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100장면 - 20. 호족 연합정권의 대두
기원후 25년 유수가 후한을 건국하고 황제의 위에 오르자, 어릴적부터 그를 보아왔던 고향 어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문숙(광무제의 자)이 다만 정직하고 유화할 분, 농담도 잘하지 않고 얌전한 보통 청년이었는데,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를 줄이야..."
이 말을 들은 유수는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유화의 길에 의해서 하고자 하노라" 라고 말했다.
유수는 장안의 대학에 유학했던 온유하고 실직한 지주 청연으로 농업경영에 몰두하고 있었으나, 반왕망 운동의 물결을 타고 호족연합군의 대표로 부상, 뒷날 빛나는 무공의 황제', 즉 광무제라는 시호를 받은 인물이다.
전한 경제의 6세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가 새 왕조의 창업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호족들의 지지와 후원속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유수 그 자신 또한 하남성 남양의 호족이었으며, 그의 아내 번씨도 명문 호족의 딸이었다.
왕망이 이들 호족세력을 억압하고 대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다시 강력한 황제권을 건설하려다가 실패했다면, 유수는 이들 세력을 인정하고 이들과 손잡음 으로써 '유화한' 후한 정권의 수립에 성공했다고 하겠다.
따라서 신나라의 모든 제도가 폐지되고 전한시대의 것 복귀되었으나, 전한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후한 시대에도 꾸준히 생산력이 증대되고 인구가 증가했으나, 후한의 절정기에도 꾸준히 생산력이 증대되고 인구가 증가했으나, 후한의 절정기에도 중앙정부의 조세대장에 오른 지배민의 수는 전한시기에 미치지 못했다.
전한의 고조 유방이 제국 건설을 마감한 후, 최고 일등공신들에게까지 무자비한 숙청을 가하면서 황제권을 공고하게 했던 일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광무제는 공신들뿐만 아니라, 저항하다 항복한 이에게도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당한 지위와 명예를 부여하여 회유했다.
양시대를 가르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호족세력이 이제 역사의 전면에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후한 정권은 토지 소유의 제한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토지문제에 해단 정부의 무정책을 틈타 대토지 소유는 더욱 확대되고 장원 형식에 의한 소작제도는 더욱 보편화되었다.
우리는 이미 춘추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경제의 발전이 사회의 변화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 우경의 보급 등에 기초하고, 국가적 규모의 치수, 관개공사 등에 의한 생산력의 향상은 농경에 있어서 씨족 단위의 집단노동에서 개별 소가족 단위의 경영을 가능하게 하고 토지의 사유제, 씨족공동체의 해체를 촉진했으며, 전제 군주제의 출현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미 전한 시기에 이르자 소농민 사이에는 부농과 빈농의 계층 분화가 진행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제 지난 시기처럼 주위 농토의 개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만큼 여분의 토지가 넉넉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건강한 자영농민 외에 대토지 소유자가 등장,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부농 중에서 개간이나 매입, 혹은 겸병 등의 방법으로 농토를 확대하여 대토지 소유자로 성장한 호족들은 혈연관계와 강고한 동족의식으로 결합, 향촌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다.
이들 호족은 농지뿐만 아니라 주변의 산림이나 원야, 지소를 사들여 장원을 구축, 농민을 압박해들어갔다.
반면, 토지를 잃고 소작이나 고용농, 심지어는 노비로 떨어지는 농민들이 생겨났다. 살 길이 막연해진 농민들을 고향을 떠나 도적질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폭동을 일으켜 전면적인 저항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 한 대 이후 왕조의 역사가 외형적으로는 순환의 양태를 띠게 되는 경제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자영농민에 부과하는 세금을 기초로 운영되는 왕조는 점차 대토지 소유제의 진전과 이에 수반하는 자영농민의 감소로 점차 기울어져가다가 마침내는 농민의 반란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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