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43. 영국과 에스파냐의 해상결전
영국,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격파(1588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587년/왜구, 전라도 침범
1589년/정여립 사건
16세기 말 해상무역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에스파냐 사이에 일대 결전이 벌어졌다.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대식민지를 수중에 넣고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국왕 펠리페 2세는 1571년 지중해 무역을 방해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를 레판토 해전에서 물리쳐 유럽으로부터 영원히 몰아냈다. 에스파냐의 강력한 해군에게는 '무적함대'란 별명이 붙여졌다.
에스파냐는 나아가 1580년엔 포르투갈을 통합, 그 광대한 식민지까지 손에 넣음으로써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부자나라요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한편 영국의 헨리 8세와 비운의 왕비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오른 뒤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국력을 키웠다.
에스파냐와 영국의 대립은 해묵은 것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결혼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이복언니 메리 여왕은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와 결혼, 카톨릭을 옹호하고 에스파냐에 우호적인 정책을 취했다.
그녀가 얼마 후 병으로 죽자, 왕이 된 엘리자베스는 메어리 여왕과 달리 카톨릭을 억압하고 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영국 국교회를 장려하는 한편 에스파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두 번째 문제는 해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바다를 누비며 에스파냐 상선을 공격, 상품과 금은보화를 빼앗아 왕실에 바치는 영국 해적을 은근히 지원하고 있었다.
해적선장 드레이크는 유능한 인물로서 여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영국와실에는 금이 쌓였고 에스파냐는 큰 타격을 입었다.
화가 난 펠리페 2세가 드레이크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해오자 엘리자베스는 오히려 드레이크를 기사로 임명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특정 국가의 배를 공격할 수 있다는이른바 특허장을 주어 드레이크의 활약을 지지했다.
마지막 문제는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독립운동을 벌이는 중이었다.네덜란드를 모직물 공업의 주요 수출지로 삼고 있던 영국은 네덜란드의 독립운동을 도와주어 펠리페 2세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펠리페 2세는 엘리자베스에게 결혼을 신청함으로써 영국을 손안에 넣어보려 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이를 단호히 거절,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펠리페 2세는 이번엔 영국 내에 있는 카톨릭 교도들을 이용했다. 불만세력으로 남아 있는 이들을 부추겨 엘리자베스를 내쫓고 사촌인 메리 스튜어트를 왕으로 세우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시켜버렸다. 1587년의 일이다.
화가 치민 펠리페 2세는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130척에 달하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함대를 편성, 영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싸움은 의외로 영국의 승리였다.
에스파냐의 커다란 배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좁다란 해협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은 작은 배로 민첩하게 움직이며 무적함대를 공략했다. 배에 불을 질러 그대로 에스파냐함대에 돌진하는 기습작전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결국 펠리페 2세는 함대의 3분의 2를 잃고 패주하고 말았다. 유럽 최강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대패한 것이다. 이후 에스파냐의 해상권은 영원히 사라졌고 영국은 유럽의 새 별로 떠올랐다.
그후 영국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인도 경영에 나섰고, 북아메리카에 식민도시를 개척, 대규모 식민지 무역을 시작했다. 그 도시의 이름은 여왕을 기르는 뜻에서 버지니아, 즉 '처녀의 도시'라고 명명되었다.
국내적으로는 국민문화가 발달하여 세익스피어, 스펜서, 베이컨 등이 활약했다. 엘리자베스는 사람들로부터 '굿 퀸 베스'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러나1603년 그녀가 후사 없이 죽자 튜더 왕조는 끝나고 제임스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스튜어트 왕조가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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