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12월호 - 사람과 일
퇴차마사(退車魔師) 이우혁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국자동차부품종합기술연구소
연구개발부 CAE 연구실
연구원 이우혁
그가 건네 준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국내 5대 자동차 회사가 공동 출자해서 세운 한국자동차부품종합기술연구소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원하는 각종 부품을 개발해서 공동으로 이용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연구소이다. 그가 이 연구소 연구원으로 하는 일은 자동차 안전장치인 '에어백 (Air Bag)'의 국산 제품 개발이다.
사람 목숨이 차에 달렸다는 '인명재차 (人命在車)시대에 생명 보존에 큰 효력이 있다는 에어백 개발은 분명 주목받을만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마이컴'이 그를 찾은 이유는 에어백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PC통신 서비스인 '하이텔'에서 대단한 조회수를 자랑하는 '퇴마록(退魔錄)'의 작가라는 점, 통신 동호회인 고전음악동호회가 11월 16일 공연한 순수 아마추어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안느'의 연출자라는 점에 더 구미가 당겼다.
악마를 물리치는 기록이라는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씨의 진짜 직업은 자동차 에어백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다. 돌려 말해 보면, 차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마(魔)를 퇴치하는 퇴차마사가 된다. 그는 세상을 참 바쁘고 재미있게 산다. 음악과 책과 연극과 컴퓨터 게임과 통신에 빠져서 살아가는 그를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난삼아 그적거리던 것이었는데..."
"처음엔 장난삼아 한 일이었는데. 3월에 처음 하이텔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글 올리는 법도 몰라 그저 남들 글만 읽었죠. 얼마쯤 지나니 나도 글을 올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공포/SF'에 제 경험이나 주변에서 들은 무서운 이야기들을 올리기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라고 처음 하이텔에 글을 발 표할 때를 말하는 이우혁씨.
얼마 전, "어, 장난이 아닌데"란 유행어가 널리 통용된 적이 있었지만, 이우혁씨의 작가 데뷔야말로 그 유행어가 안성맞춤이다. 편안히 글을 그적거리다 보면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은 "나도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구다. 그는 맥주 한잔 기분좋게 하고 퇴근한 4월 어느 날 저녁, 용감하게 쓰기 시작한 것이 '퇴마록(退魔錄)' 이었다고 쉽게 얘기한다.
퇴마록은 악마를 물리치는 퇴마사들에 관한 기록이다. 한편에서는 심령소설이라고도 하고, 무협소설같다고도 하는 평가도 있지만, 올릴 때마다 3천여명에 달하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었고 지금은 팬도 꽤 된다.
퇴마록에는 이우혁씨를 모델로 한 이현암과 박 신부, 장준후, 현승희 등이 주인공인 퇴마사로 등장한다. 퇴마사들은 이우혁씨가 하고픈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세상에 산재해 있는 악마적인 요소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당위론, 그런 이야기일까.
"거창하게 말할 건 없습니다. 우선, 제가 이 쪽에 관심도 있어서고요. 재미있는 이야기잖아요.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사실은 모두 소설에 등장시킬 계획입니다. 글 쓰시는 분들이 어떻게 여기실지 몰라도 전, 제 글을 퇴고하는 데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저 쓴 대로 올립니다. 재미없는 책은 저도 싫어합니다. 대학 다닐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일곱페이지를 못 넘기고 포기했죠."라고 말하는 그는 큰 목적이 있어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첫째, 우선순위를 '재미'에 둔다. 그 가운데 작은 메시지가 전달되면 만족한다고 말한다. 워낙 종교나 심령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아서 책도 많이 읽고 여러 종교를 전전(?)했다. 지금 현재는 라마교를 공부하고 있다. 퇴마록을 쓴다고 지난 달에는 거의 백여권에 달하는 참고 서적을 사다 읽었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책 벌레다.
"제가 뭐, 꼭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나가서 놀지를 못하니까 그랬죠. 미끄럼도 못타는 아이였다면 믿으시겠어요? 운동이라면 지금도 질색이지만, 저뿐 아니라 제 형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형이나 저나 집안에 틀어박혀 책은 많이 읽었죠. 어린 시절, 저는 책읽기 밖에는 할일이 없는 하얀 얼굴의 소극적인 아이였습니 다."
운동을 못한 '탓'에, 책 좋아하는 열두살 위인 맏형을 잘 둔 '덕'에 읽어낼 수 있었던 책들은 지금의 그를 지탱하는 튼실한 버팀목이다. 20년 넘는 책읽기 경력은 이제 웬만한 두께의 책도 한시간 반정도면 읽어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속독을 익힌 것도 아닌데.
시새움이 불러온 고전음악에의 사랑
음악이 없는 생활은 지금의 그로서는 상상조차 안되지만, 음악과 첫 연을 맺게 된 건 의외로 아주 세속적(?)인 이유에서다. 시새움이다.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면 음악을 틀어줬거든요. 고전음악이 주로 나오죠. 전 들어보지도 못한 음악인데, 제 뒷자리 친구는 스피커로 흐르는 게 무슨 곡인지 척척 제목을 알아맞추는 거예요."라며 이우혁씨는 부러워서 시작한 음악듣기가 벌써 10년전 일이라고 웃는다.
처음 잡은 게 합창곡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대체 뭔가 뭔지 몰라서 그 곡만 백번도 넘게 들었다고 한다. 이해할 때까지 스스로를 강제하며 이렇게 몇 곡을 들었더니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귀가 뚫리더라고.
"음악은 여러 예술 중에 가장 주관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듣다보면 작곡가와 듣는 사람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음악을 정의하는 이우혁씨는 이젠 음악 없인 못 산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는 우리의 현재 삶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느껴져서 현대 음악만 듣다시피한다는 그는 특히 헝가리의 국민음악과 작곡가 벨라 바르톡*을 최고로 꼽는다. 바르톡 판은 열심히 사 모았다. 그 다음으로는 바그너를 좋아한다.
보수적인 모범생이라 불리우는 브라암스와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해서 감옥에도 다녀온 바그너를 두고 하이텔 대화방에서도 한바탕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는 그는 언제나 열정적인 바그너 편이다. 바그너와 벨라 바르톡에 심취한 그는 이젠 어린 시절 창백한 얼굴로 옹송그리고 있는 창백한 꼬마가 아니다. 음악과 함께 적극적인 어른으로 자랐다.
통신으로 가능했던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안느' 공연
음악과 함께 그를 활동적인 인물로 변화시켜 낸 또다른 예술은 연극이었다. "저희 형도 연극에 관심이 많으세요. 저랑 똑같이 서울공대를 나와 지금은 경원대 교수로 있지만 아직도 배우로 직접 참여하십시다. 최근 작품 '계단을 내려가는 화가'에서는 시간때 문에 스탭으로 뛰었지만요." 잠깐 동안의 인터뷰였지만, 그는 형과 참 비슷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은 기계설계를 했지만, 대학 생활은 '문화'에 푹 젖어 살았다. 고전음악동아리인 '샛별'과 고등학교 동기들끼리 만든 사회과학 동아리 '말벗', '매니아'란 문화동아리에, 그것도 모자라 과 친구들을 추스려 연극을 한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과 친구들과의 연극 공연은 불발이었지만, 그가 참여했던 다른 동아리에서는 매 학기 연극을 발표했다. 공연 복이 있는 지, 음악이 좋아 올 4월에 가입한 고전음악동호회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극은 아닌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안느'지만, 모짜르트 가 12살때 작곡한 작품으로 모짜르트의 오페라 걸작인 '마적'이나 '돈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처럼 대작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아마추어가 모인 이번 공연에 더욱 맞춤이라고 판단했다.
이우혁씨는 각색, 출연, 연출까지 맡았다. 초기 기획단계부터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고전 음악동호회에 가입했던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처음부터 연출은 아니었는데, 이것저것 맘에 안 드는 건 얘기하고 고치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연출이 되었네요. 따로 연출 공부를 하지는 않고, 책을 봤습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같은 이의 연출론을 읽기도 했지요."라는 그는 책에서 많은 걸 얻는다.
이번 공연은 순수 아마추어들이 모였지만, 열의는 물론, 실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가자들을 구하는 데 애를 많이 썼다. 통신을 통해서건, 얼굴을 대면한 만남에서 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반 강제(?)로 영입했다. 그래서 관현악단의 전공도 제어계측, 가정관리, 체육, 식품영양, 의학 등으로 십인십색이다.
"그래도 에어백 얘기를 제일 많이 써 주세요"
서초구에 자리한 회사에서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오페라 연습실 우륵홀로 동분서주한 지도 어언 육개월. 이젠 공연이 코밑이다. 열세번째 맞는 공연이건만 어김없이 흥분과 떨림이 있다. 공연이 끝나면 그는 또한차례 허전함의 몸살을 앓을 것이다. 아니 몸살을 앓을 시간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 자리엔 이미 집에 차곡차곡 모아둔 음악 레코드관 300장, 콤팩트디스크(CD) 150장, 롤플레잉게임 디스켓 400장 (83년 애플로 컴퓨터계에 입문한 그는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며 '울티마'를 게임중의 게임으로 꼽는다), 하이텔의 고전음악동호회와 공포/SF란의 퇴마록이 들어와 앉을 것이 분명하고 게다가 퇴마록 출판을 벌여놓았기 때문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제일 먼저 닿은 다솔 출판사로 결정했다는 그는 또한차례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책 만들기로.
하는 건 많지만 특별히 바라는 건 없다고 말하는 그는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길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 그가 속해 있는 연구팀이 국내 한 자동차 회사의 발주로 개발하는 에어백은 아마 95년경이면 생산될 거라고 한다.
오페라다 뭐다 하면서 휴가란 휴가 다 챙기고 퇴근 시간 땡치기가 무섭게 달려나가는 후배를 그래도 그저 귀엽게 봐 주시는 같은 방의 실장인 김권희 박사와 인정제 박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며, 취재를 마치고 함께 한 점심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주문했다.
"그래도, 에어백 얘기를 제일 많이 써 주세요"라고. 주문에 제대로 답하지는 못했다. 워낙 염불보다는 젯밥에 마음이 있어 덤빈 취재 였으니 말이다.
*편집자주
■ 벨라 바르톡(1881~1945) 헝가리의 작곡가, 동유럽 민속 음악을 채보하여 그 소재를 바탕으로 심한 불협화음이나 타악기를 중시한 새로운 기법을 확립한 국민음악파 작곡가, 작품으로는 현악 4중주, 피아노 곡집 '미코노코스모스' 등이 있음.
■ 스타니슬라브스키 (1863~1938) : 소련의 배우이며 연출가로서 리얼리즘 연극을 확립한 사람으로 배우의 외적, 내적 자질을 유기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잠재적 창조 과정을 의식적으로 포착해야 한다는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이란 유명한 연극 연출 시스템을 창안하기도 했다. 저서로 '예술에서의 나의 생애', '배우 수업' 등이 있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1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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