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41. 근대과학의 아버지 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주장(1543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543년/최초의 서원 백운동 서원 준공
1543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 책이 출판되었다. 저자는 폴란드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한 것은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고 자구와 다른 별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학설이었다. 이를 (지동설)이라 한다.
당시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도 지구는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과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생각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한 (천동설)로 대표되는데, 교회와 카톨릭 신앙이 이 천동설을 확고히 떠받치고 있었다. 이와 다른 생각을 품는 자는 성서를 위배한 이단자로 낙인찍혔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태어났다. 그는 수학자로 출발, 천문학에 관심을 갖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깊이 연구한 끝에 그 학설이 엉터리라고 깨달았다. 천동설을 별들의 움직임을 전혀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지동설을 확신했지만 세상에 발설하지 않고 평생을 보냈다. 그의 저서도 그가 죽은 뒤에 출간되었다.
사실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중세에 이르러서도 소수의 학자들이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했다.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이들은 그럼으로써 프톨레마이오스 학설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명성과 교회의 권위에 가려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으로 안쪽에서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 각각 원을 그러면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지구가 움직인다고 하는 건 거룩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체계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바로 그 같은 혁명적인 사고방식의 전환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자기의 사상이 얼마나 위험스런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평생 동안 입을 열지 않았던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의 생애를 보자. 조르다노 브루노는 154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에 도미니크 회에 가입, 수도사가 되었으나, 왕성한 지적 욕구로 당대의 온갖 지식과 과학적 성과를 섭렵한 끝에 수도원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후 제네바, 파리, 옥스포드, 마르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각지를 떠돌며 강의와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단적인 이론은 선뜻 환영받지 못했고, 덕분에 그는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다.
때마침 어떤 베니스 인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오랜 만에 고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초청한 사람이 바로 그를 밀고한 장본인이었다. 브루노는 체포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1600년 2월 17일 로마의 광장에 장작더미가 쌓이고 한 남자가 결박당한 채 세워졌다. 마침내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남자는 한마디의 신음도 내지 않았다.
누군가 십자가를 건네주자, 그는 말없이 뿌리쳐버렸다. 이것이 부르노의 최후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라는 종교재판소의 요구에 불응하고 7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화형에 처해지고 만 것이다.
그의 사상이란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한층 발전시킨 것이었다. 즉, 우주는 무수히 많은 태양과 별들의 체계로 충만된 무한의 경지이며, 우주는 한계도 중심도 없이 오직 운동을 계속할 뿐이라고 했다.
이는 우주를 유한한 것이라고 본 코페르니쿠스를 한 걸음 앞지르는 내용이었다. 그에게 신은 곧 자연이었다. 교황청은 그의 사상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여겨 그를 화형에 처하고 만 것이다.
또 한 사람,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을 철저히 연구한 사람이다.
1600년 그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천문학자인 덴마크의 티코 브라에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티코 브라에가 죽은 뒤 브라에의 계승자가 되었다.
클페르니쿠스를 존경한 그는 연구와 관찰을 거듭한 끝에 천체의 운동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이것이 유명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이다.
첫째, 행성들은 태양의 주위를 타원궤도를 그리며 돈다.
둘째,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 속도는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각각 다르다.
케플러는 이 두 가지 원칙을 1609년에 발표했고 10년 만인 1619년 서번째 법칙을 발표했다. 즉, 임의의 두 행성간의 거리의 제곱은 태양으로부터 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지동설이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지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코페르니쿠스와 조르다노 브루노, 케플러는 근대과학의 새 지평을 활짝 연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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