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2월호 - 컴퓨터 세상살이
PC의 한계에 도전한다 화상음 (和象音)
'멀티미디어'라는 개념이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에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 보통 대중들에게 전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예전보다 훨씬 짧아지고 있다. 현재 멀티미디어의 개념이 아직까지도 뚜렷이 정립된 것은 아니다. 즉, 어느 수준까지를 진정한 멀티미디어라 부를 것인가의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멀티미디어 연구, 개발 업체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멀티미디어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화상음(和象音)' 이라는 업체가 있다. 화상음이란 회사는 단어의 뜻 그대로 상(象, Image)과 음(音, Sound)을 화합(和合)한다는 뜻을 가진 멀티미디어 개발회사이다.
회사의 분위기는 다른 멀티미디어 전문회사와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사무실의 모든 기계들은 조용한 클래식 음악과 쉽게 어우러졌고, 각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회사라기보다는 어느 모임으로 잠시 착각할 정도의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오랜 고생끝에 설립한 화상음
오늘의 화상음이 있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이곳은 지난 1990년, 한미디자인 학원의 컴퓨터 그래픽 강사들이 주축이 되어 컴퓨터 그래픽 동호 단체를 구성하는 성격으로 출발하였다.
그 당시에는 '프래임 (Frame)'이 라는 이름으로 상업성을 띄지 않은 성격을 가졌으며, 이곳에서 사용되는 모든 장비는 각자가 보유한 장비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국내에서 보기드문 일본 제품인 X68000과 고성능의 IBM PC 등, 다양한 기종을 이용하여 새로운 컴퓨터 활용 방향을 모색하였다. 설립 초기는 멀티미디어의 초창기로서 '비디오와 컴퓨터의 연결'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 성능 테스트 등을 위한 스터디 그룹(공통된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모임)도 운영하였다.
91년, 사무실을 양재동으로 이전하면서 모임 성격이 비영리 단체가 아닌 사업체의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직원들은 기존의 자신의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이곳에 모여 연구하던 것과 달리, 아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회원이 늘어갔다.
15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연구에 필수적인 장비를 하나 둘씩 구입하면서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동안 회원들의 회비와 투자비로 운영을 하였지만 부족한 환경에서 더 좋은 작품이 불가능하다는 현실과 최신 기종의 장비를 외면하는 것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구입한 장비가 '방송 촬영용 카메라' 였다.
이것은 대략 1천2백만원을 호가하는 일본 이께가미(IKEGAMI) 사의 방송용 ENG 카메라였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는 회원들간의 더욱 큰 힘이 되었으며 장비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장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분야에서 노하우를 점차 쌓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대외적인 업무와 기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이근주씨는 "아직도 조직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체로의 성장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토의로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발생될 수 있는 시행착오를 마찰없이 해결해 나갑니다." 라고 말한다.
기본적인 장비가 구비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들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다. 음악 부분을 제외한 컴퓨터 그래픽과 비디오를 연결시키는 국내 최초의 멀티미디어 학원의 개설을 계획하기도 했으며 또 소규모 프로덕션이나 학원을 위한 '비디오 출력소'를 마련하여 질좋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비디오로 담아주는 일도 구상해 보았으나 국내 여건상 아직은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채 계획이 유보상 태에 있다.
이와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작업 공간을 현재의 여의도로 이전하였고 3명으로 구성된 '화상음' 이라는 회사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게 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대중화를 향한 발걸음
현재 이 회사에서는 크게 3개의 분야로 나뉘어 각자의 업무를 진행하며 공동의 프로젝트가 생길 경우에는 함께 연구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즉, 한 회사에 각 분야를 맡고 있는 별도의 사장들이 모인 것과 같은 형태인 것이다. 이들이 분담하고 있는 업무는 대외 영업 관리와 컴퓨터 그래픽과 비디오 제작 분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컨설팅으로 구분되어 있다. 또 최근에는 미디 분야까지 포함시켜 완벽한 작품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멀티미디어 업체들은 워크스테이션 급 이상의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의 장비는 그것과 비교하면 빈약하고 볼품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곳에 있는 장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가 모두이다. 특히, 486 PC 3대와 386 PC 1대로 3차원과 2차원 작품,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이 절로 든다.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도 3D 스튜디오와 타가 보드용 소프트웨어, 오토 애니메이터 프로등을 주로 이용한다.
또 비디오와 컴퓨터의 연결을 위해 '비디오 토스터'라는 장비가 설치된 아미가 2000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장비는 외국의 소형 유선방송 업체에서도 비디오 화면 처리 분야에 사용될 정도로 영상 처리 분야에서는 손색없는 장비이다.
여기에서 작성된 애니메이션 화면들은 전문 비디오 레코드로 저장되는데, 이때 파나소닉의 AG 7750, AG 7650 비디오 레코더를 이용하고 있다.
보통 컴퓨터와 비디오의 연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장비들 간의 인터페이스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값비싼 비디오 콘트롤러를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이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비디오 콘트롤러 제품이었다.
화상음에서 미디분야를 연구하는 심상범씨는 "컴퓨터 그래픽에 음악 효과가 없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면서 효과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컴퓨터 음악인 미디의 경우, 컴퓨터 장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어 매우 안정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컴퓨터 그래픽은 무리한 장비의 도입으로 각 회사들간의 가격 경쟁으로 일대 혼란을 빚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디에 사용되는 장비를 보면 영창 쿼즈와일의 K2000, 롤랜드의 W30, MC-500, 아카이 사의 GX 4000D 테이프 레코더가 있으며, 최근 매킨토시 Ilci를 이용해 본격적인 컴퓨터 음악 편집을 하고 있다.
PC의 한계에 도전
이들은 국내의 컴퓨터 그래픽 환경이 너무 도구주의(道具主義)적인 점에 회의를 느끼고, 대중들에게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 만큼은 실력과 노력보다는 비싼 장비에 의존하게 되는 모순으로 'PC는 컴퓨터 그래픽 제작에는 부적합하다'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를 서슴치 않는 풍토가 만연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PC가 가진 최대한의 기능을 활용해 제작 비용을 적절한 수준까지 낮추고, 또 PC에서도 어느 정도의 품질을 가진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목적이 달성되면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는 또다른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PC가 가진 최대한의 기능을 활용하여 제작 비용을 낮추고, PC를 이용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최근 소개되고 있는 저가격의 비디오 콘트롤러를 이용한다면 방송 수준과 가정용 수준의 중간 단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으며, 이것이 컴퓨터 그래픽과 멀티미디어의 대중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들은 또 저가격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찾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선방송의 등장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시장
올해 시험 가동 예정인 유선방송은 국내 컴퓨터그래픽 제작업체들에게 더욱 큰 활력소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선 방송사는 기존의 대규모 방송사와 달리 화면 처리 분야에서 큰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화상음과 같은 소규모 업체에서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화상음과 유사한 일을 하는 업체만 해도 서울에만 10여군데 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하드웨어 판매 업체로 전락하는 실정에 있다. '값싼 PC지만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PC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장비에 의존하기 보다 작업의 질을 높이는 작업에 더욱 열중하고 있다.
기존의 프로덕션에서는 장비 투자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될 인력에 대한 투자는 미약하다.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비싼 장비만 있으면 좋은 작품이 절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고 방식이 국내 컴퓨터 그래픽 산업의 발전에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을 이들은 강조한다.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
멀티미디어의 상업화는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주위의 사물을 살펴보면 멀티미디어를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제품들이 많이 있다.
컴퓨터 그래픽 분야는 텔레비전에서는 없어서 안될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흔히, TV화면에서 보이는 자막이나 뉴스의 배경 등은 컴퓨터 그래픽이 표현하는 것들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개표 결과 방송은 방송사들의 컴퓨터 그래픽, 전쟁이라 불리워질 정도로 치열했다.
지금까지 화상음에서 상업용으로 제작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다른 업체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PC로 해낸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동안 이곳에서 진행되었던 일을 몇가지 들여다 보자.
컴퓨터 그래픽 보드 전문업체의 제품 홍보를 위한 컴퓨터 그래픽은 지금까지 PC로는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겨지던 일을 해낸 것이다.
가산전자의 그래픽 카드 제품을 알리는 작업으로 이 제품이 6만컬러를 표시할 수 있고, 비디오 입/출력과 사운드 기능이 내장되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완성된 파일의 크기가 1기가 바이트에 가까운 것이어서 처리 속도도 매우 느렸다. 결국 처리속도와 파일 관리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 직접 사용이 되지 못했다.
한편, KCI(한국컴퓨터주식회사)의 24시간 무인 자동 지급기에서 사용되는 화면 제작도 이들이 새롭게 선보인 것 중에 하나였다. 지금까지 자동 지급기에 나타난 화면 처리보다 한 단계 앞서는 것으로 14인치 컬러 모니터에서 터치 스크린 방식을 사용하며 은행업무를 일목 요연하게 보여주기 위해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였다.
이 기계는 금전처리를 하고있지 않을 때에는 은행의 광고나 외부 광고를 화면에 표시하도록 하여 일거양득의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이 제품의 가격은 같은 수준의 기능을 가진 외국 제품보다 약 1천만원이 저렴하여 수입 대체 효과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주택은행의 자동 지급기에서 사용될 광고와 그래픽 화면을 제작하고 있어 이들의 발걸음은 더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화상음은 멀티미디어를 우리 생활 깊숙히 파고들게 할 업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개의 중소 업체들이 쓰러지는 마당에 기술을 갖고 있으나 자본력이 약한 업체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들의 땀과 노력을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준다면 우리의 기술은 머지않아 선진국 수준에 이를 것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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