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8월호 - 컴퓨터 세상살이
삼성 데이터시스템 한계도전팀
변화에 민감하고 과학적 합리주의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딱 맞는 장난감은 역시 컴퓨터이다. 그리고 그 컴퓨터 덕택에 20대에 억만장자가 된 행운아들도 적지 않다. 소프트웨어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다.
컴퓨터는 그 성질상 경직된 사고를 거부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프로그램을 짤 것인가 하는 고민은 예술가의 창작 고민 못지 않게 머리 빠지는 일이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두뇌 회전이 보장되지 않고서 기막힌 소프트웨어 개발을 기대한다는 것은 호박밭에서 수박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능률보다는 권위를 앞세우기 좋아하던 우리 사회 조직에도 점차 신세대 바람이 거세지면서 눈치빠르게 조직 개편을 이루어 성과를 거두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삼성데이타시스템은 지난 해 12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획기적인 시도를 하였다.
직원을 대상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별동대를 조직하였다. 마치 소말리아에 파병할 부대처럼 지원자를 모집하여 특수부대를 만든 것 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여기에 뽑힌 5명으로 새로운 팀을 조직하였으며 명칭도 그럴듯한 '한계도전팀'(자칭 블랙홀 팀)이라고 붙였다. 이들은 회사의 어느 부서에도 소속되지 않고 누구의 눈치를 볼 것 없는 완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무형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무한정 지원
윤덕훈 주임을 비롯하여 강완수, 이해진, 곽영호, 류철수씨로 구성된 이 팀은 근무 년수가 3년차인 최고참 윤주임을 비롯하여 2년, 1년 등 머리가 아직 녹슬지 않은 직원들로 1기생을 뽑았다.
근무지는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 삼성 데이타시스템 본사 건물이 아닌 서울대 신기술 공동연구소에 차렸다. 곧 이들의 업무는 연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비록 직장인이지만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모든 행동거지도 완전히 학생 시절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넥타이를 풀어 버리고 청바지에 혈렁한 셔츠는 기본이 되었다. 자신이 계획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예산은 신청하면 회사에서는 그것이 얼마이든 이유를 묻지 않고 지원해 주었다.
해외에서 관심분야의 전시회가 열리게 되면 자료수집과 견문을 넓히기 위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 더 이상 긴 이야기 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자유였다. 직장인으로서 해방구를 맞은 것이다. 1년간 보장받은 자유는 누구도 침해하지 못하는 절대 성역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의 재산이라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의 두뇌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프로그램화하여 팔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
사업성이 없는 일에 투자를 하지 않는 기업의 속성상 이 회사의 이러한 지원은 곧 생산설비의 투자와 마찬가지 맥락인 것이다. 수십억 원의 공장 설비를 갖추듯, 직원의 두뇌가 곧 생산 라인인 것이다.
투자의 결과가 당장 1년뒤에 결실을 맺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2년, 3년 아니 그 이후에 세계를 뒤흔들만한 소프트웨어가 개발된다면 만족한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연구과정을 통해 소프트웨어 분야의 최고의 엘리트 직원을 키웠다는 보람이면 족하다.
소프트웨어의 종속국임을 자처(?)하는 우리로서는 고급두뇌가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이 팀원들은 자신들의 누리는 자유가 큰 만큼 계획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야 하는 강박관념을 당연히 안고 살아간다.
이들의 계획이 올 12월에 반드시 끝마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계획에 따라서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판에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책임 추궁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오는 자존심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자신이 연구한 것이 상품화되어 보람을 찾을 수 있으면 더 없이 즐거운 일이다.
입사 1년이 채 안된 류철수씨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안하고는 문제도 아닙니다. 이렇게 지원을 받고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면 무슨 낯으로 다니겠는가"라는 말에서 자존심 싸움은 생각보다 절박한 듯 하다.
집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무한대의 지원을 받고도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어떤일도 할 능력이 없다는 자책이 이들을 더 괴롭히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우리가 할 일
이 팀에서 하는 일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 있다. 당연한 일이다.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베일에 가릴수 밖에 없다. 대강 어느 분야라는 질문에도 웃기만 한다.
그러나 눈치빠른 기자는 최근 추세가 윈도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과 멀티미디어용인 것을 감안하면 대충 이 분야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아무래도 소프트웨어 개발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이기에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전반적인 환경에 대한 쌓인 이야기가 많이 오고갔지만 몇 대목을 정리해 본다.
윤덕훈 주임은 "개발자 환경이 사용자 능력 보다 너무 앞서가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컴퓨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먹거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일부 계층에만 해당한다고 봅니다. 국민 대다수가 컴퓨터 환경에서 지내는듯 착각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업에서 개발되는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와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상품화가 가능하려면 사용자 층이 넉넉해야 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야 한다."면서 한국형 소프트웨어의 절실함을 강조 한다.
"소프트웨어는 개발해도 보호받지 못한 것이 우리 실정입니다. 우리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에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이런 저런 말도 많지만 워드프로세서 하나 개발해서 성공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한글과 컴퓨터사는 좋은 표본이 될 것."이라는 강완수씨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당한 보호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소프트웨어를 통해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강건너 불구경만은 아닌 것이다. 유난히 게임을 좋아하는 곽영호씨의 이야기는 교육적인면에 치중되어 있다.
"컴퓨터 교육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학교의 컴퓨터 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컴퓨터 학원의 강사들도 제대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드문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마당에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성장할지 의문입니다."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소위 말해 히트를 칠 수 있는 것은 시대적 상황과도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컴퓨터 산업의 초창기인 지금 우리가 컴퓨터를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워드프로세서가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워드프로세서의 요구와 인기는 자연적입니다. 그래서 인기있는 워드프로세서가 있듯이 말입니다. 물론 워드프로세서는 시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필요한 소프트웨어인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워드프로세서라도 어떤 환경에서 작동하느냐가 중요한 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전자출판 시대라도 된 듯이 DTP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엄청나게 많아진 듯한 느낌."이라는 이해진씨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소프트웨어도 시기를 적절히 타고나야 하는 점이 있다.
예전에 우리가 많이 쓰던 보석글이라는 워드프로세서가 아래아 한글이 출연하면서 인기의 빛이 바랜것을 보면 편한 워드프로세서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그러나 앞으로 윈도우 환경이 보편화된다면 또 그에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게 될런지 모른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잼, 노이즈,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면 하나의 노래를 부르면서 춤은 각자 나름대로 흔들어 댄다. 그러면서 멋진 조화를 이루는 것이 랩 음악의 특징인 것 같다. 한계도전팀의 목적도 하나이다. 그것은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각자는 자신의 생각에 충실한다. 한계에 도전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이들의 젊음을 걸게 하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본지 '92년 3월호에 실렸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소개한 기사 일부를 옮겨 적는 것이 이 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다.
.....세우드 숲에 살던 로빈훗의 무리들이 회망의 새 땅을 건설하는 로빈훗 신화를 만들어 냈듯이 520에이커의 숲으로 둘러싸인 레드몬드 숲속의 빌 게이츠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설을 엮어간다.
회사 본부로 쓰이는 X자형 7개의 건물은 어느 건물에나 따뜻한 햇빛이 비치도록 설계되었다. 슈트나 넥타이 차림의 신사는 없다. 푸른색 진에 헐렁한 셔츠를 입은 쟁쟁한 인물과의 조우가 레드몬드에서는 별스런 일이 아니다. 설립자인 게이츠나 설리와도 이름만 부르며 지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수는 '복도'에서 솟아납니다. 모든 생각을 자유스럽게 나눌 수 있는 곳. 바로 이곳 말입니다." 여름 캠프의 지도자처럼 오픈컬러 셔츠에 편한 바지 차림의 업무 관리 총 책임자 피터 히긴스씨의 말이다. 산책로에서, 복도에서, 곳곳의 열띤 토론 속에서 세계적 소프트웨어들이 태동된다.
포스터와 다트판(창 던지기 놀이의 표적판), 부리는 장난감들, 증기기관차 등등 각종 잡동사니로 가득한 일터의 풍경도 눈에 설다. '세서미 스트리트 (미국의 유명한 교육용 프로그램)' 주인공의 이름을 가진 터미널들과 매킨토시와 IBM들이 적어도 몇 대씩 갖추어져 있다.
배고픔이 몰려오면 패스트푸드점 '7-일레븐'을, 피곤하면 헬스와 건강센터를 언제든지 들락거릴 수 있다. 각고끝에 개발한 제품 발표일이나 누군가의 생일날은 '스타워즈'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축제를 벌인다. 근처의 인터레이크 고등학교에는 토요일 아침부터 연구원들의 축구경기로 열기가 가득하다.
레드몬드 캠퍼스 중앙에 빌 게이츠의 이름을 빌어 지은 '빌 호수'에서 수영시합을 벌이고 구경꾼들은 환호를 보내는 자연스러운 즐거움. MS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의 '서머힐(무제한의 자유를 인정하는 교육방식을 채택한 학교)'과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규칙이 없다. 연구소도 특별히 없다. 개발할 제품을 선정하면 이에 따라 기획, 개발, 마켓팅, 매뉴얼 제작, 사후 서비스까지 전 과정의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한다. 새 제품을 위해 구성되는 팀의 인원은 평균 5~10여명이다.
타부서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전체적으로 연구원들을 관리하는 '프로젝트 리더'와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술적인 문제를 지원하는 '그루(guru : 힌두교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 규모가 작고 결속력이 강해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연대감을 갖도록 한다.
이들은 경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서로의 고충을 잘 아는 탓에 안 팔리는 제품은 개발도 않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언제나 폭발적인 두뇌활동과 창조적인 정신으로 충만한 모습이 MS 사람들의 전형이다.
말단의 상품기획자나 프로그래머, 프로젝트에 따라 잠시 고용된 프리랜서, 총 책임자들 모두, 아드레날린을 복용한 사람들처럼 혈기 왕성하다. 누구하고나 물론 게이츠와도, 밤이나 낮이나, 집이나 사무실 어느 곳에서나 의견 교환이 가능한 '전자우편' 시스템은 상하의견 교환을 원할히 해주는 윤할유가 된다.
전자우편을 통해 전 세계의 정보가 초고속으로 전달 된다. 의사결정도 당연히 전자우편을 통해서 모든 관계자들의 의견이 신속히 교환되고 이루어진다. 신속함과 열린 구조가 이 회사의 자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다른 특징은 직원 선출 방식이다. 오랜 시간 면밀하게 치뤄지는 면접을 통해 컴퓨터의 전공 여부와 관계없이 컴퓨터에 대한 관심과 잠재력만 인정되면 OK이다. 혼자 실력을 닦은 독학파, '해커'도 환영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소프트웨어 중에는 대학 졸업을 안 한 이들의 작품도 다수다.
입사한 컴퓨터 전공 대학 졸업자의 첫 월급은 18,000~20,000달러. 그러나 자신의 공헌도 평가에 따라 지불되는 주식 배당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자랑이다. 능력만 있으면 30살도 안 되어 완벽한 전문인으로의 지식과 부를 겸비하게 된다. 완벽한 의료 자원 등의 사회보장과 업무의 뛰어난 수행을 위해 필요한 학교 수업료도 또한 모두 회사가 제공한다.
학교 다닐때는 모두들 최고라고 자부하던 학생들이 모인 탓으로 "간혹, '왕년에 내가...' 하는 말들도 많다. 그러나 정말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곳, 그 곳이 마이크로소프트이다. 원하기만 하면 대어를 낚을 수 있다. 도전하고 발전하기 나름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입사때와 비교해 괄목상대할 만한 발전을 이룬 직원들이 많다는 것도 자랑이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8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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