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12월호 - 이달의 포커스
새 단장하고 소비자를 기다리는 세운상가
세운상가가 변했다.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하고 이미 한물갔다고 알고 있는 소비자들의 고정 관념은 이젠 통하지 않는다고 세운상가는 강하게 외친다. "우린아직도 건재하며, 소비자들을 위해 새 단장까지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불과 5,6년 전만 해도, 컴퓨터 산업의 메카라고 불리우던 세운상가를 빼놓고 컴퓨터를 논한다는 일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여기서는 못 살 것도, 못 할 일도 없다는 명성이 자자하던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호시절을 누리던 세운상가의 급속한 내리 막은 용산상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던 때와 그 시기를 같이한다.
한쪽의 흥함이 다른 쪽의 쇠락을 촉발시킨 것이다. 대규모 전자상가를 만들겠다는 정부 방침으로 87년 문을 연 용산 전자상가는 처음 몇 년간은 입주도 부진하고 운영도 부실했다. 그런데도 대책 마련에 지지부진했던 정부에 대해 언론과 용산상가 입주 상인들의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결국, 서울시는 용산상가를 통과하는 버스 노선을 신설하거나 조정하고 공영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하는 등 용산상가 활성화에 힘을 기울였다.
게다가 새로 문을 여는 매장인 만큼 세운상가보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많이 팔겠다는 박리다매를 감행했던 것도 세운상가보다 용산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 주 원인이다. 모두들 주도권은 용산으로 넘어갔고, 세운상가는 곧 사그라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세운상가는 생각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세운상가 주인이 용산과 세운 양쪽에 매장을 보유한 구조상 그리 쉽게 사그라질 수 있는 상가가 아니었다. 세운상가는 올해를 재 중흥의 해로 잡았다.
세운상가 컴퓨터 부문 상우회장인 이강전 회장은 "올해 초, 우선 매장 분위기부터 바꾸자고 결정했습니다. 상가를 활성화하자는데 반대가 있을 수 없지요. 컴퓨터 매장만 있는 4층은 '세운상가 백화점' 이라고까지들 부릅니다"라고 그간의 성과를 알려준다.
매장 조도 밝게 하기와 상가 문턱 낮추기가 첫 사업이었고, 상가의 앞쪽은 이미 새 단장을 마친 상태다. 올해 말을 계기로 상가 주인과도 합의를 거쳐 건물 분위기가 아예 바뀔 것이라는 이강전 회장은 내년이면 딴 모습의 세운상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변한 건 또 있다. 컴퓨터 조립가게 일색이던 세운상가에도 대기업 PC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대기업 제품만 판매하는 매장들도 하나둘씩 늘어났고 지금은 꽤 많은 수의 매장이 들어앉아 있다. 시대에 따라 매장의 성격이나 구성도 변해가는 것이다.
세운상가는 우리 컴퓨터 역사가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 내로라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치고 세운상가를 전전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단지 물건을 사고 파는 '상가가 아니라 정보 교환의 장이었고, 기술 전수의 장이었다. 지금까지 십년을 넘게 버텨온 터줏대감들도 꽤 있어 단골이 많다는 특색을 가진 세운상가 매장은 이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밝고 깨끗한 매장에서 소비자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세운상가. 이제, 외형상의 변신 뒤에 남은 것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제품과 적정한 값, 제대로 된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하는 일뿐이다.
PC통신에 올려진 글을 지키고 싶다
얼마 전 하이텔에는 강한 항의의 글이 줄을 이었다. 이 항의 문은 하이텔 운영진의 사전 통보없는 글 삭제에 대한 것으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글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하이텔 운영진에게 주어진 권리는 과연 무제한인가? 하이텔의 사용자들은 하이텔 운영진의 성역없는 글 삭제에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1월 8일과 9일, 하이텔 게시판의 큰 마당에는 하이텔의 무단 내용 삭제에 대한 항의와 함께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들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하이텔 접 속의 어려움이나 잡음 발생에 따른 사용자들의 불만 표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참히 삭제된 자신의 글을 지키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의지가 이번처럼 강했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 삭제당한 글은 대부분 하이텔에 대한 지나친 항의성 문구나, 동일한 제목으로 여러번 올라온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제목이라고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해당 게시물을 읽던 사용자들은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삭제된 글이 모두 이유없이 지워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이텔 소식에 있는 내용을 보면 같은 내용이 여러번 올려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용에 저속한 언어가 많이 사용되었다거나 욕설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런 내용은 삭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글이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지워졌다는데 있다. 따라서 하이텔 운영진이 글을 삭제할 때의 기준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이텔의 이용 약관을 보면 제14조에 이용자·게시물에 대한 규약이 있다. 그것은 하이텔이 사전 통지없이 서비스내에 게재 또는 등록한 내용을 삭제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 6가지 사항에 해당될 때이다.
1. 공공 질서 및 미풍양 속에 위반되는 경우,
2. 범죄적 행위와 결부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3. 게시기간이 회사에 의해 규정된 기간을 초과한 경우,
4.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인 경우,
5.타인의 저작권 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6.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이 6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을 삭제할 때에는 사용자에게 사전 통보를 해야 마땅한 일이다. 게시물 전체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동일한 제목이라고 여겨 무조건 삭제해 버린 하이텔 운영진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형태였건 자신의 글을 소중히 여긴다.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자기의 글이 없어졌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당황하고 허무하겠는가.
한편, 이 기회에 사용자들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PC통신망은 개인의 낙서장이 아니고 공공의 재산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하며 운영진의 노력과 이용자들의 생각도 올바로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성숙된다면 우리의 통신문화는 한층 발전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12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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