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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11 고사성어 - 욕개미창, 출이반이, 곡학아세, 겸청즉명, 부중치원




욕개미창 (欲蓋彌彰)

欲(하고자 할 욕) 蓋(덮을 개) 彌(널리 미) 彰(밝힐 창)

진상을 감추려 하나 모두 드러나게 되는것을 뜻한다.

  

춘추좌전 소공(昭公) 31년조의 이야기다. 춘추시기, 노(魯)나라 소공 31년 겨울, 주나라 대부 흑굉(黑肱)이 주나라를 배반하고 노나라에 투항하자, 그가 다스렸던 남(濫)땅은 노나라에 편입되었다. 


흑굉은 본시 신분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굳이 그의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공자는 흑굉으로 인하여 국토의 변동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 춘추에 이 사건을 분명히 기록하고,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름이 나타나 있으면서도 나타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한 일이 있다. 토지를 지니고 군주를 배반한 일은, 그의 지위가 비록 낮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땅 이름을 써서 밝히고 그 사람을 말했는데, 그것은 결국 불의(不義)가 되고, 그 불의는 없어지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이 움직이게 되면 예의를 생각하고, 무슨 일을 행하면 의리를 생각하며, 이익을 위해서 비뚤어지지 않고, 의리를 위해서는 괴로워하지 않는다. 혹은 이름나기를 원하나 이름나지 못하게 되고, 혹은 이름을 감추려 하나 이름이 나타나게되는 것은 불의를 징벌하려는 것이다(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 


욕개미창(欲蓋彌彰) 은 진상을 감추려 하나 모두 드러나게 되는것을 뜻한다.

  




출이반이 (出爾反爾) 

出(날 출) 爾(너 이) 反(되돌릴 반) 爾(너 이)

언행의 앞뒤가 서로 모순되고 신의(信義)가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추나라는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추나라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정치를 반성하지 않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아 패하였다면서 그들을 탓하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목공에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추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노약자들이 도랑에 빠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수효가 천명에 가깝습니다. 한편 관리들은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물자가 가득 차 있었는데도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증자는  경계할지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出乎爾者, 反乎爾者也) 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한 것을 다시 갚았던 것이니, 왕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출이반이(出爾反爾) 는 언행의 앞뒤가 서로 모순되고 신의(信義)가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곡학아세 (曲學阿世)

曲(굽힐 곡) 學(배울 학) 阿(아첨할 아) 世(세상 세)

신의 학문을 굽히면서 권세나 세속에 아첨하는 것 을 뜻하는 말이다.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다. 한나라 경제(景帝) 때, 시경(詩經)에 정통했던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얼마 후,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당시 60세이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사람도 함께 부름을 받았다. 공손홍은 늙은 원고생을 꺼리며 마땅치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에 원고생은 공손홍의 태도를 보고 말했다.


바른 학문에 힘써 직언(直言)하도록 하시오. 배운 것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곡학아세(曲學阿世) 란 자신의 학문을 굽히면서 권세나 세속에 아첨하는 것 을 뜻하는 말이다.

  





겸청즉명 (兼聽則明)

兼(겸할 겸) 聽(들을 청) 則(곧 즉) 明(밝을 명)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 을 뜻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 태종(太宗) 정관(貞觀) 2년조의 이야기다. 당나라 태종 때 위징(魏徵)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역사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항상 당태종에게 여러 가지 계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서기 628년,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은 당태종이 그에게 물었다. 


나라의 군주로서 어떻게 해야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또한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쪽 말만 듣고 그것을 믿는다면 일을 잘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위징은 역사적인 교훈을 예로 들면서, 군주의 편파적인 판단이 얼마나 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하였다. 


겸청즉명(兼聽則明) 이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 을 뜻한다.

  




부중치원 (負重致遠) 

負(질 부) 重(무거울 중) 致(보낼 치) 遠(멀 원)

무거운 물건을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지 촉서(蜀書) 방통(龐統)전의 이야기다. 삼국시기, 동오(東吳)의 대도독(大都督)이었던 주유(周瑜)가 병으로 죽자, 그의 친구인 방통은 몹시 슬퍼하며 달려와 조문을 하였다. 


박학다식하고 명성이 높은 방통이 동오지방에 오자, 동오의 명사(名士)인 육적, 고소, 전종 등은 그와 친분을 맺었다. 


문상을 마치고 방통을 환송하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방통은, 육적에 대해서는 잘 달리는 말과 같은 인재라고 하고, 고소는 힘든 일을 이겨내며 일하는 소와 같다라고 하고, 전종은 지혜는 좀 떨어지지만 그 역시 당대의 인재라고 평하였다. 


이에 어떤 사람이 방통에게  그렇다면 육적의 재능이 고소를 능가한다는 뜻입니까? 하고 묻자, 방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말은 민첩하여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한 사람 밖에 태울 수 없소. 하지만 소는 하루에 삼백리를 갈 수 있거니와, 소가 짊어진 짐이 어찌 한 사람의 몸 무게만 되겠소? 


부중치원(負重致遠) 이란 무거운 물건을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 을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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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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