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62. 계급 없는 평등사회를 위하여
-마르크스, (자본론)제1권 출산(1867년)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1866년/제너럴 셔먼 호 사건. 병인양요로 프랑스와 싸움
역사상 이름을 남긴 학자들 중 마르크스만큼 후대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사상은 혁명을 낳았으며 수많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케했다. 마르크스 자신의 말대로 마르크스의 사상은 단지 '세계를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철학'이었다.
칼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라인 주 트리에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명망있는 법률가였으며 어머니는 귀족 출신이었다. 8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인 마르크스는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머리가 좋고 자잘이 뛰어난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트리에르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르크스는 1836년 본 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법률공부보다는 시와 철학에 열중했다. 1년 후 베를린 대학으로 옮긴 그는 헤겔 철학이 풍미하고 있던 베를린에서 불타는 열정으로 지적 탐구에 몰두했다. 철학, 논리학, 언어학, 수학, 문학, 시 등등 그의 지적 섭렵은 온갖 분야에 미쳤다.
그때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이란 여성과 약혼 중이었다. 예니는 트리에르 사교계의 꽃으로 불릴 만큼 아름답고 지성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젊은 마르크스의 재능을 아껴, 1838년 마르크스의 아버지가 죽자 대신 그를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두 사람은 7년간이나 약혼상태로 지냈다. 그 동안 마르크스는 공부를 계속했고, 예니는 온갖 소문과 주변의 악의에 찬 시선을 견디며 마르크스를 기다렸다.
예니는 의지 굳고 인내심 많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마르크스 못지않는 열정으로 헤겔 철학을 비롯, 지적 세계를 섭렵했다. 이후 그녀는 평생 동안 마르크스의 충실한 비서요 동반자로 일했다. 마르크스의 원고를 정리해주고 적절한 비판을 가하는 일은 그녀의 몫이었다.
1841년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논문으로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라인 신문)편집장이 되어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다. 그가 쓴 몇 개의 논설 때문에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되자, 1843년 10월 마르크스는 임신 3개월의 예니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연구하는 한편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의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독불 연감)에 글을 썼다. 평생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만나 것도 이때였다.
1845년 2월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추방당해 브뤼셀로 갔다. 그후 엥겔스와 영국을 여행하고 공동저술에 착수하는 한편 공산주의자 회합에 참석했다.
1848년 2월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망명했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몹시 힘겨웠다. 집세를 못내 쫓겨나야 했으며, 가난과 질병으로 두명의 아이를 잃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아내와 꼬마 제니도 병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네겐 치료비가 없으니 의사를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근 열흘간 나는 가족들에게 빵과 감자만을 먹였고 오늘은 무얼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일 뿐입니다'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당시의 어려운 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마르크스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탈고했다. 그 책은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건강, 행복, 가족을 희생해서'이룬 작품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는 산업화가 낳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직접 보았고,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유럽 사회를 체험했다. 그리하여 뛰어난 통찰력으로 자본주의란 모든 것을 상품화하며 인간이 인간을 소회시키는 체제라고 간파했다.
일찍이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에게만 유리한 사회일 뿐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건 굶주림과 사슬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사회, 지배계급도 피지배계급도 없는 평등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자본론>은 바로 그러한 사회의 건설을 위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명쾌히 밝힌 필생의 업적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독일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모두 흡수하여 새로이 극복한 것으로서 종래의 관념론을 뒤집은 유뮬철학이다.
그는 인류사회가 일정한 법칙을 갖고 변화발전하며,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몰락하고 사회주의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한 확신 아래 평생 혁명을 위해 일하고 글을 썼다.
1881년 예니가 사망했다. 오랜 생활고와 망명생활에도 꿋꿋이 남편 곁을 지켜온 그녀는 장암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마르크스도 뒤를 다르듯 2년 후인 1883년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그가 죽은 뒤 더욱 널리 보급되고 실천에 옮겨졌다. 유럽 각지에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며, 1917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러시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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