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77. '보이지 않는 손'의 파산

-세계 대공황 발생(1929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25년/조선공산당 결성

1926년/6, 10만세운동 발발. 나석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투척

1927년/신간회 발족

1929년/원사총파업. 광주학생운동 발발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오후, 미국 뉴욕의 증권가 월 스트리트의 한 빌딩 꼭대기에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가 틀림없이 뛰어내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무려 11명이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증권에 투자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날은 치솟기만 하던 주식값이 별안간 대폭락을 기록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지 못해 안달이던 사람들이 이날은 주식을 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암흑의 목요일'이었다.


5일 후인 10월 29일 주가는 다시 대폭락했다. 불과 30분  사이에 325만 주가 팔렸고 그 손실액은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5시간 동안 쏟아져나온 주식은 무려 1,650만 주였다.


이날을 역사는 '비극의 화요일'이라고 부른다. 하루 만에 43%나 떨어진 주가는 이후 계속 하락, 11월에는 9월의 절반 이하로, 다음해 7월에는 8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은행에서 돈을 꾸거나 살 주식을 미리 담보로 잡히고 대부받았던 투자가들은 가진 주식을 다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파산했다. 그러자 이번엔 대출한 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이 부도를 내기 시작했다.


은행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예금을 돌려받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은행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부도를 낸 은행이 무려 5천 여개, 9백만 명의 저금통장이 후지로 변하고 수만 개 기업이 파산했다. 당장에 2,500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쫓겨났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상점과 창고에는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사람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었다. 상품은 너무 많은 데 살 능력을 가진 사람은 너무 적었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니 공장주들은 생산량을 줄였다. 


실업자가 더욱 늘어났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하러 거리를 배회했지만 돌아가는 공장은 너무 적었다.


아이들은 석탄과 먹을 것을 훔치러 다녔다.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은 오렌지 값이 곤두박질치자 오렌지를 땅에 묻거나 석유를 뿌려 썩였다. 그때 농장 밖에선 영양실조에 걸린 가난한 사람들이오랜지를 훔치려다 붙잡혀 감옥으로 가거나 경비원의 총에 맞아죽이도 했다. 성난 실업자들은 항 의시위를 벌였지만 그때마다 무자비하게 진압당했다. 


미국경제의 불황은 곧 전세계로 파급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경제의 왕좌에 앉은 미국은 매년 막대한 규모의 무역흑자를  올려 그 돈을 유럽과 세계 각지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황이 시작되자 미국은 유럽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였다. 세계의 금의 60%가 미국의 금고 속에 사장되었다. 케나다는 밀을 불태우고 브라질은 커피를 바닷속에 처넣었다.


일찍이 없었던 대규모의 불황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이후 약 4년 간 지속된 이 세계대공황은 수천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와 공업생산력 저하, 무역감소를 낳았으며 농산물 가격폭락, 금본위제 정지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경우, 1923년부터 25년의 평균지수를 100이라 할 때 1933년에는 공업 60, 건축 14, 고용 61, 노동자 임금 38의 수준으로 떨어졌고, 실업자는 1930년 3백만, 33년에는 1천 5백만으로 늘어났다. 


지엔피는 1928년의 850억 달러에서 30년엔 680억 달러, 32년엔 37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세계 공업생산액은 1925년을 100으로  할 때 1932년에는 65.9를 기록했고, 세계무역량은 무려 70.8%나 감소했으며 실업자는 5천만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의 독특한 현상이다. 공황의 근본원인은 '생산의 무정부성' 즉, 사회전체의 구매력을 계산하지 않고 개별 자본가의 이윤추구 욕구에 의해 상품의 종류와 수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소비자의 구매능력과 관계없이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판다.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이 오르면 생산량을 늘린다. 그러면 가격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그 대답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가격이 조절되고 상품의 수요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전반적인 과잉생산 공황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이론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드가 처음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완전한 자유경쟁''자유방임주의'를 최선의 것으로 생각한 당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겐 금과옥조 같은 신념이었다.


그러나 공황은 실제로 10년을 주기로 반복되어왔다. 1929년 시작된 공황은 그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세계적이었으므로 이를 세계대공황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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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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