)


최근 1백년간 한민족은 역사적 운명과 함께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남북한 합쳐 6500만이 한반도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그외 중국 250만, 미주 150만, 일본 100만, 소련 50만명 정도이다. 이렇게 볼 때, 한민족은 7천만이 넘으며, 남북한을 제외할 때 해외 거주 동포들은 대략 5~6백만에 이른다.


우리 민족의 이주는 자의에 의한 이주보다는 문자 그대로 역사의 불행으로 인한 일들이지만, 최근의 동서 해빙 무드와 북방 정책의 결실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예시해 주는 소중한 민족 자산일 수도 있다.

 

만약 7천만의 한민족이 문화적 공동체 의식으로만 결집시킬 수 있다면, 전 세계 인구의 2% 미만의 인구로도 동북 아시아는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불행을 오히려 기획 포착의 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 론, 그에 앞서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여 민족의동질성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공동체 형성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보시대에 있어서는 정보시대적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적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 더욱더 그러하다. 이런 가능성은 서울올림픽에서 경험한 바 있다.

 

1988년 당시 서울에서 발신된 정보의 총 양은 TV 중계 27회선으로 20일간 전세계 35억 인구가 보는 막대한 양이었다. 그 외 에도 컴퓨터, 전화, 팩스 등 모든 첨단 장비등에 의한 자료 전송이 폭우처럼 쏟아져 세계의 각국에 뿌려졌다. 아마도 단군 이래 한반도에서 대외적으로 나간 총정보량의 수천배에 달할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

 

이를 통 해서 세계인에게는 한국문화의 독창적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재외 동포들에게는 민족적 동질성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서울올림픽에서 확인된 막대한 정보 송출 효과를 한민족 모두에게 전파시킬 수 있는 기초적 작업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방송과 컴퓨터 및 전화와 같은 현대적 정보기구를 이용해야 하며, 이와 같은 정보기구는 종래와는 달리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산기, 전화, 위성방송과 같은 정보통신 기반구조는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추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이와같은 기구를 정보문화적 동질성을 달성하는 데 있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한을 제외한 북한과 중국의 연변동포로 상징되는 제외 동포들까지 아직은 보급이 초보적 단계를 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통일과정이나 그 이후까지도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삼고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아울러 이와 같은 정보 기구를 통해서 한글과 한국어를 전파하여 한글문화권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한글정보화의 문제도 이 범주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북한의 정보 기술은 어느 정도에 이르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북한의 정보기술

국어정보학회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동향에 관해 단편적인 지식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북한의 정보기술은 대개 70년대로부터 시작된 듯 하나 확실한 자료 습득은 어려우며 현재의 상황도 한정된 논문이나, 방문 기회에 단편적으로 보았거나 전해 들었던 내용에 비추어 아는 정도에 불과해 상세한 내용 파악은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의 연구기구와 기술 수준
북한의 연구기구는 크게 중앙급 연구기구로 평양정보센터, 프로그람연구센터, 과학원 수학연구소, 김일성 종합대학 수학력학부와 어문학부, 하드웨어 연구성과가 탁월한 김책공업 대학, 사회과학원 응용언어학연구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갖춘 연구 기술 설비는 평성 조선과학원에 286 이상 기종이 수십대 있고 5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경우는 상당한 규모의 학생 실험실이 구비되어 있다고 전한다.


1986년 하반기에 중국에서 개발한 조선글 DOS(중국 김진옥 등이 개발 한 것임)를 증정받은 바 있고, 1988년에 DOS 3.30에 바탕한 '조선어체계' 개발에 착수했는데 1년 후 사이에 완성하여 사용한 바 있다. 개발 아이디어가 독창적이며 폰트 대부분의 용량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주요 메시지가 한글로 제시되기도 하기 위하여 IBMBIO, IBMDOS, COMMAND 파일을 수정하여 사용하였다.

 

워드프로세서로는 '현필', '편집' 등 이 먼저 개발되어 쓰였는데 24도트 문자만 출력할 수 있던 것이 결함이었으나 그 후 개발된 '창덕체계'는 화면용 글자가 고딕체를 위주로 한 것과 자판 배열이 인간공학적 설계를 무시한 것이 결점이나 풀다운 메뉴나 포프식 메뉴가 설계되어 있어 프린트 폰트도 8×16, 16×16, 32×32, 40×40, 48x48 도트, 자체도 각양하게 하여 여러가지 자체에다 배경색, 문양 추가기능을 갖고 있는 제품이다.

 

1989년 하반기에 중국 산동성 유방 컴퓨터회사로부터 한글과 한문 겸용 전자출판 시스템, '한틀'을 사간 것으로 보아 이 방면의 연구도 별로 뒤떨어진 것이 아니다. '통일 신문' 은 지금 컬러 전자 출판 시스템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 제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91년 당시, '데이터베이스(Database) III Plus'를 한글 환경에 쓰도록 고친 것으로 보아 국제 기술 수준에 대하여 면밀한 주시를 하고 있으며 개발 속도도 중국과 같은 수준으로 알려진다(이와 같은 현 상황은 북한의 컴퓨터 기술의 선진성보다는 한글의 접합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계산기 기술 교육에 대해서도 아주 역점을 들이고 있는 바 대학교 이학, 공학 제반학과는 물론 사회 과학의 각 학과에서도 계산기를 필수 과목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국가 지정의 중학, 고등학교에는 학생 실험용의 기계들이 충분히 갖추어지고 있고 역시 중요한 과목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다만 도급 이하에서는 어떤 실정인지 알기 어렵고 국가적 행정계통에서는 어느 정도 보급되었는지 알수 없다. 그리고 디지털 제어, 선반, 공업제어분야도 정보화가 진척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도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다. 음성 처리와 문자 인식은 연구중이지만, 응용이나 네트워크 구축은 아직 착수되지 않은 듯 하다.

 

 

 



북한의 정보기술 발전 수준과 전망 평가

1. 운영체계
운영체계는 정보 기술 발전의 문턱으로 되는데 개인 계산기 계열의 한글 환경은 아마 자체 기술에 의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스에서 중국에서는 중국어 환경이 1984년 개발되고, 한글이 85~85년 개발되었는데, 북한의 기술은 당시 중국의 수준을 능가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개발 시기가 중국보다 3,4년 늦었을 뿐이다.

 

지금 북한은 정보기술을 중요책으로 삼기 때문에 금후 발전은 더 빠를 것으로 추정된다. 유닉스, 윈도우 한글화 개발은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참고로 중국은 1985년에 유닉스를, 1992년에 윈도우를 중문화하였다.

 


2. 워드프로세서
워드프로세서의 기술은 90년도 당시 한국과 중국의 기술에 접근하고 있으며, 지금은 별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보급 정도가 뒤질 뿐이다. 윤곽선 글씨체도 전자출판에서 쓰이고 있다.

 


3. 기계 번역
무변환규칙에 기반한 노어-조선어 번역시스템은 이미 수년간 진행되어 왔고, 중간 언어에 기반한 기계 번역 연구가 착수되고 있다. 다만, 상품화된 시스템에 관한 보고는 없다.

 


4. 기타
문자 식별, 자연언어 이해, 통신기술, 음성처리 등은 실험실 연구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대규모 집적 회로, 광통신 등이 착수되고 있다. '전기자동화'라는 외국학술동태를 소개하는 전문 잡지를 월간으로 발행하여, 일본, 중국 등의 잡지로부터 현재 세계의 전자기술과 21세기 전반을 소개하고 있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11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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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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