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75. 민족자결주의와 세계평화

-윌슨, 14개조 평화원칙 제창(1918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18년/이동휘,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 결성

1919년/3, 1일 운동 발발. 상해에 임시정부 수립

  



1918년 11월, 독일이 휴전조약에 서명함으로써 4년간에 걸친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미국의 참전과 러시아 혁명은 전쟁의 판도를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립을 천명하고 유럽으로부터의 주문으로 자국의 산업을 번영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던 미국은 1915년 영국 상선 루시타니아 호가 독일 잠수함에게 격침당해 타고 있던 미국인 백여 명이 사망하자, 참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17년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선언하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마침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200만 명의 육군을 서부전선에 보내는 한편, 막대한 규모의 군수물자와 재정원소를 투여,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영행을 미쳤다.


한편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당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종식을 추진했다.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으며, 유럽 노동자 계급의 지원 없이도 러시아에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1918년 3월 3일 러시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 독일과 강화하고 연합군을 탈퇴했다. 이에 여유가 생긴 독일은 동부전선의 병력을 서부로 돌려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오히려 대패하여 후퇴하고 말았다.


동맹국 세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었다. 투르크는 영국에게 메소포타미아를 점령당한 뒤 10월 30일 항복하고, 불가리아도 마케도니아 전투에서 패하여 휴전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는 부다페스트에서 혁명운동이 일어나 황제가 스위스로 망명, 합스부르크 가가 무너지고

11월 3일 항복했다.


독일에서도 혁명운동이 일어났다. 11월 3일 킬 항의  해군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어 베를린의 노동자들이 봉기했다. 황제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고, 독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사회주당이 이끄는 새 정부는 11월 11일 프랑스의 우아즈 강 연변에 있는 콩피에뉴 숲에서 휴전조약

에 서명, 마침내 전쟁은 끝이 났다.


1919년 1월 전승국 27개국 대표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 강화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중심인물은 미국의 윌슨, 영국의 로이드  조지, 프랑스의 클레망소였으며, 그중에서도 윌슨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파리 시민들은 윌슨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정의의 사도 윌슨에게 영광을!'이란 현수막이 드리워지고 사람들이 그에게 꽃을 던졌다. 윌슨이 이처럼 유럽 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얻은 것은 그가 발표한 이름바 '14개조 원칙'은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의 식민지 약소국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었다.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소수민족들은 독립국가를 세웠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헝가리가 독립하고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등 남슬라브 인의 거주지와 합쳐 세르보 크로아트 슬로벤  왕국이 되었다. 이는 나중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되었다.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아라비아 반도의 헤자즈는 독립을 했다.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도록 약속받았다.


그러나 승전국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의 독립운동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은 일본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했다. 일본에 대한한 중국의 5.4운동 역시 무시되었다. 


영국을 도왔던 식민지 인도도 원하던 독립을 얻지 못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한편 윌슨은 패전국 독일에게 너무 가혹한 강화조건을 제사하면 오히려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독일에 대한 보복을 가벼이 하자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입장은 강경했다. 사실 서부전선의 전투는 거의 대부분 프랑스 영토 내에서 이루어져 프랑스의 피해는 실로 막심했다. 독일은 자기 나라 땅에선 전투를 벌이지 않았던 것이다.


난항을 거듭한 끝에 파리 강화회의는 6월 28일 베르사유 궁에서 조인식을 갖게 되었다. 독일의 영토와 해외 식민지는 갈갈이 찢겨 승전국에게 넘어갔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러야 했다.


한편 윌슨이 14개조 원칙에서 주장한 '대소 국가의 구별없이 정치적 독립과 영토보전의 상호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연맹의 설립'은 이의없이 가결되어 조약의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었다.


1920년 11월,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제1회 국제연맹 총회가 열렸다. 국제연맹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국제평화기구였지만, 출발부터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주창자인 미국이 상원의 조약 비준 거부로 참가하지 못했으며, 러시아와 패전국이 제외되었다. 그 뒤 패전국의 가입이 허락되어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독일 등이 차례로 가입했다. 러나 국제 연맹은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없는 약점을 갖고 있어 침략의지를 누를 수가 없었다.


1933년 일본과 독일이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7년에는 이탈리아가 탈퇴, 이들 파시즘 세력은 또 한 차례의 세계전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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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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