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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7.28 마이컴 1993년 2월호 - 21세기 첨단 연구소2, 금성사 정보기술 연구소




마이컴 1993년 2월호 - 21세기 첨단 연구소2

금성사 정보기술 연구소, 정보시스템 연구소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 금성이 광고를 하면서 사용했던 이 광고 문안은 어느 유행어보다 힘이 있어 단시일내에 사라져 버리는유행어와 달리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며 이 분야, 저 분야에서 아주 쓸모있는 격언(?)처럼 사용되고 있다.


한번 선택해 주기만 하면 십년은 확실히 보장해 준다는 뜻이다. 광고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보장하는 약속이다. 물론, 광고에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지만 과장에도 정도가 있다. 


한 번 광고에 속은 사람들은 결코 그 업체의 말을 다시 신뢰하지 않는다. 때문에 광고는 사실을 근거로 소비자에 게 하는 약속이어야 한다. 


좋은 광고는 좋은 제품에서 나온다는 광고쟁이들의 금언처럼, 금성사의 이런 자신감은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자신있는 '선언'을 가능하게 한 좋은 제품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연구 역사에서 그 뿌리를 찾을수 있다.



오늘과 내일을 함께 준비하기 위한 포석, 연구소를 튼실하게  

금성사는 1975년 설립하여 운영하던 중앙 연구소로부터 87년 정보기기 관련분야를 독립, 현재의 정보기술연구소가 자리한 문래동의 강서빌딩으로 이전시켰다. 


그 후 91년까지 컴퓨터/사무기기 연구소로 운영하다가 지금의 정보기술연구소와 정보시스템연구소로 분리, 시스템연구소는 평택으로 옮겼다. 정보기기 관련 연구소는 이렇게 국내에 두 곳, 88년 동경에 설립된 동경 개발실이 있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이루어진 금성사 연구소 개편의 특징은 '오늘'과 '내일'을 체계적으로 동시에 준비해 나가자는 점에 있다. 꿈만 먹고 살 수도, 하루살이처럼 근시안적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기업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을 먹여 살릴 정보시스템연구소와 내일을 준비해 줄 정보 기술연구소가 탄생한 것이다. 



정보시스템 연구소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서울을 막 벗어나면 얼마 가지 않아 경기도 오산이 보인다. 이 오산에 자리잡은 정보시스템연구소는 행정구역상의 주소는 평택이다. 평택공장에는 정보시스템 연구소 외에도 금성사의 가전 이나 다른 분야의 연구소도 함께 들어있다. 


공장과 연구소를 연결해 더욱 빠르고 의견 교환이 쉬운 제품 개발을 위해 구축한 체제이다. 


총 360여명의 연구원중 박사 25명, 석사 250명, 학사 85명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평택연구소는 현재 1년 총 매출액의 약 8%를 연구비로 지출한다고 관계자는 밝힌다. 


정보시스템연구소는 PC연구실, 시스템연구실, 금융기기연구실, 주변기기 연구실, 팩스연구실, 연구지원실의 6개 부문으로 나누어 각 분야의 연구를 진행중이다.


PC 연구실은 최근에 486SX급 컬러노트북을 개발하는 등 점차 소형화 경량되어가고 있는 하드웨어 추세에 맞추어 시장에서 팔릴만한 제품들을 개발한다. 여기서 개발한 286, 386 노트북은 현재 제니스로 OEM 수출되며, 데스크톱은 인텔로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시스템연구실은 주로 중형 이상의 컴퓨터 개발에 주력한다. 국책 과제인 타이컴 개발에도 참여하였고 이전에는 워크스테이션 개발도 했었다.


금융기기 연구실은 현금 자동지급기나 금융단말기와 같은 은행관련 시스템을 개발한다. 


주변기기 연구실은 도트부터 레이저까지 각종 프린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로 프린터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던 금성사는 89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번째로 레이저 빔 프린터를 개발하였고, 92년부터는 기능을 개선한 2차모델 GLP-1150 개발에 성공하였다.  


팩스연구실은 1980년 금성전기에서 시작하여 87년 금성사로 업무가 이관된 팩시밀리 사업을 지원하는 연구실이다. 팩스연구실은 앞으로 레이저 빔 프린터 엔진을 이용한 보통용지 팩시밀리와 우리 시장 특성에 맞춘 한국형 인공지능 팩시밀리를 개발 중이다.  


연구지원실에서는 위의 5개 연구실에서 필요한 제반업무들을 지원하는데, 캐드시스템으로 각 연구실에서 필요로 하는 도면 설계라든가 외국의 표준이나 규격 획득을 위한 측면 지원 작업들을 수행한다.





제품 기획부터 고객의 손에 이르기까지

정보시스템연구소는 제품 개발의 기획 단계부터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여 반응을 보이는 단계까지 연결시켜 이들간에 피드백 작용이 이뤄지도록 해 놓고 있다.  


신제품 아이디어는 누구나 내놓을 수 있다. 회의를 통하기도 하고 공모 제도나 고객의 의견 조사를 통해 대강 제품의 윤곽을 그린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기획안을 작성하고, 다음에는 제품 개발에 따르는 세부 사항들을 철저하게 조사한다. 시장동향 이나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분석한 후 결정이 되면 제품이 되기전 시제품 단계인 프로토 타입을 만든다.  


일단 '성능'을 제일 우선으로 하고 갖가지 시험단계를 거친다. 다음에는 샘플을 만들어 성능과 기능을 점검한다. 이 때 만들어지는 제품은 거의 반 완제품이다. 그런 다음 전수받은 기술을 살펴보고 더욱 많은 연구인력을 투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까지는 연구소와 공장이 공동으로 작업을 해 나간다. 그리고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 출하하고 유통 경로를 통해 고객의 손에 닿게 된다. 이렇게 판매된 제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다시 조사해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참고하게 된다. 


소비자와 제일 가깝게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정보 시스템연구소는 이렇게 새롭게 개선할 부분들,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Needs)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 고 있어야 하는 연구소이다.



정보기술연구소

"기초 응용 기술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품이 모양을 제대로 갖추어서 양산되기 전의 기초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지요."라고 정보기술연구소 기획실 김유덕 실장은 정보기술연구소의 역할을 정의한다. 현재 평택과 분리되어 식구들을 대부분 내려보내고 현재는 7∼80여명의 연구원이 문래동 강서빌딩에서 4실로 나뉘어져 연구를 하고 있다.  


1실은 주로 국책연구소와 공동으로 일을 한다. 유닉스같은 운영체제로 운영되는 중대형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는데, 중앙처리장치 중심에서 벗어나 각 부분별로 통제되는 분산 처리 방식의 증가에 맞춰 이에 대처할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이들의 몫 이다. 멀티미디어 워크스테이션 개발과 이에 맞는 소프트웨어도 연구중 이다.  


2실은 주로 통신과 관련한 기술을 연구한다. 차세대 팩스나 국제 표준 화기구(ISO)가 작성한 컴퓨터통신 프로토콜에 관한 국제표준 규격인 

OSI(Open Systems Interconnection)의 7레이어를 구현하는 ISDN용 단말기를 개발한다.  


3실은 개인용 단말기에서 돌아가는 멀티미디어 개발용 툴과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한다. 홈 PC도 3실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현재 단독으로 운영되는 컴퓨터 시스템들이 점차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상황에 맞춰 이 단말기들을 지원할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4실은 3실에서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방이다. 더 작고 더 가벼운 컴퓨터, 랩 톱이나 노트북, 괌톱과 같은 컴퓨터 개발에 주력한다. 이들은 또한 가전과 통합되는 새로운 개념의 전자기기도 연구하고 있다.




금성의 PC 개발 십년, 8비트 FC-100부터 486SX 컬러노트북까지  

1958년 금성사가 설립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금성사와 함께 떠 올릴 수 있는 제품들은 많다. 금성사가 컴퓨터와 처음 연을 맺은 건 1977년 마이크로컴퓨터를 개발하면서 부터이다. 그 이후 PC와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발전상황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처음 금성사에서 PC가 나온 건 1982년 5월이다. 중앙연구소 제 1그룹과 공장 설계실팀이 개발한 패미콤 모델 'FC-100'은 83년 2월부터 양산을 시작해 주로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활용되던 제품이다.  


그 다음줄에는 1984년 3월 국내 최초로 개발한 IBM PC와 호환 16비트 컴퓨터가 서 있다. 이때부터 '마이티' 시리즈가 시작된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봄에 열린 컴덱스 쇼에 출품되어 'Goldstar'라는 자체 상표 를 달고 전시되면서 국내 PC 업체가 세계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자체 평가이다.


그리고는 업무용 컴퓨터인 '마이티 주니어'를 85년에 개발되었다. 전송 거리 300미터 이내의 중소형 건물에서는 한대의 주 컴퓨터에 최고 254대의 주변 컴퓨터를 연결하여 각종 자료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근거리 통신망을 갖춘 제품이었다.  


86년에는 '마이티-AT'와 '마이티-16 II'가 선보인다. 640KB의 주기억용량을 가진 마이티-16 II는 20메가 하드디스크를 채용한 XT컴퓨터였다. 그 후 1년만인 87년 8월에는 32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32비트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는데 4년, 16에서 32비트로 뛰어넘는데는 불과 1년이다. 


날이 갈수록 급속하게 변모하는 컴퓨터 업계의 빠른 발전속도를 읽을 수 있다. 당시는 일반 사용자들이 없어 캐드나 전문 엔지니어들이 주로 이용하던 32비트 PC가 이젠 아주 보편화된 것을 봐도 역시 국내 PC계는 괄목상대 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금성사는 88년 80286 인텔 칩을 내장하고 EGA 보드를 지원하는 랩톱을 개발하여 책상 붙박이던 컴퓨터의 이용 장소를 바꾸었다. 88년에는 랩톱과 함께 386PC인 386T를, 91년에는 286, 386 노트북을, 92년 2월에는 단순히 CPU카드만 교환이 가능한 모듈라 PC 개발에도 성공하였다. 그리고 92년 11월에 486SX 컬러노트북을 개발한 것이다.


PC의 국산화가 과연 얼마나 이루 어졌는가, 과연 하드웨어 조립이 얼마나 우리 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도 다르고 평가도 분분하다. 그러나 초창기부터 국내 PC 업계를 주도해 온 금성사의 입장은 이렇다. 


"우리나라가 제일 처음 자본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건 PC의 하드웨어 조립을 통해서였습니다. 자본도 부품도 자원도 없는 국내 컴퓨터 업계가 이정도 성장하고 있는 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조립 기술로 돈을 벌게된 덕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렇게 축적한 기술과 벌어들인 자본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발전을 이루어야 할 때라는 것"이 금성사 정보기술연구소의 김유덕 기획실 실장의 견해이다. 


지금까지 쌓은 자본과 기술력을 토대로 더욱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결코 일면의 진실만을 가지고 단선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국내 컴퓨터 산업 평가, 성마름은 금물  

국내 컴퓨터 업계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서로 문제를 지적하고 모두 전문가인 듯이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젠 차분한 돌아봄과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이 정도까지 성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온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금성사 정보기술연구소 3실을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박영만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내 상황이 외국과 비교할 때 나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떨어지는 부분은 제 시간에 제 물건을 내는 적기출하가 어렵다는 점,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는 70~80% 정도의 부품이 국산인데, 컴퓨터는 그 반대인 부품 현실도 그렇죠. 또 제품을 내놓아도 실제로 거의 수용이 불가능한 적은 규모의 시장 문제도 그렇고, 이건 이렇다, 거건 저렇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복합적으로 문제가 걸린 상황이지요. 그러나, 모든 걸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좀 기다릴 줄 알아야지요. 어느 분야든지 누적된 정보가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우린 이제 차분하게 우리 환경에 맞는 제품 개발로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달변의 박영만 실장은 참고 기다림속에서 차근차근 쌓아가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방에서 멀티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는 안종길 박사는 또 다른 면을 지적한다. 컴퓨터 전문 잡지나 언론쪽에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한다.  


"이제, 언론도 신중하게 알고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너무 '국내 최초', '세계 최초'가 남발됩니다. 대체 어떤 점에서 최초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으면서요. 그저 주어진대로 보도하는 차원에서 탈피해야 할 때가 되었지요. 사안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침착함과 전문 지식을 가지고 보도해야지요.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제대로 전달해 주는 역할이 언론의 몫입니다."


금성 연구소의 핵심인 이들은 성마름은 금물임을 말한다. 모두 제 역할을 맡아주어야 국내 산업의 발전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기술은 무언가 실용적인 결과를 얻는과정  

금성사의 강인구 부사장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기술이란 과학이나 공학지식을 활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등 실용적인 결과를 얻는 과정”이라고 '제 3세대 R&D'라는 책을 인용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계속해서 개발 주체는 기업이며 학교나 연구소는 지원을 해야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성사 연구소는 제품 개발의 주체로 과학이나 지식을 활용해 실용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연구를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연구소 운영 체제를 바꾸었다.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순간의 선택으로 십년을 자신할 수 있는' 더욱 좋은 연구소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얼마나 더 사용자와 친숙한 제품을 선보일 것인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용자로서 제대로 된 반응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맡을 몫이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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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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