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2월호 - 사람과 사람들
우리 시장은 우리의 제품으로
멀티미디어에 대한 개념이 점차 우리들에게 익숙해지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멀티미디어를 응용한 장비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관련 연구소의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요즘 소개되고 있는 멀티미디어 관련 장비 가운데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이 많이 있다. 텔레비전을 컴퓨터와 연결, 컴퓨터에서 만들 수 있는 여러가지 그래픽 및 애니메이션 화면을 TV를 이용해 볼 수도 있고, TV나 VCR 에서 입력 받은 신호를 컴퓨터에서 출력 및 편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카드(DECODE) 형식의 제품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많은 종류의 멀티미디어용 장비들이 우리의 욕구를 총족시켜 주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들 제품의 대부분은 외국산이라는데 아쉬움이 있다. 즉, 미국이나 대만 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우리 손으로 만든 제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직 멀티미디어가 초보단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려운 개발 보다는 외국 제품을 들여다가 손쉽게 돈을 벌겠다는 업체들의 상술에, 국산보다는 외국 제품을 더 선호하는 사용자들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서 두 명의 젊은이가 외국의 유명한 제품들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이들이야 말로 우리가 찾는 진정한 컴퓨터 쟁이가 아닌가 싶다.
현재 용산 전자상가에서 'CMF'라는 개발회사를 운영하는 김영철(32), 박동운(29).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그래픽 및 에니메이션 화면을 TV 화면에서 볼 수 있게 하거나 VTR에서 녹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카드(ENCODE)를 개발하였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카드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지만 순수한 국내 기술로 개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뚜기 인생을 살아가는 컴퓨터 쟁이들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5년전, 직장 동료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이곳은 '릭스'라는 8 비트 비디오 게임기를 제작하던 회사로서 당시 게임기 시장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고 있던 유망한 중소 기업이었다.
"당시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나 별로 바뀐 것이 없습니다. 소위 조금 장사가 된다 싶으면 대기업이 뛰어들죠. 87년 도는 8비트 비디오 게임기 시장이 대단히 호황이었습니다. 역시 대기업에서 가만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대기업들이 일본의 게임기 제작회사와 손잡고 저가의 게임기를 대량 생산하면서 소규모 국산 게임기 제조 업체들은 갈길을 잃었습니다. 이 회사는 결국 업종을 변경해 다른 길을 가게되었죠. 하지만, 저희들은 우리가 하던 게임기 및 컴퓨터에 관련된 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김영철씨는 당시의 암울했던 심정과 그날 이후 오뚜기 처럼 살아온 그들의 이 야기를 시작한다.허탈한 마음으로 회사를 나선 그는 당시 마음이 맞는 동료 5명이 모여 자그마한 회사를 차렸다.
회사라기 보다는 서로가 연구·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추진하고 있는 아이템이 마음에 든다며 자본을 대겠다는 자본가가 등장하면서 연구는 한층 열을 올리던 중 갑자기 자본가는 채산성을 이유로 연구·개발비를 중단하는 사태를 맞았다.
"사실 난감했습니다. 무언가 이루어 보려는 의욕이 비용 때문에 도중하차 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들을 너무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결실이 있었습니다." 고 김영철씨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후, 어려움은 계속되었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동료들을 잡아 둘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을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다.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잡기가 더욱 어려웠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은 무슨일이 있어도 계획했던 것을 성취하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이들이 개발하기로 한 제품은 TV에서 컴퓨터 화면을 볼 수 있고, VTR에서 녹화를 가능하게 하는 멀티미디어용 카드이다. 이 카드 제작을 위해 퇴직금등을 털어 용산의 선인 상가에 4평 남짓한 공간을 확보하고 연구에 몰두하였다.
"과연 너희들이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외국에서도 이제 시작 단계인 멀티미디어용 카드를 제작하겠다고 하자 주위의 비웃음은 가장 참기 힘든 일이었다. 외국 제품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던 업자들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의 개발은 우스운 노릇임에 분명했다.
지금까지 소규모 자본으로, 그것도 국내 기술로 멀티미디어 제품을 개발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주위의 웃음이 이들에게 오기를 발동시켜, 카드 개발에 대한 의욕을 더욱 강렬하게 불태우게 하였다.
그보다 개발에 어려운 점은 참고할만한 관련 자료 및 서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참고로 할 만한 기존의 제품도 전혀 없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이 겪은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저희들이 이 카드를 제작하게된 동기는 외국 제품과 대결해 보겠다는 생각 에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국내에서 제작된 부품을 사용했으면 했죠. 그러나 이 생각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품업체에서는 소량의 부품은 제공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할 수 없이 외국 부품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라고 부품 구입의 어려움과 국내 대기업들의 횡포(?)를 고발한다.
사실 지금의 우리 기술로는 외국 제품과 대결하기란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다른 개발 환경이 좋은 것도 없다. 외국 제품이 판을 치는 시장 구조도 그렇고, 국산을 우습게 보는 소비자들의 성향이 그렇고, 또 기업의 연대의식 또한 매우 빈약한 상태여서 도움을 주고 받기는 커녕 오히려 시기하고 경계하는 눈초리가 서로에게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8비트 컴퓨터 구조도가 맺어준 컴퓨터와의 첫인연
이들이 컴퓨터에 관심을 각기 시작한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이 회사의 사장인 김영철씨의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그가 컴퓨터와 첫 인연을 맺게된 것은 공교롭게도 컴퓨터 잡지였다. "88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8비트 컴퓨터 구조도'라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컴퓨터를 조립해 보았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또 게임기를 제작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구조도를 가지고 컴퓨터를 조립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시 3개월분의 월급에 해당하는 100여만원이 제작비로 들어갔습니다. 컴퓨터와의 첫 대면이자, 모니터가 컴퓨터가 아니라는 컴퓨터 지식을 나에게 제공해 준 아주 귀중한 체험이었죠." 그후, 그가 컴퓨터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게임기 회사를 그만둔 다음 부터였다.
박동운씨도 컴퓨터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다.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던 그가 컴퓨터를 접하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군 후배의 도움으로 책을 통해 컴퓨터에 입문했고, 제대 후인 87년도 게임기 제조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김영철씨와 함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컴퓨터는 카드 제작을 시작하면서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현재는 컴퓨터쟁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전문가가 되었다.
이들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PCV100'을 개발·발표한지 7개월이 지났다. 아직 어떠하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이른감이 있지만 아직은 판매에 어려움이 많은 듯 싶다. 김영철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진국에서 제작된 제품은 신용도 면에서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으며, 대만 제품들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국내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격과 품질면에서 외국 제품과 경쟁하기는 솔직히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개발된 제품에 대해 특혜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연구·개발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이 판매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저희 둘이 모든 것을 맡아 왔는데 앞으로는 영업을 전담할 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창의력을 가진 사람은 연구·개발에만 전념하고 완성된 제품은 관련 당국이나 컴퓨터 관련 유통업체에서 판로를 개척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사장되는 제품이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돕는 것이 꿈
이들이 힘든 상황을 보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제품을 사용해 본 사용자들의 격려 때문이다. 이제 사업 규모도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제품의 버전업도 계획하고 있다.
4평 남짓한 선인상가의 매장겸 개발실에서 생활해 왔던 이들은 지난해 말에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단독 주택의 방을 얻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할 인원이 보강되었다.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소프트웨어의 지원이 없다면 유명무실합니다. 저희들이 7개월 동안 판매하면서 얻은 교훈은 하드웨어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이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금년 6월쯤에 완료될 겁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나아지겠지요"라고 김영철씨는 올해의 포부를 밝힌다.
미래의 꿈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의 꿈은 우선 제품이 잘 팔리는 것입니다. 만약, 판매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여유가 생긴다면, 저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최후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덧붙여서 "벤처 자금이 어디에 있습니까? 벤처 기업이 벤처 자금을 구경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 보다 어렵습니다. 정말 기술 선진국이 되려면 벤처기업에 벤처자금이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영철씨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망중 소기업의 사장이 자금압박에 몰려 세상을 등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우리의 현실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창의력과 젊음을 가지고 가지고 있는 이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시장을 지킬 수 있고, 기술 선진국의 꿈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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