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4년 2월호 - 소프트웨어 분석
돌아온 배너, 키다리 0.99
도트프린터가 찍찍거리며 길죽한 현수막을 연속 프린트 용지에 찍어내는 풍경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자기 집 방문에, 혹은 사무실 벽에 붙어있던 종이 현수막 배너는 그야말로 프린터 활용의 백미였다. 요즈음은 어쩐 일인지 배너를 그리는 사람도 배너 프로그램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근래 프린터가 연속 용지가 아닌 A4용지 등의 사무용 용지 사용이 주류를 이루는 탓인지, 아니면 코렐 드로우 등 배너는 주지 못하는 고급 출력물을 만들어 주는 응용 소프트웨어에 모든 사용자들이 넋을 잃고 있는 때문인지 (코렐 드로우도 배너인가?)는 알 수 없으나 배너에 대한 관심은 식어가는 듯 하다.
0.92판 공개 소프트웨어로 처음 발표되었던 '키다리'는 간단하고 편리하면서도 다른 배너류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진 한글 배너로 등장했다. 그 키다리가 잠잠하기만 했던 정적을 깨고 0.99판이라는 모습으로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배너(banner)의 사전적 의미가 '주장, 슬로건 등을 내거는데 쓰이는 깃발, 표식'이듯이 배너 프로그램은 벽을 도배할 정도의 대형 출력이 가능 해야 한다. 윈도우에서 한글 환경이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시절이라 그저 작은 인쇄물을 만드는 정도라면, 유명한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내놓은 초고급의 초거대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단순한 배너가 능가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수막, 포스터와 같은 대형 인쇄물 영역은 아직까지 배너라는 이름의 프로그램들이 점령하고 있는 땅이다. 가로, 세로 10미터 이상의 대형 인쇄물 출력도 되고 미터 단위까지 살펴볼 수 있는 이 '키다리'는 또 다시 잉크와 종이의 대량 소비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키다리에 주목하는 이유
키다리를 실행해 보고 난 뒤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예쁘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웅장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고(이애니메이션만 용량이 2메가나 된다) 도스용의 배너 프로그램치고는 상당히 깔끔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Graphic User Interface, 이후 GUI로 표기) 를 구현하고 있다.
640x480 VGA 는 물론 800x600, 1024×768의 고해상도에 16, 256, 32768 색을 표현해 준다. 이러한 시각적 장점 이외에도 GUI를 채택한 장점으로 마우스 지원도 가능해 부드럽게 360도 글자도 회전할 수 있는 기능 등,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부분들이 프로그램 여기저기서 보인다.
한편, 이러한 인쇄용 프로그램에서 중요하게 다룰 문제가 바로 글꼴이다. 키다리의 글꼴은 자체개발한 것이라 하고('집현전' 이란 자형편집기도 완성되었다고 한다) 한글이 10벌, 영문은 14벌을 쓸 수 있으며 2천여 상용한자가 지원된다. 이 정도라면 배너의 글꼴로는 충분해 보이며, 나머지 능력 발휘는 글꼴을 다루는 기능과 사용자의 상상력 차지가 될 것이다.
키다리를 심기 위해
키다리는 두장의 2HD에 담겨있으 며, 약 4MB의 하드 디스크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디스크 드라이브상에서 INSTALL.BAT를 실행시키고 지시에 따르면 손쉽게 설치된다. 배치 파일로 만든 엉성한 설치 화면이지만, 실제 프로그램은 이처럼 엉성 하지만은 않으니 인스톨 화면을 보고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키다리는 4MB라는 공간을 소모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중 절반에 달하는 용량을 회사 로고의 애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다. 확장자가 'fli'인 이 애니메이션 파일은 2MB 넘는데, 삭제해도 작업에 전혀 지장은 없다.
더블 스페이스 기능 등을 사용해 두 배로 늘린 2HD 디스켓이라면 충분히 저장이 가능하므로 디스켓 한장으로 키다리를 실행하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키다리는 AT 이상이면 기본적으 로 사용할 수 있다. 메모리는 기본 메모리만 있으면 사용이 가능하지만 2MB 이상을 권장하고 있다.
입력 장치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모두 지원한다. 프린터는 엡슨의 LX, LQ시리즈, KS호환 도트 프린터, 데스크젯 시리즈(컬러 포함), HP호환이 가능한 레이저 프린터, 그리고 캐논의 버블젯을 지원하고 있다. 일반 사용자들은 대부분 이들중 한 제품을 쓰고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프린터 종류가 매우 한정적인 느낌은 버릴
수 없다.
배너를 그려 보자
'키다리는 복잡하지 않다.' 여타의 프로그램처럼 수많은 화면이 공존하여 정신 사납게 하지도 않는다. 일목요연하고 간단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도우미 상자라는 헬프 기능도 있다. 키다리 실행 화면의 상단 왼편에는 아이콘 여섯 개가 가운데에는 사용자를 수시로 도와주는 도우미 상자. 오른편에는 4개의 아이콘이 있다. 그럼, 왼쪽부터 기능을 알아보기로 하자.
입출력 아이콘
① 생젊(생각하는 젊은이의 마크 모양의 아이콘).
키다리에 대한 'About'이다.
② 새글 입력
출력할 문장을 입력하는 곳이다. 아이콘을 클릭하면 글들이라는 윈도우가 중앙에 나타나는데, 이 곳에 문장을 입력하면 된다. 화면 윗쪽 괄호안에 최대 입력량이 표시된다.
③ 불러오기
④ 저장하기
⑤ 인쇄하기
프린터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함으로써, 편집된 내용을 인쇄하게 된다. 인쇄 매수, 인쇄 상태, 인쇄 농도(도트 프린터의 경우), 외곽선, 전체 혹은 부분 인쇄 등의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막대 그래프로 인쇄 현황이 나타난다.
⑥ 끝내기
전기 콘센트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키다리는 종료된다. 후일, 다시 실행할 때에 끝낼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데, 이는 키다리가 현 작업내용을 파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도의 도스셀은 필요없다.
도우미 상자
이곳은 아이콘이 아니다. 마우스 커서가 화면상을 움직일 때마다, 그 곳에 대한 설명이 즉시 이 곳에 나타난다. 이 곳만 응시하고 있으면 키다리의 대략적인 개관이 잡힐 것이다.
환경 설정 아이콘
① 프린터 설정
앞서 열거한 프린터들을 이 곳에서 선택한다. 레이저 프린터는 데스크 젯으로 설정하고 HP모드로 출력한다. 따라서, 레이저 프린터로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레이저만의 고해상도는 따로 맛볼 수 없다.
② 용지 설정
A4 용지와 80컬럼 용지의 2종류를 설정할 수 있다.
③ 해상도 설정
그래픽 카드를 스스로 인식하여 사용 가능한 해상도를 결정하도록 해준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화려한 화면을 꾸밀 수 있는데, 현재 키다리가 8색을 지원함을 고려해 보아 비효율 적으로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3만2천색 이상에서는 메모리가 부족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해상도가 바뀔 때마다 제작자들이 본 프로그램으로 출력한 플랭카드를 들고 촬영한 기념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단순한 화면 해상도가 아닌 출력물의 곡선의 정밀도도 조절할 수 있는데, 이는 도스상에서 실행시 옵션을 지정해 주는 방식으로 조절한다. 이 외에도 글의 가로 크기, 세로 줄, 화면상 곡선의 정밀도 지정도 가능하다. 여기서 정밀도는 어디까지나 곡선의 정밀도로 출력물이 월등히 미려해지거나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④ 추가 기능
여러 장으로 연결된 큰 출력물을 만들때 쓰는 선택사항들이다. 연결부 위를 표시할 '절단선', 정렬 번호를 적어주는 '열 번호', 빈 종이는 출력하지 않도록 하는 '빈종이' 등의 선택사항이 속해 있다.
작업을 위한 아이콘
화면 오른쪽에 나란히 있는 6개의 아이콘을 가지고 실제 작업을 하게 된다. 위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자동 정렬
입력된 문장을 배열한다. 인쇄물에 있어서 문장이 어떻게 배치될지를 결정하는 윈도우가 나타난다.
② 글꼴 변환
바꾸고 싶은 글자의 범위를 선택하고 커서로 범위의 가운데를 클릭하면 서체 종류가 나온다. 세보기, 태보기, 태명조 등 서체 이름이 독특하다. 특이하기는 하지만 프로그램마다 서로 다른 글꼴 이름은 사용자를 혼동시키는데, 키다리에서 이런 독특한 이름을 쓴 이유는 자체 개발 서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한글 10벌, 영문 14벌, 고딕체의 한자, 회사 기호, 그림 문자, 도형 문자 등을 쓸 수 있다. 서체 변환시 자료 처리량이 한계에 달하면 메모리 부족으로 인해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는 데, 이는 아직 0.99판의 한계이다.
③ 크기 이동
입력한 글의 크기나 위치를 바꿔준다. 사용 방법은 윈도우 응용 프로그램에서 차트나 윈도우 크기,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엑셀 차트의 그것과 동일하다.
④ 회전
글을 회전시킨다. 아이콘을 클릭하면 G자 모양의 회전 커서가 나온다. 이 회전 커서로 글자를 360도 회전할 수 있다. 매우 유용한 기능으로, 여러가지 효과를 연출할 때 뺄 수 없는 기능이다.
⑤ 색상
글자의 색을 정한다. 특별히 정하지 않은 경우는 검은 색이 된다. 당연한 일인지, 아쉬운 일인지 허큘리스는 지원하지 않는다.
⑥ 미리보기
눈 모양의 아이콘은 출력될 형태를 보여준다. 물론 편집하는 화면도 위지위그(WYSIWYG)이지만, 이 아이콘을 클릭하면 출력될 형태와 지정한 색깔이 채워진 화면이 그려진다. 이 밖에 작업에 쓰이는 아이콘 이 외의 것들로는 가로자, 세로 자가 있는데, 이 부분을 조절해서 작업할 공간의 크기를 지정할 수 있다. 종이의 크기를 정하면 하늘색 실선이 표시되어 종이 낱장을 표시해 주고, 종이가 얼마나 들지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굳이 배너를...
손에 익은 워드프로세서로도 눈에 띌만큼 큰 글자를 찍을 수는 있고, 예쁜 출력물이 필요하면 전용 프로그램을 쓰면 되는데, 굳이 배너까지 필요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필자와 같은 사용자가 점점 늘고 있기에 하드디스크에서 배너는 점차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 소개한 키다리 0.99는 한마디로 '깜찍한' 배너이다. 배너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데는 절호의 상품이다. 사무실에서 기분전환, 동창회 포스터, 신장 개업, 학급 회의용 현수막, 구인 광고, 혹은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한 포스터 등 생각나는 곳 어디든지 써 먹고 싶은 느낌을 갖게 한다.
배너 매니아, 프린트 마스터, 인스탄트 아티스트... 흘러간 팝 아티스트의 이름을 되뇌이듯 명성을 떨친 배너의 이름을 떠 올려 본다. 그리고 신인 키다리 0.99를 이어서 생각해 본다. 오랜 침묵끝에 등장한 상용 버전 0.99는 그 의미를 야심작 키다리 1.0의 예고편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다음은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도움을 얻어 곧 등장할 1.0과 0.99를 비교한 표를 만들었다. 1.0은 올 6월쯤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곧 등장할 1.0판은 아주 괜찮은 프로그램일 것으로 예측된다. 당장 인쇄소를 차려도 하자가 없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게 해 주는 거물이라면 지나친 표현 일까. 제작자인 '생각하는 젊은이들' 측은 「0.99x10 < 1.0」이라는 표현을 써서 1.0을 홍보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넓디 넓은 소프트웨어의 영역중 단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한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노력은 이 키다리 0.99만 보아도 실로 대단한 것이다. 이 키다리 시리즈로 다시 배너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1.0판의 발매는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이다.
여담이지만, 키다리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비단 키다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글꼴에 대한 문제점이다. 아마 독자의 하드디스크에도 같은 모양을 지닌 글꼴이 중복해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귀중한 자원 낭비이다. 논에 돌덩이를 쌓아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워드프로세서용 글꼴, 윈도우용 글꼴, 이번에는 배너용 글꼴까지... 로마자와는 달리 대용량을 차지하는 한글, 한자의 폰트를 업계측에서도 하루 빨리 통합하는 길을 모색하여야만 할 것이다. 비록, 기본 메모리가 최소 500KB 이상을 필요로 하고, 메모리의 관점에서는 자료처리량의 한계 등, 곳곳에 드러나는 눈에 띄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0.99는 괜찮은 배너이다.
뒤 이어 발매될 1.0은 과거에 2.0으로 기획되었던 작품이고, 현재 0.99가 1.0이 될 운명이었다고 제작자들은 말한다. 키다리 0.99와 곧 등장할 1.0정도와 같은 배너라면 '굳이' 배너를 쓸 충분한 명분을 제공해 줄 듯 싶다.
구입은 용산 선인상가 한성전산(701-9468)에서 직접 살 수도 있고, 지방 사용자들의 경우는 전화로 '생각하는 젊은이들 02-483-7202'에 신청하면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4년 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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