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48. 조선소 노동자로 일한 황제
러시아, 표트르 1세 즉위 (1682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678년/상평통보 주조
1682년/금위영 설치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계몽군주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매우 급격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표트르 1세는 1672년 태어났다. 바로 전해, 유명한 농민반란의 지도자 스텐카 라진이 체포, 처형되었다. 그가 이끈 반란은 수년간 온 러시아를 뒤흔들었다.
표트르는 로마노프 왕조의 두 번째 왕 알렉시스의 아들이었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알렉시스가 죽자 이복형제인 표도르 3세가 왕이 되었다.
그런데 표도르 3세가 후사 없이 일찍 사망후, 왕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결국 표도르 3세의 동생 이반 5세와 표트르가 이반의 누이 소피아의 섭정 아래 공동통치를 하게 되었다. 1682년의 일이다.
1689년 표트르는 소피아를 수녀원에 유폐시키고 그녀의 측근들을 처형한 다음 정권을 쥐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에게 정사를 맡기고 공부에 몰두하다가 1694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비로소 직접 통치를 시작했다.
1697년 러시아는 250명이 넘는 대규모 사절단을 유럽에 파견했다. 표트르 1세도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의 목적은 서구의 발달된 군사기술, 특히 조선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인도회사 조선소에 신분을 숨기고 들어가 일을 했다. 그런 다음 런던으로 가서 조선기술의 이론과 제도법을 공부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질문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지식욕, 특히 기계공학에 관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 목공소, 해군시설 등등 어디든지 관심있게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 러시아로 돌아와야 했다. 근위대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반란을 진압한 표트르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토대삼아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우선 궁정귀족들의 수염을 직접 잘라버린 다음, 수염을 기는 자에게는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 동양풍의 긴 옷을 서양식으로 바꾸게 하고, 귀부인들은 무도회에서 유럽의 사교계 여인들처럼 가슴이 패인 드레스를 입도록 했다.
러시아 인들은 13세기 이후 200여 년간 몽고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표트르는 후진국 러시아를 부강케 하는 길은 몽고의 잔재를 완전히 떨어버리고 유럽화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 아래 탄탄한 육군과 해군의 양성, 서유럽과 러시아를 이어줄 항구 개척, 이 두 가지를 숙원사업으로 삼았다.
1700년 마침내 표트르 1세는 발트 해로 진출했다. '서방으로의 창'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발트 해는 강대국 스웨덴의 활동무대였다. 러시아는 덴마크, 폴란드와 동맹을 맺고 스웨덴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북방전쟁'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전세는 불리했다. 1700년 11월 말 나르바 전투에서 4만 명의 러시아 군은 스웨덴의 찰스 12세가 이끄는 8천 명의 정예부대에게 참패를 당했다.
표트르 1세는 일단 후퇴해서 전세를 가다듬기로 했다. 그후 해군을 창설하고 21만의 육군을 키웠으며 군수물자 생산공장과 도로, 운하를 건설했다. 당시 군사비는 국가재정의 무려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러는 한편, 네바 강 하구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시의 이름은 '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인 페테르스부르크로서, 나중에 레닌그라드로 불리었다.
신도시 건설에는 막대한 돈과 수천 명의 생명이 바쳐졌다. 동원된 사람들은 홍수와 열병으로 쓰러져갔고, 때로는 이리떼에게 잡혀먹히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비꼬아 혹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신도시의 위치는 '한쪽은 바다, 한쪽은 슬픔, 한쪽은 소택지, 한쪽은 한숨'이라고.
새 도시가 완성되자 표트르 1세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페테르스부르크로 옮겼다. 이는 서구화 정책의 강력한 표현이었다.
1721년 북방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이 났다. 표트르 1세는 '차르' 칭호를 받고 '대제'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러시아는 그이 꿈대로 유럽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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