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74.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러시아 혁명 발발(1917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15년/박은식, (한국통사)간행
1916년/박중민, 원불교 창시
1917년/한강 인도교 완공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2월 22일,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전쟁이 시작된 후 독일식 이름인 페테르스부르크를 페트로그라드로 고쳤다)에서는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배급품이 떨어지고 없다는 사실을 알자, 굶주림과 분노에 사로잡힌 이들은 빵가게, 식료품점을 습격했다. 대부분 여성들인 이들은 가난한 병사의 아내, 그리고 여공들이었다. 다음날 사회주의 단체들은 (부녀자의 날)을 선포하고 시위를 벌였다.
'빵을 다오!'
'아이들이 굶고 있다!'
'차르를 타도하자!'
이날은 10만여 명의 노동자가 시위에 참여했고, 다음날인 2월 24일에는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이 숫자는 페트로그라드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2월 25일 총파업이 일어났다. 학생들도 시위에 가담했다. 황제 니콜라스 2세는 내일까지 모든 환란을 정지시키라고 명령했지만, 시위대는 자꾸 불어나기만 했다. 경찰과 군인들은 시위대에 동정적이었다. 시위대에 가담한 사람들이 곧 자신들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러나 장교들은 발포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하는수없이 공포탄을 쏘았다. 그래도 15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2월 27일 마침내 병사들은 총부리를 장교들에게로 돌렸다. 시위군중은 환호했으며, 병사들과 함께 동궁으로 몰려갔다. 이들은 동궁 꼭대기에 올라가 붉은 깃발을 꽃았다.
시위를 주도한 병사와 노동자들은 '노동자 병사 대표 소비에트(평의회)임시집행위원회'를 결성했다. 병사는 1개 중대당 1명, 노동자는 1천 명당 1명 씩 대표를 선출했다. 그리고 <이스베스챠(뉴스)>라는 이름의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의회는 혁명의 급진화를 막기 위해 황제를 퇴위시키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로써 300여 년에 걸친 로마노프 왕조는 멸망했다. 이것이 3월혁명(러시아 력으로는 2월이어서 2월혁명이라고도 함)이다.
4월 3일,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레닌이 망명지 독일로부터 도착했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현실화시켜 러시아에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한 혁명가이다.
그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 불거진 광대뼈와 낮은 코, 깊고 작은 눈, 작은 키에 벗겨진 머리르 한 다분히 도양적 풍모를 지닌 그는 1870년 4월 22일 볼가 강 연안 심비르스크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몽고계 타타르 인이었고, 아버지는 교육관리, 어머니는 교양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1887년 레닌으로 하여금 혁명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하던 형 알렉산더가 황제 알렉산드르 3세를 암살하기 위해 여섯 명의 청년들과 폭탄을 만들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한 것이다.
그후 레닌은 혁명이란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카잔 대학에 입학, 법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교내 시위와 관련되어 사형수의 동생임이 밝혀지자 제적, 카잔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노력으로 카잔에 북귀한 레닌은 1년 동안 대학 4년 과정을 독학하여 법대 줄업시험에 통과했으며, 1892년 법률사무소에 취직했다. 이때 그는 이미 마르크스의 저작을 모두 독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노동자들이 있는 페테르스부르크로 떠났다.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페테르스부르크에 온 레닌은 1895년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 노동자와 혁명적 지식인간의 결합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3년간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크루프스카야도 8개월 뒤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결혼했다.
1900년 레닌과 크루프스카야는 망명길에 올랐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을 전전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그는 한시도 쉼없이 혁명을 준비하고 지도해나갔다.
1917년 2월 혁명 직후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레닌은 (4월 테제)를 발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외쳤다. 그가 주장한 것은 '의회제 공화국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전국적으로 솟아오르는 노동자, 농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었다. 그리고 '전쟁 반대''임시정부 반대'를 외쳤다.
이윽고 10월 25일 새벽, 적위대와 페트로그라드 수비대는 시가를 재빨리 장악했다. 그날 밤 제2차 전 러시아 노동자 병사 대표 소비에트 대회는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선언했다.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인 인민위원회가 구성되고 레닌이 의장, 트로츠키가 외무위원, 루이코프가 내무위원, 스탈린이 민족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것이 11월 혁명(볼셰비키 혁명)이다.
러시아 혁명은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주요한 사건의 하나이다. 러시아에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짐으로써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진영으로 갈라져 대립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은 레닌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고, 레닌 또한 러시아 혁명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레닌의 친구였던 막심 고리키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구원받으려면 누구나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는 나라 러시아에서, 아니 이 세상 전체에서, 레닌만큼 심각하고 강력하게 불행과 슬픔과 고통을 미워하고 경멸하고 저주한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고통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물리쳐야 하고 또 물리치 수 있는 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특히 위대한 인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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