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어득수 (如魚得水)
如(같을 여) 魚(고기 어) 得(얻을 득) 水(물 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얻거나 자신에게 매우 적합한 환경을 얻게 되다.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諸葛亮)전에는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얻었을 때의 심정을 기록한 대목이 있다.
동한(東漢) 말기, 천하가 대란(大亂)에 휩싸이자, 각 세력들과 다투던 유비는 인재(人才)를 찾고 있었다. 그는 제갈량이라는 인재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직접 세 차례나 그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 천하를 도모하기를 청하였다.
제갈량의 도움으로 유비는 촉한(蜀漢)을 건국하고, 조조, 손권과 삼국정립(三國鼎立)의 국면을 형성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매우 존경하였으며, 제갈량 또한 유비의 대우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유비는 중대한 일들에 대하여 제갈량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제갈량에 대한 태
도에 불만이었다. 이에 유비는 그들에게 내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자네들은 다시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게. 라고 말했다.
여어득수(如魚得水)란 수어지교(水魚之交) 수어지친(水魚之親)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얻거나 자신에게 매우 적합한 환경을 얻게 됨 을 비유한 말이다.
한단학보 (邯鄲學步)
邯(땅 이름 한) 鄲(조나라 도읍 단) 學(배울 학) 步(걸음 보)
자신의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면 양쪽을 다 잃게 된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의 한단(邯鄲) 사람들의 걷는 모습이 특별히 멋있었다고 한다. 연(燕)나라의 수릉(壽陵)이라는 곳에 살고 있던 한 청년은 한단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배우기 위해 직접 한단에 갔다.
그는 매일 한단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원래의 걷는 방법을 버리고, 걷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한걸음 한걸음 발을 뗄 때마다, 발을 어떻게 들고 또 어떻게 놓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다리의 조화와 걸음의 폭 등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했다. 이렇다보니 그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몹시 힘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그는 한단 사람들의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래 걷는 법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그는 네발로 기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단학보(邯鄲學步) 는 한다지보(邯鄲之步) 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면 양쪽을 다 잃게 됨 을 비유한 말이다.
노마지지 (老馬之智)
老(늙은이 로) 馬(말 마) 之(-의 지) 智(슬기 지)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한비자(韓非子) 세림상(說林上)에는 경험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자, 많은 소국(小國)들은 제나라의 명을 받듬으로써 제나라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다.
당시, 산융(山戎)이라는 나라가 제나라에 의지하고 있던 연(燕)나라를 침범하자, 환공은 산융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663년, 제나라는 산융을 크게 물리치고 도읍을 점령하였다.
산융의 국왕인 밀로(密盧)가 고죽국(孤竹國)으로 도망하자, 환공은 계속하여 고죽국을 공격하였다. 제나라는 봄에 고죽국을 공격하였으나, 고죽국의 장군인 황화(黃花)가 지형을 이용하여 응전하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전쟁은 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제나라 군대는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함께 참전하고 있던 국상(國相) 관중은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써보는 게 좋겠소(老馬之智可用也) 라고 말하고, 늙은 말 몇 마리를 골라 대열의 앞에서 마음껏 달리도록 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그 말들의 뒤를 따라 곧 출로를 찾아 귀환할 수 있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란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를 비유한 말이다.
구밀복검 (口蜜腹劍)
口(입 구) 蜜(꿀 밀) 腹(배 복) 劍(칼 검)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품음.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에는 이임보(李林甫)라는 사람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임보는 당 현종 때의 재상(宰相)으로서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다른 재주도 많아서,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는 또 아첨하는 재주가 있어서, 권세 있는 인물들과 자주 접촉하고, 황제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많은 뇌물을 주어 황제의 언행을 항상 파악하여, 황제의 기분에 맞게 처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19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상하고 제거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이임보는 황제가 병부시랑(兵部侍郞) 노현(盧絢)과 엄정지(嚴挺之) 등을 중용하려 하자 그들을 비방하여 그들의 승진을 막기도 하였다.
이임보는 겉으로는 매우 선량하게 좋은 말만을 하였으나, 속으로는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자, 세상 사람들은 마침내 그의 위선적인 면목을 알고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지만 뱃속에는 칼이 들어있다(李林甫口有蜜, 腹有劍) 라고 말하였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이란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품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망양보뢰 (亡羊補牢)
亡(망할 망) 羊(양 양) 補(기울 보) 牢(우리 뢰)
일이 발생한 후에라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나라 경양왕(頃襄王)은 간신들을 중용하고 주색(酒色)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대신(大臣) 장신(莊辛)은 경양왕에게 왕을 수행하는 주후, 하후, 언릉군, 수릉군 등은 사치하고 방탕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라고 간언하였다.
경양왕이 이 말에 몹시 분노하자, 장신은 만약 신의 말을 믿을 수 없으시다면, 신이 조(趙)나라로 피난하도록 윤허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장신이 떠난 지 다섯 달이 되었을 때, 진(秦)나라는 과연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여 도읍을 점령하였다. 경양왕은 먼 곳까지 도망하고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장신을 찾아오도록 하여, 그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지를 물었다.
장신은 토끼를 발견하고 나서 사냥개를 생각하여도 늦지 않으며, 양이 달아난 후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고 들었습니다(亡羊而補牢, 未爲遲也) 라고 대답하였다.
망양보뢰(亡羊補牢) 란 일이 발생한 후에라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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