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6월호 - 사람과 사람들
'홍길동'의 에이 플러스 학점 받기
「조선국 세종대왕 즉위 십오년의 홍희문 밖에 한 재상(宰相)이 있으되 성은 홍이요 이름은 문이니 사람됨이 청렴강직하여 덕망이 거룩하니 당세의 영웅이라. 일찍 용문(龍門)에 올라 벼슬이 한림(翰林: 조선 조 때, 예문관의 '검열'을 달리 이르던 말)에 처하였더니 명망이 조정의 으뜸되매 전하께서 그 덕망을 높이 여기사 벼슬을 더하사 이조판서로 좌의정을 하사하시니 승상이 국은(國恩)에 감동하여 더욱 보국(報國)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매 시화연풍(時和年豊 : 나라 안이 태평하고, 또 풍년이 듦)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 - 홍길동전 서문에서 -
게임에 푹 빠진 사람들
지난 3월 1일, 홍길동전(洪吉童傳,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소설. 정승의 아들로 학식 · 재주가 뛰어난 홍길동이 첩의 몸에서 태어난 탓으로 천대가 심하여 집을 나와 활빈당을 조직하고, 양반 계급을 괴롭히고 가난한 양민들을 돕다가 이상적인 왕국을 건설한다는 내용. 최초의 한글 소설임)을 PC 게임 으로 만들겠다는 옹골찬 기세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민속촌을 찾아갔다.
그날따라 봄을 시새워하는 꽃샘 추위가 맹위를 떨쳐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바람은 그들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건만,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던 비디오 카메라와 카메라, 연필 등은 쉴사이가 없었다.
그것들은 각각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느라 초가집과 동헌(東軒: 지방 관아에서 관찰사 · 병마절도사·수군 절도사 · 수령 등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 저잣거리 (오늘날의 시장) 등을 필름에 담거나 노트에 그리느라 조금의 틈도 없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 민속촌을 찾은 이들은 에이 플러스 (A+)팀 사람들로 이들이 홍길동전을 게임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작년 8월 무렵이었다.
에이 플러스하면 8비트 애플시절부터 애플에 관계된 소프트웨어 분야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면서도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한 한편, 스피치 씽을 비롯한 보이스 마스터, 애들립 카드 등 음악 카드도 제작했던 곳으로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런 곳이었다.
에이플러스가 작년 6월, 그간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게임 개발쪽에 눈을 돌린 이유는 팀 사람들 모두가 게임을 미치도록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게임 개발에의 참여는 오히려 뒤늦은 느낌마저 든다.
홍기동전은 플레잉 게임에 똑 맞아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홍길동전'은 모두 7명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조언을 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언어는 터보 C 2.0과 어셈블리어를 사용했으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는 디럭스 페인트를 비롯한 오토데스크 애니메이터, 그리고 자체적으로 만든 그래픽 툴을 사용했는데, 가장 커다란 특징은 가로 11도트 X 세로 16도트의, VGA 256 컬러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의 한글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또한 게임의 소재 자체가 우리 것이다 보니 음악 역시 우리네 정서에 맞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애들립과 미디를 지원하고 있는 음악은 권오준 등 아주대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예를 들어 길동이 집을 떠날 때의 졸졸졸 물흐르는 소리와 조금은 슬픈 곡조인 듯한 대금 소리, 가야금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애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홍길동전을 한글 롤플레잉 게임 (Role PIay Game : RPG)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기획을 담당한 권기태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케이드 게임의 경우 국내 개발팀들이 있어 롤플레잉 게임 쪽을 겨냥했습니다. 홍길동전은 이야기 전개가 롤플레잉 게임에 가장 알맞는 소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선택했구요"
장애물 경주같은 어려움 겪어
이들이 「홍길동전」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겪은 어려움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자금이었다. 모 회사의 게임 메뉴얼을 번역해 주는 대가로 받는 돈이 수입의 전부인 만큼,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주는 월급과 사무실 임대료, 각종 소모품 구입비에는 턱 없이 모자란다.
권기태씨가 농담삼아 내뱉은 "집에서 조차 사람 취급도 못받는 지경"이란 말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쪼들리는가를 잘 나 타내 준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은 비단 이 곳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게임 제작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에이 플러스 멤버이면서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담당한 이창재씨를 비롯한 프로그래머인 박상천씨, 프로그래머 겸 그래픽 디자이너인 이광배씨는 별 어려움 없이 맞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정도의 인원으로는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더군다나 프로그래머 1명과 그래픽 디자이너 1명이 도중에 하차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일손이 더욱 딸렸던 것이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올 3월, 그래픽 디자이너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전진욱씨를 맞아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전진욱씨는 그 때까지만 해도 PC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어서 기초적인 PC 사용법에서부터 그래픽 프로그램 사용법까지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진욱씨는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해 그리면 아직까지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 비해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반복적인 작업은 PC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이것들 외에도 이들을 괴롭힌 것은 게임에 대한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시나리오였다. 게임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그리 좋지 않은 우리나라이고 보면, 변변한 게임 제작에 관한 책이 있을리 만무하다.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표현 기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달리 참고할 만한 자료도 없구요."라고 말하는 이광배, 박상천씨의 말에서도 그 어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이들은 외국 게임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막막하기만 한 시나리오 각색
국민학교 4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이 게임은 원전과 번역본으로 된 두 권의 홍길동전을 참조해 가면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물론 이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원전을 100% 반영한 것이 아니다. 커다란 줄거리는 원전에 충실을 기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각색을 했다. 예를 들어 원전에는 없는 인물을 등장시키기거나, 해인사 스님의 경우 원전에서는 썩 좋지 않게 묘사되었지만 게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정서적인 면도 고려, 적과 싸울 때 죽인다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적을 도망가게 하거나 아니면 타일러 보내는 식으로 처리했다.
예를 들어 율도국 야타왕의 경우 홍길동과의 싸움에서 졌을 경우 왕관이 떨어지는 그림으로 의미를 대신하는 등 가급적 직접적인 표현을 피했다.
그러나, 원작 때문에 오히려 게임 만들기에 지장을 주기도 했단다. 시나리오를 맡은 이창재씨의 말을 빌면 원작이 있기에 메탈릭한 이미지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등 상상에 제약을 받은 것이다.
현재 국산 게임이 아케이드 일색인 가장 커다란 이유 가운데 하나로 시나리오 작가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막막했어요. 단순히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흐름상 흥미를 유발 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픽의 경우 투자를 많이 하면 외국 게임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만, 시나리오의 경우는 그렇지 않거든요"라면서 그 좋은 예로 울티마를 들었다.
'울티마 M 파트 II'의 경우 시나리오에만 10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그것은 무대가 커짐에 따라 혼자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이 게임에는 아이템이나 배경 디자이너가 따로따로 있으며, 게임 테스터만 해도 15명이나 되는 등 게임 제작에 30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렇게 볼 때, 시나리오 만들기가 얼마나 중요하며 어려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시나리오가 생명이라 할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의 시나리오는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홍범씨, 현재 군복무 중인 정일현씨가 구상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이창재씨가 추가하고 삭제하는 등 다시 구성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다듬는 과정에서 그는 원전과 번역본의 홍길동전은 물론이거니와 만화영화로 된 비디오 테이프, 만화책, 조계사 안내 책자 등을 참고로 했는데, 시나리오가 완성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우리 소설의 게임화 가능성 제시
이처럼 부족하기 짝이 없는 환경 속에서 국내 최초라 할 한글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었다는 데에 팀원들의 사기는 드높기만 하다. 에이 플러스팀에 합류하기 전에 CAD(Computer Aided Design) 분야에서 일을 했다는 이광배씨의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말은 팀의 사기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내용이 논리적이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고블린'과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한다. 요즈음 컴퓨터 게임의 흐름은 '인디아나 존스'나 '나홀로 집에'처럼 영화로 커다란 흥행을 기록했던 작품들이 잇따라 게임으로 등장, 단순히 게임으로 그치지 않는다.
또 '반지의 지배자'나 '듄', SSI사의 던전 시리즈 등 소설을 게임으로 만든 작품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을 통해 한 권의 소설이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홍길동전'은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소설을 게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겠다. 이것은 지나친 비약일지는 몰라도 허균의 홍길동전이 국문 소설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한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20대 초반에서부터 30대 초반까지의 고른 연령층이 어우러진 젊은 팀 에이 플러스, 그들의 머릿 속 한 구석에는 전래 동화를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게임이 자리잡을 채비를 갖추고 있으며, 그들이 빚어낸 홍길동전은 사용자들로부터의 에이 플러스 학점을 목말라 하고 있다. 마치 이상향 율도국을 꿈꾸던 그 옛날의 홍길동마냥.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6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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