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4년 1월호 - 게임 시장을 잡아라 12 

 사업가의 핏줄을 물려받은 「써텍」 

 

 

 


체코 출신 할아버지의 사업가적 핏줄을 이어받은 서로텍 형제. 이들의 타고난 사업가 기질은 게임 소프트웨어에서도 나타났다. 모래를 취급하던 사업에서 출발해 「위저드리」를 탄생시킨 그들의 성공 비결을 뒤져본다. 

 

정리·김태인 기자

 

 

 


건축업자 할아버지

Thousand Islands(세인트 로렌스강 상류 온타리오호 부근에 있는 약 1,500개의 작은 섬들로 캐나다와 뉴욕주에 걸쳐 있다) 지역의 중앙부에 있는 하트 아일랜드 위에는 한 채의 성이 우뚝 서있다. 뉴욕시 왈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창립자가 그의 새로운 신부를 위해 지은 성인데, 그 성은 지금은 뉴욕주에 귀속되어 보트를 타고서나 보러갈 수 있는 인기있는 관광명소가 되버 버렸다.

 

롤플레잉 게임 「위저드리 (Wizardry) 시리즈」를 비롯한 「아카니아 왕국 (Realms of Arkania)」, 「다크 서번트(Crusaders of Dark Savant)」 등 주로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고 있는 써텍(Sir-Tech).


서텍 소프트웨어의 사장 노만 서로텍 (Norman Sirotek)과 부사장 로버트 서로텍(Robert Sirotek) 형제의 할아버지는 한 때 옛 체코슬로바키아(지금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의 역사적인 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건축가이자 건축업자인 프레드릭 B.서로텍 경(Frederick B. Sirotek,Sr)은 그 성을 사들여 개조와 복원을 했으며, 지금 그의 손자들은 성과 마법을 토대로 한 컴퓨터 게임으로 매년 수백만 달러의 매상을 올리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회사 이름 써텍은 서로텍에서 따온 것이다. 서로텍 형제의 할아버지는 원래 체코의 프라하 출신으로 그는 프라하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해 왔다. 하지만 이주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두 자루의 권총과 가족의 모든 자산(회사의 부동산을 비롯한 주식 등)을 내 놓아야만 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던 것이다.

 

캐나다로 이주해 온 서로텍 경과 그의 아들인 프레드릭 서로텍 주니어는 1천 달러의 카드 대출 금액과 약 5백 달러의 돈을 마련, 집짓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현금 거래를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작은 상업용 빌딩(특히 주요소)도 그들의 작업 영역 안에 포함시켰고 오타와 공항의 윈드 터널이나 캐나다 국립 연구 심의회에서 사용하게 될 이온 실험실을 포함한 직선 가속 장치 등의 정부 수주도 따내는 데 성공 했다.

 

 

 


새로운 사업에 눈을 뜬 노만

이처럼 써텍의 초기 사업 방향은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쪽으로 흘러갔다. 프레드릭 서로텍 주니어가 코넬 대학 전산과학과 학생이자 앞으로 「위저드리」를 함께 디자인할 로버트 우드헤드(Robert Woodhead)의 어머니인 제니스(Janice)와 함께 참신한 사업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참신한 사업이란 상품을 만드는 데 수지 가공용 주형을 사용한 것이고, 모래는 수지 주형 가공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 사실, 써텍은 상당량의 모래를 사용했기 때문에 철로로 운반되어야만 했다. 70년대 후반의 철도 산업에서 물품을 싣는 요금은 유난히 유동적이었고 파운드당 1센트의 차이가 그 짐의 수익성과 직결되었다.

 

그래서 제니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현재의 요금을 입력하면 짐을 싣는 것이 이익인지 아닌지를 즉시 알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제니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서로텍은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7천 달러를 들여 애플 컴퓨터를 샀다.

 

철도 운임 프로그램으로 성공을 거둔 로버트 우드헤드는 그 다음으로 써텍의 우편 목록을 처리하게 되었다. 데이터베이스와 비슷한 우편 목록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한 그는 그 자체로도 시장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드헤드는 프레드 서로텍에게 애플 컴퓨터를 트렌톤 컴퓨터쇼 (Trenton Computer Show) 에 갖고가 자신의 우편 프로그램 인포트리(Infotree)를 전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서로텍은 값비싼 컴퓨터를 항공 운수 업체에 맡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반대 입장을 보였다.


서로텍이 반대하자 우드헤드는 자신이 직접 애플을 조심스레 차로 운반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우드헤드는 운전을 할 줄 몰랐고 노만은 그것을 할 수 있었다. 우드헤드가 할 일은 자신을 쇼에 데려다 주도록 노만을 설득시키는 일뿐이었다.

 

노만은 컴퓨터광과 주말을 함께 보내는 일이 별로 탐탁치 않았지만 아틀란틱 시는 트렌톤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또 아틀란틱 시의 도박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수송편을 제공해 주기로 했다.


주말에 노만은 우드헤드를 데리러 왔고, 그는 그때 우드헤드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열광적인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서로텍 집안 특유의 기업가적인 영감이 떠오른 노만은 이 사업의 잠재력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만은 신이 나서 우드헤드에게 컴퓨터를 위한 다른 가능성 있는 제품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들은 공상 과학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여기서 「갤러틱 어택 (Galactic Attack)」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어울어진 자금과 열정

그렇다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들의 아버지인 프레드릭 서로텍 주니어는 즉시 새로운 사업에 대한 확신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컴퓨터는 업무 처리를 위한 기계이지 게임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 대 입장을 보였다.

 

아버지의 이러한 태도에 그들은 완전히 좌절할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적어도 프레드릭이 이 모험에 다른 방법으로 접근 하기 전까지는. "나는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어. 이 모험에 자금을 댈 경우 얼마나 손해를 볼 것인가. 아마도 내 아들들을 하버드 경영대학에 보내는 것보다는 싸게 들겠지. 어쩌면 이 모험은 바닥에서부터 실질적인 사업 경험을 쌓게 해주는 기회가 될지도 몰라"라고 아버지는 생각했다.


시기 적절한 아버지의 자본과 「갤러틱 어택」에 쏟은 우드헤드의 열정이 어울어진다면 이 새로운 모험은 성공을 향해 달음박질 칠 것처럼 보였다. 착실한 판매 수익을 챙기게 해준 이 새로운 사업 외에, 우드헤드는 서로텍의 눈길을 끌만한 또 다른 상품을 내놓았다.

 

그는 코넬 대학 학생인 친구 앤드류 그린버그(Andrew Greenberg)가 디자인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서로 상대하면서 즐기는 일종의 역할극 놀이에 반해 있었던 그린버그는 그것들을 컴퓨터 상에서의 환상적인 롤플레잉 게임으로 변신시켜 놓았던 것이다.

 

서로텍 일가의 동의를 얻은 그린버그와 우드헤드는 그 게임을 「절망의 지하 감옥(Dungeons of Despair)」이란 이름으로 팔기 위하여 손질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절망의 지하 감옥」은 「Wizadry :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가 되었다. 사진 복사된 매뉴얼과 함께 플라스틱 백에 담긴 이 초판 위저드리는 발매 첫 해 10만 카피의 판매를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서로텍 일가와 우드헤드는 그들의 부모가 얻어 준 3~4평 남짓의 비좁은 공간에서 게임을 만들어야만 했다.

 

오늘날, 써텍은 다양한 포맷에 대응하는 7가지의 서로 다른 위저드리 게임을 판매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위저드리 캐릭터 디자인용 유틸리티 또한 내놓고 있다.


이들 서로텍 일가의 기업가 정신은 서로텍이 한 때 캐나다 최대의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를 설립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섀넌 에드워즈(Shannon Edwards)라는 사람과 함께 일을 했는데, 그는 커다란 이스트 코스트 유통을 소유하고 있었다.

 

캐나다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노만과 로버트 서로텍은 에드워즈, 렌 프란체스치니 (Len Francescini)와 함께 프란텍 소프트웨어 유통을 83년부터 87년까지 운영하게 되었다.


1987년, 프란텍 소프트웨어 유통 회사는 마이크로-D에 팔렸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회사를 팔았을까? 그것은 그들은 더욱 더 큰 유통 업체를 꿈꾸었으며 그들의 본연의 사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한번 판매한 제품은 끝까지 책임진다

오늘 날, 써텍 소프트웨어를 찾는 고객들은 위저드리에 맞추어진 강렬한 촛점에 압도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위저드리가 써텍 유일의 제품은 아니지만, 그들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써텍은 이들 제품 외에도 회계 패키지 「The Clan」,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Police Artist」, 아케이드 게임 「Star Maze」와 「Freakin's Funky Fuz zballs」, 다각형 시뮬레이션 「Deep Space」, 그리고 액션 어드벤처 게임 「Seven Spirits of RA」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출판했다).


써텍의 「위저드리 시리즈」는 특히나 일본에서 그 인기가 높아 일본에서의 마케팅에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은 일본에서의 특별한(?) 인기에 힘입어 나레이션된 위저드리 어드벤처로 꾸며진 오디오-CD를 비롯한 라이선스된 위저드리 캐릭터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과 만화, 그리고 위저드리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여러 종류의 프라모델과 밀납 인형들을 태어나게 했다.

 

일본 아스키(ASCII)와의 전략적 동맹이 가져다 준 마케팅/라이선싱 성공의 건너편에 똑똑히 보이는 써텍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종사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브렌다 가노 (Brenda Garno)와 필 미첼(Phil Mitchell), 토드 애슬리(Todd Ashley)가 손꼽힌다.

 

브렌다 가노는 작가로 위저드리의 매뉴얼을 쓰는 한편, 써텍의 모든 온라인 지원을 맡고 있다. 고객 지원부의 필 미첼은 제품 교환요구 처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한 고객은 그의 앞으로 배달된 편지에 이렇게 썼다. "기술 지원에 있어 당신은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한번 판매한 제품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신념하에 그는 "나는 바로 당신을 위해 새벽 3시까지 깨어 있습니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을 위해 새벽 3시까지 깨어있습니다." 써텍의 철저한 고객위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써텍 소프트웨어는 한 번 판매한 제품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신념을 갖고 미래를 맞이할 채비를 갖추었다.

 

 

토드 애슬리는 힌트 부대를 진두 지휘한다. 그의 일은 위저드리의 세계를 통해 게임 사용자들을 돕는 일로, 때때로 다른 회사의 제품에까지 친절한 힌트를 알려준다. 써텍의 고객 제일주의 정신은 배리 카이어 (Barry Kiah)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발매 1년 전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다크 서번트(Crusaders of the Dark Savant)」의 주문에 대한 검색 과정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캘리포니아 리던도 비치의 데니 워크맨(Denny Workman)에게 초판 제작본을 보내주도록 배려했다. 또한 PR과 마케팅 2인조인 로리 시어스(Lori Sears)와 셰리 미첼(Sh- ari Mitchell)의 익살맞은 협력 정신은 전세계의 팩시밀리에 침투, 그들의 생생한 정보를 신나는 설명과 함께 알리고 있다.


이 밖에 하드디스크의 용량을 적게 차지하도록 디자인하는 데이비드 브래들리 (David Bradley)와 개성에 기반을 둔 상호 작용 및 리얼타임 전투에 중점을 둔 아이언 커리(lan Currie)의 노력이 맞물려 보다 매끄러운 제품 만들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두 디자이너들은 외부 디자인 숍에서 팀 리더로서 활약하고 있다. 그들은 써텍의 개발자로서 뿐만 아니라, 미래에 디자인팀을 이끌 리더로서의 잠재적인 '2군'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마케팅을 꿈꾼다

써텍의 과거가 전반적으로 「위저드리 시리즈」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사의 중역들은 끊임없이 미래를 주시하고 있다. 로버트 서로텍은 1992년은 새로운 시장에 들어서는 한 해였다고 설명했다. 써텍에 있어 92년은 아시아에서 놀랄만한 성공을 거둔 한 해였고, 유럽을 가로지르는 몇몇 전략적 동맹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의해 유럽에서의 거대한 판매 기반이 이루어질 뿐아니라, 미국으로 새로운 상품이 도입될 것이다.


써텍의 목표는 현재의 상품에다 더욱 더 많은 제품을 더해 위저드리 세계의 안팎을 확고히 다지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일 품목 회사라니 롤플레잉 게임만 만드는 회사라느니 하는 일반인들의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만약 써텍이 새로운 테크놀러지(광 매체나 인터액티브 비디오 게임과 수퍼 VGA 그래픽)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로버트 서로텍 부사장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몇 년동안 새로운 기술을 눈여겨 보아왔다"고.

 

「Seven Spirits of RA」의 디자이너인 랜돌 보어(Randall Bore)는 CD-I 버전 게임에서 손을 뗐다. 그 게임은 플랫 폼이 안정되면 발매하고자 했던 것이 었다. 그러나, 불운하게 게임도 플랫 폼도 제품을 정당화 시킬만큼의 수용성을 갖지 못했다. 

 

노만 서로텍은 실질적인 플랫폼이 준비되면 새로운 테크놀러지에서 경쟁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를 아시아에 두자고 제의했다. "인터액티브 비디오가 우리를 사라지게 하지는 못합니다."


써텍 소프트웨어는 기업가적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회사이다. 서로텍 노만과 로버트 서로텍은 성을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적인 사업이라는 성을 쌓았고, 새로운 테크놀러지와 사업 확장이라는 거친 물살을 그들이 세인트 로렌스강에서 모터 보트를 탈 때처럼 헤쳐 나아갈 준비를 갖추었다.

 

이제 써텍은 위저드리의 초창기 이래 가장 주목할 만한 도약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협조 : 금성소프트웨어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4년 1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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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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