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59. 세계관을 뒤바꾼 이론, 진화론

-다윈, (종의 기원)간행(1859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859년/서원 사설 금지

1860년/최제우, 동학 창시

  


19세기는 과학의 세기였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 각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견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당대에 가장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찰스 다윈은 1809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5대에 걸쳐 왕립과학자협회 회원을 배출했으며, 아버지는 의사였다. 다윈도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강의에 빠지는 날이 출석하는 날보다 더 많았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그를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부에 들여보냈다. 의사가 아니면 성직의 길로 나가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의 3년간은 정말로 무의미했다. '  다윈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식물학자 한슬러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다윈은 그의 권유에 따라 비글 호를 타고 탐험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다윈의 나이 22살 때의 일이다. 


해군 측량선 비글 호는 영국을 출발,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섬들, 오스트레일리아를 항해했는데, 다윈은 무보수 박물학자로서 동식물과 지질을 조사, 훗날 진화론의 기초가 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갈라파고스 섬의 동물에 대한 관찰은 진화론을 세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영국에 돌아온 다윈은 1839년 '비글 호 항해기'를 써냈다. 그리고 20년 뒤인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 진회론을 주장했다. 


그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도채 원칙에 의거, 다음과 같이 종의 진화를 설명했다. 


'모든 어린 생명이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며, 늙어 죽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연도태 원칙에 의해 생존에 적합한 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부적합한 종은 멸종한다. 


예를 들면 기린은 살아남기 위해 목이 그처럼 길게 발달되었으며, 카멜레온은 피부색을 바꾸는 생체조직을 개발한 것이다. 아주 작은 생체조직의 변화로 인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계속 그 생체조직을 발전시켜, 수세대에 걸쳐 이런 변화가 지속되면 낡은 형태는 소멸되고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서 새로운 종을 이룬다. 


지구가 처음 생성되었을 때 존재한 종이 현재까지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현존하는 종들은 원형에서 형질이 변화하여 현재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바뀐  것들이다. 인간도 이 같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진화되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


즉,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환경에 맞게 서서히 진화 발달하여 인간이 된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엄청난 충격파를 각계각층에 던졌다. 가장 발끈한 것은 종교계였다. 다윈의 주장이 옳다면, 신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성경말씀은 거짓이 되고 말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사회의 최고 권위로 군림하고 있던 교회는 자신의 지위를 뿌리째 뒤흔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교회는 진리 수호를 다짐하며 진화론을 배척, 다윈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을 일절 금지시켰다. 


그렇지만 '종의 기원'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초판 1,250부가 단 하루 만에 매진되었다. 그뿐 아니라 진화론은 여러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이제 종교의 절대적 권위를 믿지 않게끔 되었다. 


인간은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의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난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런 생각은 불안과 상실감을 안겨다주기도 했다. 


진화 그 자체가 신의 창조 행위에 포함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전처럼 사람들을 교회에 절대적으로 복종케 하진 못했다. 


진화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래 또한번 사람들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것이다. 때문에 진화론을 모르고서는 19세기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의 발달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중, 다윈의 이론을 사회분야로 확대 적용한 이른바 사회적 다윈이즘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회적 다윈이즘은 제국주의의 이론적 지주가 되기도 했다. 사회적 다윈이즘에 의하면, 치열한 생존경쟁과 그를 뚫고 이룬 성공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것이며 정당한 것이다. 


또 진화가 단기간에 급속히 이루어지지 않듯, 사회의 진화도 급격하게 진행되어선 안되었다. 사회적 다윈이즘은 보수주의, 자유방임주의, 개인주의의 버팀목이었다. 


그뿐 아니라 인종차별, 서구 중심 민족주의를 정당화해주었다. 현실에 가장 잘 적응한 생명체만이 생존할 자격이 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은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착취하는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게 했고, 한 생명의 번성을 위해 다른 생명이 말살되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리하여 앵글로 색슨 계통의 영국과 미국인들,  튜튼 계통의 독일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슬라브 족에 대해 인종적 우월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한 예로, 진화론의 동조자 월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 인들은 신체적 자질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적, 도덕적 자질에서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 유럽 인을 오늘의 문화와 진보로 이끈 그 힘으로 유럽 인은 야만인을 정복하고 그 숫자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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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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