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카드한장

미국 영화에 흑인여자 판사가 많이 나오는 이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 인구 중 흑인 인구 비율이 대략 12% 안 팎. 그럼 미국 판사 중 흑인 판사 비율도 12% 안팎이 되는 게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理想)일 뿐 현실은 다르다. 

한 통계는 미국의 백인 판사 비율이 98%에 이른다고 말한다. 흑인 판사는 겨우 2% 정도의 그 부족분을 채우는 것에 머문다는 뜻이다. 이 마저도 그 2% 중 히스패닉과 동양인 판사가 하나도 없다는 가정하에나 가능한 비율이다. 

이 통계 자료를 무조건 믿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하다. 자료의 출처가 '양키 사법 제도, 동양인은 안전한가?'라는 무시무시한 글이기 때문이다. 좀더 냉정한 자료인 '실리콘 밸리의 샌타클라라 카운티의 경우 지방 판사와 지방 검사의 80%가 백인 이라는 신문 기사가 있다

그 지역 인구 중 백인 비율이 50%가 채 안되는데도 그 정도 비율이다. 흑인 판사가 흔치 않다는 사실은 사형 집행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1977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피해자 중 절반이 흑인이다. 그러나 범인이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의 80%는 피해자가 백인일 때다. 극단적으로 다시 말해, 백인을 죽이면 사형을 당하고 흑인을 죽이면 사형을 면하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법정에서도 흑인 판사가 득시글댄다면 상식적으로 이런 수치가 나오기 힘들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흑인 판사를 찾는 건 한국에서 예술 영화 상영관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흑인이면서 여자이기까지 한 판사를 찾는 어려움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할리우드 영화에는 왜 흑인 여성 판사가 자주 나오는가?

헐리우드영화는 PC(Politic Correctness)에 상당히 많은 집착을 보인다.그 흑인이라는 인종적 마이너리티이면서 여성이라는 성별적 마이너리티이기도 한 흑인 여성 판사를 내세워 미국이라는 나라가 꽤나 평등한 조국인 것처럼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SF 공상과학 같은 영화의 상상력은 아니다.

흑인 여성 판사는 엄연히 실존했고 현재도 실존하며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인 마틸다 볼린이 최초의 흑인 여성 판사로 임명된 1939년 이래,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플로리다 주 개표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법정 다툼을 판결한 클라크 판사에 이르기까지 비록 많지는 않은 수지만 미국 흑인 여성 판사는 실존해 왔다.

영화계 인사들과 달리 법조계 인사들은 좀더 현실적인 잣대로 영화의 판사 캐스팅을 평가한다. 가령 현실에서 엄연히 소수인 여성 판사가 영화에는 남성 판사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그 배경이 가정 법원이라는데서 찾는 것이다. 

실제로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영화보다. 이혼 소송이나 양육권 분쟁 등을 다룬 영화에서 여성 판사가 등장하는 체감 빈도가 훨씬 높다. 또한 흑인 판사는 자주 나오는 데 반해 흑인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덜 나오는 이유, 기껏 나와 봐야 국선 변호인으로 나오는 까닭도 그들은 좀더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미국 로스쿨 출신의 김모 씨는 "흑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은 당연히 흑인이고 따라서 가난한 범죄자가 많다"며 "돈 많은 기업 오너 중에 흑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변호사를 해봐야 돈 되는 사건을 맡을 가능성이 적다"고 설명한다. 

의뢰를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변호사와 달리 판사는 일하기 싫어도 사건을 배당받는 직업이다. 상대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얻는 동시에 사건 수임 과정에서 인종 차별의 서러움을 덜 느낀다. 과연 흑인 법대생들이 변호사보다 판사를 선호할 만하다. 

시간이 흐르면 이 불평등한 현실이 시정될 거라 믿을지 모르지만 대학 입학시 소수계를 우대하는 정책이 지난 1996년 위헌 판결을 받은 직후 흑인들이 법대 들어가기는 더 힘 들어졌다. 실제로 판결 직후 제도를 수정한 첫해 텍사스 주립대 로스쿨 신입생 488명 중 흑인은 고작 4명 있었단다. 

1년 전만 해도 40명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앞으로 미국에서 흑인 판사, 흑인 변호사를 구경하는게 더 어려워질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