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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04 고사성어 - 설중송탄, 야랑자대, 교왕과정, 유방백세, 휘질기의




설중송탄 (雪中送炭)

雪(눈 설) 中(가운데 중) 送(보낼 송) 炭(숯 탄)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다

  

송사(宋史) 태종기(太宗紀)의 이야기다. 북송(北宋) 초, 토지 겸병을 둘러싼 귀족들의 분란이 심해짐에 따라, 일반 백성들의 삶도 몹시 궁핍해졌다. 


서기 993년, 즉 북송 태종 순화(淳化) 4년 봄, 빈곤을 참지 못한 농민 왕소파(王小波)와 이순(李順)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사천(四川)에서 봉기하였다.


그 해 겨울, 여러 날 동안 눈이 내리고 날씨 또한 매우 추웠다. 태종인 조광의(趙光義)는 왕소파와 이순 등의 농민 봉기에 두려움을 느껴 죽을 지경이었다. 


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다시 봉기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사람을 시켜 몇몇 어려운 노인들과 가난한 백성들의 집에 돈과 쌀, 땔감을 보냈다(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민심을 수습하려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부를 잘하는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이 일을 역사에 기록하게 하였다.


설중송탄(雪中送炭) 이란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을 비유한 말이다.

  




야랑자대 (夜郞自大)

夜(밤 야) 郞(사나이 랑) 自(스스로 자) 大(큰 대)

좁은 식견에 제 잘났다고 뽐내는것을 비유한 말

  

사기(史記) 서남이(西南夷)열전의 이야기다. 서한(西漢)시기, 중국의 귀주(貴州)와 운남(雲南) 지방은 지리적인 조건으로 한나라 조정과의 내왕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 지방의 사람들은 한나라의 정치적 상황에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당시 귀주에는 야랑국(夜郞國)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운남에는 전국( 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서기 122년, 한무제는 왕연우라는 사신을 두 나라에 파견하였다. 먼저 전국에 도착한 사신들에게 전국의 왕은 세상 넓은 것을 모르고  한나라와 우리 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라고 물었다. 왕연우는 전국의 국왕이 오만하고 무지한 사람으로서 내왕할만 인물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야랑국을 방문하였는데, 뜻밖에 양랑국의 국왕도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들은 중원과 단절되어 외국의 상황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야랑자대(夜郞自大) 란 좁은 식견에 제 잘났다고 뽐내는것을 비유한 말이다. 

  



교왕과정 (矯枉過正)

矯(바로잡을 교) 枉(굽을 왕) 過(지날 과) 正(바를 정)

잘못을 바로 잡음에 그 정도가 지나침을 뜻한다. 

  

후한서 중장통(仲長統)전의 이야기다. 중장통은 동한(東漢) 영제(靈帝) 때의 유명한 문인이다. 그는 이란편(理亂篇)이라는 글에서, 당시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제왕(帝王)들 중 어떤 이는 썩 총명하지 못하여, 나라 안에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만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라 안의 모든 업적을 모두 자기의 공로로 돌리며 아무도 자신을 뒤엎지 못하리라 믿게 된다. 그 결과, 온 나라가 분란에 휘말리게 되고, 이민족들은 이 틈을 노려 침범해 오며, 마침내 나라는 무너지고 왕조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하길  정치가 잘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모두 부정한 기풍과 혼란을 바로 잡고자 하나, 굽은 것을 바로 잡으면서 마땅한 정도를 지나치게 되기도 한다(復入于矯枉過正之檢). 때문에, 효과를 얻으려다 도리어 예상한 목적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라고 하였다.


교왕과정(矯枉過正)은 교왕과직(矯枉過直) 이라고도 하며, 잘못을 바로 잡음에 그 정도가 지나침을 뜻한다. 



  

유방백세 (流芳百世)

流(흐를 유{류}) 芳(향기 방) 百(일백 백) 世(대 세)

륭한 명성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는것을 뜻한다.

  

진서(晋書) 환온전(桓溫傳)의 이야기다. 동진(東晋) 시기, 진(晋)나라와 북방 이민족들은 서로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서기 354년, 환온은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 전진(前秦)을 공격했다. 환온의 세차례에 걸친 북벌은 저족( 族), 강족(羌族), 선비족(鮮卑族) 등 북방 이민족들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서기 363년, 환온은 대사마(大司馬)에 임명되었으며, 조정에서는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여 그의 지위는 제후들보다 더 높았다. 환온은 군사대권을 장악하고 중원(中原) 회복함으로써 자신의 명망을 높여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환온은 일찍이  대장부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죽은 뒤 나쁜 이름이라도 세상에 남겨야 한다. 라는 말을 하였다. 서기 373년, 61세의 환온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야망을 버리지 않았으나, 재상 사안(謝安)의 저지로 야심을 이루지는 못했다.


유방백세(流芳百世)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는것을 뜻한다.

  




휘질기의 (諱疾忌醫)

諱(꺼릴 휘) 疾(병 질) 忌(꺼릴 기) 醫(치료할 의)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는것을 비유한 말.


송나라 주돈이(周敦 )의 주자통서(周子通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채(蔡)나라에 편작(扁鵲)이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채나라 환공(桓公)에게  대왕께서는 병이 나셨는데, 그 병은 피부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심해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채환공은 병이 없다면서 치료를 거절했다. 열흘 후, 편작은 채환공을 알현하고 그에게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이 이를 무시하며 몹시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채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환공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열흘 후, 편작은 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닷새 후, 채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죽고 말았다.


휘질기의(諱疾忌醫)란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는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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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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