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4년 2월호 - 사람과 일
매킨토시-IBM PC 호환 노트북 'Z²' 연구소
'94년 새해, 신선한 소식 거리를 찾아 헤매던 기자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하는 꺼리가 하나 있었다. "IBM PC와 매킨토시 컴퓨터가 노트북에서 함께 작동된다?" 그 즉시 이 내용은 'IBM-매킨토시 동시 호환 PC 개발, 년 10만대 수출 예상' 등 문구로 기사화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게다가 모 일간지에서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첨가해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몇 일후 신문기사들은 '자랑거리 없는 과대 포장'이라는 내용으로 이 제품의 개발 의미를 깍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과연 어느 것이 확실한 내용인지 이 제품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취재를 해보기로 하였다. 그동안 각 언론 공세에 지친듯한 모습으로 기자와 만난 사람은 이 일의 책임자이며, 이를 직접 확인시켜 줄 장본인이기도 한 정찬익씨였다.
그는 현재 (주)뉴텍컴퓨터 대표이사와 (주) NTK Z² 연구소 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기자는 막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과연 한 대의 노트북에서 매킨토시와 IBM PC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까?" 정찬익 소장(이하 정 소장 이라고 표현)의 말은 "물론 가능하다" 였다. 그래도 기자가 미심쩍어 하자 논쟁의 주인공인 노트북을 보여 주었다.
매킨토시와 IBM PC가 한 컴퓨터에서 같이 작동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갈망하던 기술로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계유년 새해를 시끄럽게 만든 '매킨토시-IBM PC 호환 노트북'의 실체를 알아본다
이름하여 '듀얼 OS 노트북(가칭)'. 조그만 컴퓨터, 그것도 컴퓨터 중에서 참고서 크기의 소형 컴퓨터인 노트북에서 두 대의 컴퓨터 기능을 집적시킨 것이 어딘지 모르게 매력이 품어 나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아직은 시험단계에 있어 외형은 볼품이 없다고 부연 설명을 하면서 이 제품이 갖는 '세계 최초'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차근히 털어 놓는다.
"노트북에 두 개의 컴퓨터 기능을 하나로 집적시킨 예는 이번이 처음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개념적인 시도가 데스크톱 컴퓨터에서는 있었지만 아직 노트북 분야에서 만큼은 없었으며 한 대의 LCD(액정 화면)에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컴퓨터의 화면을 출력시킨 것도 처음입니다."
이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지금까지 불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지던 LCD 공유기술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도를 세계의 유명한 업체들은 왜 보고만 있었을까.
이것에 대해 “세계 유수의 컴퓨터 회사는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경쟁사 제품의 기능을 지원하는 컴퓨터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며 만약 IBM사가 애플도 지원되는 제품을 개발한다면, 이는 곧 애플사를 경쟁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것이 오히려 자사제품 성능에 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제품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러한 듀얼 CPU 제품은 오히려 중소업체들이 개발하기에 더욱 유리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는 몇몇 업체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
최초의 듀얼 제품은 8비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II 사용자들이 당시 최대 운영체제 였던 CP/M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Z-80이라는 새로운 CPU를 탑재하였다.
그러나 16비트로 컴퓨터 환경이 바뀌면서 이러한 시도는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혀 몇 년간 전혀 움직임이 없는 듯 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가지 듀얼 제품이 선보이고 있다. IBM PC에 매킨토시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것은 기존의 확장 슬롯을 이용하는 하드웨어 인터페이스 방식이 있다.
이는 얼마전 이 회사에서 개발, 발표한 앤도카드 (Andor Card)와 같은 제품들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옵션으로만 판매되어 인기를 끌지 못하고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그 다음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이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인 에뮬레이션을 시도하는 예이다.
이것은 별도의 하드웨어 부담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느린 처리속도와 완벽한 호환성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데스크톱 형태의 컴퓨터는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기능은 더욱 고급화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심화되어 듀얼 OS 노트북 컴퓨터와 같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제품이 경쟁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방편일 수도 있다.
연구소 설립 발상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
물리학을 전공한 정 소장이 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원 재학중 반도체 장비 연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해서였다. 거기서 그들의 기술 능력과 연구소 장비 등을 보고 감명을 받아 국내에서도 같은 시도를 해 볼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81년, 물리학 석사과정 중에 "E&VE 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었고 이것이 지금의 연구소 시초가 되었다.
일본 연수당시 정 소장이 충격을 받은 것은 한가지 문제를 분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6개월 이상 걸리는 작업을 일본의 연구소에서는 단 3일만에 해치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차이는 6개월과 3일의 차이"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후 분석 장비의 국산화를 연구하면서 선배들의 도움과 자신의 전세금까지 투자하여 '원자 현미경'을 완성하였다. 첫 작품인 원자 현미경이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본격적으로 연구소를 설립에 착수하였다.
1983년, 드디어 지금의 (주)뉴텍컴퓨터와 Z²연구소의 전신인 '뉴텍 컴퍼니' 설립하였다. 당시 정 소장은 박사 2년차의 학생시절. 학생 신분과 함께 선배가 운영하는 게임기 전문업체인 서진전자의 상무를 겸직하는 등 바쁜 일과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업무가 바쁘다 보니 연구소일에 소홀해져 다시금 마음먹고 일본을 찾아갈 결심을 하였고 이때 서진전자 동경지점장으로 발령받아 낮에는 회사, 밤에는 동경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일본에는 뉴텍이라는 상호의 회사가 설립되어 있던 터라 그곳 기술 고문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 뉴텍은 한국 뉴텍에 계속적인 도움을 주었다. 당시 8비트 컴퓨터가 주류를 이루던 국내는 애플II 컴퓨터용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때 일본에서 개발된 애플 용 5.25인치 FDD의 기술을 한국으로 이전하였다.
당시 신성전자라는 회사에 독점 기술 이전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최근 데스크톱 컴퓨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뉴텍(NEWTEC) 컴퓨터 산업의 모태였다. 또 현재의 뉴텍(NEWTECH) 코리아와 이름도 비슷한 아이러니가 시작된 것도 이때였다.
일본의 뉴텍 관계자들이 다시 주식회사로 바꾸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기존의 뉴텍 컴퍼니는 공장 자동화 전문 업체인 SYSTEC으로 이양시켰고, 다시 (주)뉴텍컴퓨터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때가 86년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연구소 설립 여건을 알아보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87년 연구소 설립 인가증을 발부받으면서 '기초 과학 연구 사업'에 몰두 하게 된다.
그러던 중 '91년 한라그룹의 대규모 출자로 조직이 커지면서 기존의 연구소가 그룹 내부에 눈총을 받는 입장이 되자 지난해 4월,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조직이 커지자 관리가 늦어지고, 사업과 연구의 병행이 곤란해 분리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연구원들의 모집 방법도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다. 항상 연구원 한명과 외부 영업 사원 한명 단위로 모집했다. 학벌이나 성적, 전공 등은 관계 없이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뽑았다. 이곳 연구원들이 발표한 논문은 국내외 논문집에 게재되는 등 중소기업체로는 상당한 연구실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총 90여명의 연구원 중, Z² 연구소에는 20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상근 연구원은 드물다. 대부분 해외에 파견되어 있거나 다른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소속되어 있는 연구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미국, 일본, 대만, 호주, 독일 등지에 분리되어 프로젝트에 따라 외국 연구원들과 공동작업을 하기도 한다. 자료수집, 연구 등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는데 이번 경우를 보면 미국은 매킨토시를, 일본은 저전력 LCD를 대만은 IBM 호환 PC를 담당하도록 하여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이 모습은 규모가 작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노트북 사업
그가 노트북 컴퓨터 연구에 뛰어든 계기는 연구활동에 사용하기 위해 랩톱 컴퓨터를 구입하면서이다. 연구원의 생리상 재택 근무의 필요성을 느낀 정소장은 포터블과 랩톱 컴퓨터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구입한 랩톱과 포터블 컴퓨터는 한글이 지원되지 않아 애를 먹었고 내 친김에 노트북 컴퓨터 연구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이다.
88년도 국내 최초의 한글 EGA 랩톱을 개발하여 가을 전시회에 출품하였고 전시 하루만에 약 1천여장의 홍보물이 바닥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인 89년,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켜 시제품을 11월 전시회에 소개한 후 90년 3월, 독일 하노버 쇼에 참가하였다. 이 제품이 '노트스타(NoteStar) NP-902, 903'이다.
노트스타에는 정 소장의 독자 특허인 '확장슬롯 기능'이 부착되어 있다. 이 제품은 월 5천대 이상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직까지도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다. 이 확장슬롯 특허는 결국 현재의 듀얼 OS 노트북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모태가 되었다.
특수 기능의 기술이 경쟁에 살아남는다
그동안 PC 시장을 지배해 온 것은 데스크 톱형 컴퓨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노트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만든 듀얼 OS 노트북은 얼마든지 시장성이 있다. 우선 모든 것이 한 곳에 들어있는 All-In-One 개념을 충실하게 지원하기 때 이다. 문제는 노트북은 만들기만 하면 어느 정도 시장성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제작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며 노트북 제조기술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듀얼 OS 노트북은 처음에 노트북에서 멀티미디어 기능 개발과 매킨토시 기능을 추가한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90년도부터 시작된 이 연구는 자료조사에서 시장성 조사에 이르기까지 약 3년이 걸렸으며 90년 당시에는 Z² 연구소가 (주)뉴텍코리아의 부설 연구소였다.
또 노트북은 아직까지 흑백 모니터라도 판매가 좋다는 점 때문에 듀얼 OS 노트북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지난해 판매된 노트북 중 80% 이상이 흑백 제품이었으며, 올해도 약 50% 이상이 흑백 제품으로 장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듀얼 제품도 매킨토시는 흑백만 지원된다.
더욱이 이 제품은 독창성이 있어 독점 판매가 가능하고, 가격, 기능의 차별 판매가 가능해 매우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또 경쟁 상대가 없어 표준가격 없이 가격 조정이 쉽다는 등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발자에게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선 하나의 액정 화면으로 두대의 완전히 다른 컴퓨터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과 매킨토시는 원래부터 자사의 회로 설계 기술을 폐쇄하는 정책으로 모든 회로가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 또 매킨토시와 IBM 호환기용 인터페이스 회로를 별도로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공간 확보에 문제가
발생한다.
정 소장은 이를 위해 '상호 장치 공유기술'과 '드라이버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해 호환성을 보장하고 있다. 사실 데스크톱 컴퓨터 분야에서는 미국의 NuTek사가 이미 매킨토시-IBM 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듀얼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작년 한해동안 6백만불의 손실을 입은 일도 있다. 그는 선두주자인 미국 NuTek 의 실패의 요인을 몇가지 지적했다.
우선 소프트웨어 호환성이 크게 낮았다는 것이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별도의 하드디스크를 장착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었다고 한다.
노트북에 관련된 특허만 20여 가지 보유
"지금까지 여러가지 노트북을 디자인하여 상품화한 것이 많습니다. 축적된 노하우만 해도 실로 엄청나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데스크톱 컴퓨터 업체보다는 노트북을 디자인하는 기술은 우리가 크게 앞설 것"이라면서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재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노트북 관련 특허만해도 약 20여가지. 여기에는 확장슬롯 특허, 모듈 특허, 펜, 노트북 겸용 특허, 태양 전지 노트북 등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기술들이다. 이것들은 곧 개발될 노트북에서는 필수적인 기술인 것만은 분명했다.
“지난해 가을 컴덱스에서 우리 연구소가 보유한 여러가지 특허를 이용한 제품들이 선을 보였습니다. 이를 개발한 회사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 유명한 업체들이었습니다. 한동안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지적 소유권 문제로 제동을 걸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노트북 한가지 기종을 개발하기 위해 개발비는 최소한 20억 정도 소요된다. 이 금액의 산출 근거는 개발 단계의 시제품이다. 만약 이 모델을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대당 2백만원의 부품 원가가 소요될 경우, 전시회나 시사회, 여러가지 시험용으로 1천대 정도 생산해야 조립 생산 라인이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결국 20억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월평균 1만대 완성품 생산을 예로 든다면 핵심부품은 4개월의 처리기간이 소요되므로, 4만대분의 부품 비용이 든다. 현재 대당 부품 원가가 약 1천달러선이므로 4천만불, 국내에서 세금을 포함한다면 총 4백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된다.
개발이 완료되어도 이 정도의 투자에 비해 과연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대두되게 된다. 개발단계에서 성공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어렵고 막대한 생산 자금에 대한 부담, 개발기간에 대한 부담 등이 컴퓨터 업체가 노트북 사업에 쉽게 뛰어 들수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주)뉴텍컴퓨터와 같은 소규모 업체가 여러 가지 모델의 제품을 꾸준하게 개발하였다는 것은 다른 무엇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소장은 이것에 대해 "노트북 제품은 관련 기술특허를 많이 보유한 회사가 개발에 유리합니다. 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기본 특허를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제품 개발 추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간추려 보면 회사 조직이 작고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는 회사는 비용부담이 적게들며 또 그만큼 위험 부담도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생산 단계에서도 단계적인 추진이 가능해 비용 지출이 적게 들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만약 기술이 빈약한 회사가 듀얼 OS 노트북과 같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별도의 디자인과 특수 하드웨어 모두를 개발해야 하는 것과 기존 컴퓨터에서 가능성을 타진한 다음 성공의 확신이 설때 생산하는 것 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정 소장의 장점은 바로 자신의 특허 기술에 있다. 모든 부분을 모듈화해 작동 실험을 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주) 뉴텍컴퓨터의 노트북은 자사 특허의 확장 슬롯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을 이용해 기존의 노트북에서 매킨토시 기능만을 이 슬롯을 통해 시험해 볼 수 있어 타 회사가 전체를 개발해야 하는 것보다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게 된
다는 것이다.
판매에서도 기존 IBM 노트북에 매킨토시 기능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제시해 별도의 비용만 추가하여 듀얼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듀얼이 만약 수출된다면, 10대 중 8대는 업그레이드 가능한 IBM 전용 노트북이 될 것이며, 나머지 2대가 완벽한 듀얼 OS 노트북이 될 것이라 한다.
이 연구소에서 1차로 설정한 듀얼노트북의 수출 목표는 약 6천대 정도로 보고 있는데 1대가 2백만원일 경우, 120억원의 수입이 있게 되며 투자된 12억원 정도의 연구비는 쉽게 계산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설계가 성공의 열쇠
정 소장은 현재 듀얼 OS 노트북의 사업이 성공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잡고 있으며 데스크톱 전문 업체에도 기술을 이전해 이들의 국제 경쟁력 회복에 일조를 하고 싶단다.
현재 듀얼 OS 노트북의 2차 사업계획이 시작되는 94년 3월부터 매킨토시의 컬러화 작업과 듀얼 노트북에서만 지원되는 특수 소프트웨어 개발, 내부에 별도의 매킨토시-IBM 파일 변환 유틸리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변환시키는 기술의 개발 등을 개발 목표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차세대 CPU로 각광을 받고있는 파워 PC 노트북을 개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정소장은 "파워 PC 자체적으로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는 데 문제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기본 공유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이용해 파워 PC도 듀얼 개념을 채택해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Z² 연구소의 미래의 청사진을 설명한다.
투자 재원과 인원이 적은 컴퓨터 후발 주자는 기술 노하우와 개발 경험을 보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한국 컴퓨터 기업의 살아갈 방향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품을 수입해 유통시키거나 아니면 기존의 제품과 방법을 달리한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만과 우리의 차이점을 보면 대만은 돈벌이로서 개발하고 우리는 소비자 입장에서 개발하기 때문에 실제 기술력은 대만보다 우리가 우수하다"면서 '사용자 입장에서의 설계'가 가장 큰 성공의 열쇠가 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사용자 입장에서의 제품 설계'는 우리 사회 전반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크고 공통된 문제이다. 규모가 작은 만큼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Z² 연구소의 모습은 거대한 규모만을 자랑하는 대기업에서 정신을 차려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4년 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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