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1월호 - 한국 쥐와 일본 마우스
● 제13회 일본 마이크로마우스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
지난 11월 21~24일 일본 동경의 과학박물관에서 '제13회 전 일본 마이크로 마우스대회가 열렸다. 4개 지부에서 지역예선을 거친 28개 팀이 22일에는 예선을 치루고, 23일 최종 20개팀이 본선에서 겨루었다. 대회 장소와 규모는 오히려 우리보다 보잘것 없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주최측의 꼼꼼한 준비 등은 그들이 과학 선진국임을 과시하는 듯 했다.
사흘간의 대회는 마우스 외에 각종 로보트들이 겨루는 다양한 대회도 같이 치루어졌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회 마지막날 열린 '어린이 로보트 대회'로 유치원 어린이부터 국민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대회였다. 오전에는 주최측에서 제공한 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로보트를 만든 다음, 오후에 시합을 하는 것이었다.
약 1백명 가량의 남녀 어린이들이 대회에 열중하며 진지한 모습을 보고,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일본인들의 치밀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인상적인 점은 대회 참가자 및 관중의 폭넓은 연령대이다. 국민학생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는 것, 관람태도는 마치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은 진지함으로 시종 일관했다는 것 등은 아직 로보트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이크로마우스 키트까지 있는 일본의 로보트 문화
일본 마우스의 우수함은 무엇보다 최신품과 신기술을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구하고 접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우선은 회로 자체를 최소화 한 것,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소자를 이용하는 등, 마우스가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환경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우스 자체를 직접 판다는 것이었다. 마우스를 키트로 만들어 파는 대표적 회사는 게임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남코(NAMCO)사와 일본 마이크로마우스 회사(JMMC : JAPAN MICRO MOUSE COMPANY) 등이다. 가격은 우리나라 가격으로 70만원대 정도이다.
이런 환경 탓인지 참가 마우스들이 대부분 키트였다는 것은 이들의 환경이 좋다는데 대한 부러움과는 다른 어딘지 모를 안도감을 갖게 했다.
이날 대회의 우승은 '노리코 92'가 차지했고, 2위는 미국의 '마이티5 에게 돌아갔다. 기록은 각각 9.78, 11.39이었다. 이 두 마우스는 기록말고도 구조가 독특해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바퀴가 6개에 DC 서보 모터를 사용하는 등등. 전자적인 회로나 프로그램은 별다를 바가 없었지만, 기계적인 구조에 비중을 두고 제작한 것처럼 보였다. 진짜 쥐를 연상시킨 이들 마우스의 주행은 일품이었다.
'노리코'는 지난 1년간 JMMC에서 마우스 연구팀의 작품이고, '마이티'는 MIT 공대 출신인 42세의 데이비드 오튼(DAVID OTTEN)이라는 분이 2년간 제작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곡률주행, 소위 스무스턴을 무슨 대단한 기술로 여기고 그저 어렵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때문에 극히 일부 마우스만 적용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마우스는 시도조차 꺼리고 있는 처지이다. 그러나 일본대회 본선 참가 20팀 중 한팀을 제외하고는 최단시간 경로에서는 모두 스무스턴 주법을 채용했다.
일부는 대각선 주행을 시도한 것도 있었고, 그 중 한팀은 거의 완벽하게 구현을 해내 '신기술(NEW TECHNOLOGY)상을 수상한 팀도 있었다.
일부 기성인들이 만든 거의 제품화된 마우스를 제외하면, 근본 회로나 구동 메커니즘, 미로 탐색의 알고리듬 등 마우스의 기본을 이루는 틀은 우리와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날개는 전방 한쌍이 대부분이고, 모터축에 기어를 연결한 마우스도 많았다. 바퀴 크기는 우리나라 것보다 현격히 작았다. 아마도 스무스턴의 용의함을 위해 그러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대각선 주행을 고려하여 양 바퀴의 폭을 줄이려는 흔적이 대부분의 마우스에서 나타났다. 기어와 타이밍 밸트의 사용이 그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마우스는 주행중 자세를 보정하려면 양쪽으로 뻗은 날개를 이용벽의 윗면을 감지하여 처리하는 방식밖에 없었지만, 일본대회 본선 참가작 20개팀 중 노리코를 비롯 3대의 마우스는 날개없이 측방벽을 감지, 자세보정을 하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한 점이었다.
전체적인 마우스의 성능면에서 보면 우리보다는 한 수 위였지만, 언급하였듯이 그네들의 환경이 우리보다 좋은 탓이지, 학생들은 역시 일반인의 마우스를 배우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볼때, 필자의 생각은 일본이 마이크로마우스에 대한 저변이 엄청나게 확대되어 있어서 그렇지 우리나라 마우스광들보다 그리 뛰어난 실력을 갖고는 있지 않다는 아니, 오히려 우리 학생들이 더 우수하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려본다.
일본의 기술 다지기
세계적으로 일본이 장악하지 못한 분야가 없을 정도로 일본의 기술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산업이 전자관련 산업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세운상가나 용산에 견줄만한 곳은 '아끼하바라' 전자 상가이다.
그 거리를 거닐며 시종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하면 이해가 될른지.. 전자부품에서 전자제품,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전자와 관련된 것은 구하지 못할 것이 없는 그 야말로 꿈의 거리였다.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장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것, 그것도 뭔가를 양손에 가득 든 사람 들이었다는 것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한 이유였다. 이야기가 잠시 궤도를 벗어났다. 각설하고 다시 마우스 이야기를 하자.
예선전이 벌어지던 날 필자의 마우스 '초보운전'을 가지고 테스트 미로로 다가서자 많은 참가자들이 우리에게로 모였다. 다행히 우리나라 대회에 초청되었던 친구(후쿠지마)가 있어, 미리 인사를 해둔 덕에 기본 설명은 그가 해 주었다.
초보운전의 제작기간, 제작방법 등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 주자, 그네 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물론 알아들었는지의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할 바 없다. 한가지 그들이 놀란 것은 기판 뒷면과 볼케스터의 자작 등 사소한 것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거의 모두 이런식으로 스스로 만드는 것이 당연한 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구의 발달, 시시한 장난감이 아닌 정교하고도 과학적인 완구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았고, 완구점 또한 무척 많았다.
이중에는 건물 전체가 완구점인 곳도 몇 개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마우스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만, 많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것은 따로 부속을 취급, 기어나 타이밍밸트 타이어 등 실제로 제작하기는 불가능 한 것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기술의 밑바탕은 이렇게 사소한 곳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섣부른 판단을 해 보았다.
이제 우리는 20개팀이 벌이는 본선에서 '초보 운전은 58.98로 15위에 머물렀다. 국내 대회보다도 어렵지 않은 미로인데도 기록이 저조했던 것은 대회에 임하는 자세의 결여도 있었지만, 적외선 센서의 오동작이었다. 현지 적응이 제대로 안 되었다고 해야 하나, 같이 준비한 임대영이 스무스턴까지 확실하게 집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제대로 동작을 했으면 일본의 학생과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마우스를 본격적으로 제작해서 대회에 참가 하기까지는 1년여에 불과했다. 금년도 우승은 비록 '초보운전'이 차지했지만 더 우수한 마우스가 많이 있음을 안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순수 아마추어 수준끼리를 가린다면 우리나라의 수준은 감히 세계적이라 말할 수 있다. 가슴 아픈것은 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빼면, 프로그래밍 수준이나 기술 응용력은 거의 선진국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기술응용력을 더욱 증대시키는 방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의 공개이다. 마우스 동호인들의 정보교환 등은 필수적이라 본다. 처음 마우스를 공부할때의 막막함을 생각해 보면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까 한다. 또한 대회 주최측에서도 대회를 위한 대회가 아닌 내실을 기하는,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여러 계층의 참여 유도, 넓은 객석보다 넓은 경연장을 마련해 참가자들간의 기술교류가 목적인
대회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으로 떠나기전 '초보운전'의 외부로 보이는 집적회로(IC)들은 모두 국산품으로 바꾸려 했지만, 생각보다 국산이 전류를 많이 소모해 중앙처리장치(CPU)만을 국산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된 것을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이컴 독자의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전하는 말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열심히 공부하여 올바르게 사용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뒷이야기들
이번 일본 로보트 대회에서 열중하고 있던 6살짜리 꼬마와 마우스를 들고 예선을 치루던 어느 할아버지의 진지한 모습은 아직까지 인상적이다.
국내 대회 준비중에 같은 과 친구들 중 일부는 마우스를 장난감이라고 비웃기도 하고,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넌즈시 이제 그만하라는 식으로 타이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어린이와 할아버지에 비하면 너무도 답답한 모습들이다. 이제 우리도 과학과 기술이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흐르는 모습을 빨리 찾고 정착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은 마우스대회 참관기로 쓴것이지만,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공학도로서 우리 나라 기술산업 여기저기 모순된 현실도 나름대로 지적해 보았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실험 기기가 무척이나 많은 나라, 그런 걸 만들어도 장사가 되는 일본의 현실을 보면서 역시 큰 부러움을 가졌다.
끝으로 이 글이 실제 마우스를 제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우스 인들의 파이팅을 외치며 독자들도 빨리 '마이크로마우스'의 세계로 달려오기 를 바란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1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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