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구시 (實事求是)
實(열매 실) 事(일 사) 求(구할 구) 是(옳을 시)
실제에 근거하여 진리를 밝혀 냄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는 학문을 즐겼던 한 왕에 관한 기록이 있다.
한(漢)나라의 경제(景帝)에게는 유덕(劉德)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유덕은 하간(河間:지금의 하북성 하간현)에 봉하여지고 하간왕이 되었다. 그는 고서(古書)를 수집하여 정리하기를 좋아하였다. 진시황이 모든 책을 태워버린 이후 고서적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적지않은 책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오기도 하였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도 하간왕 유덕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선조들이 물려준 진(秦)나라 이전의 옛책들을 그에게 받쳤으며, 일부 학자들은 직접 하간왕과 함께 연구하고 정리하기도 하였다.
한무제(漢武帝)가 즉위하자, 유덕은 한무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과 고대의 학문을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그는 학문 탐구를 즐길뿐만 아니라 옛날 책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낸다(修學好古, 實事求是) 라고 말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실제에 근거하여 진리를 밝혀 냄 을 뜻한다.
이란격석 (以卵擊石)
以(-써 이) 卵(알 란) 擊(부딪칠 격) 石(돌 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것과 같은 전혀 이득이 없는 어리석은 일
묵자(墨子) 귀의(貴義)편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말이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기, 묵자는 노(魯)나라를 떠나 북쪽의 제(齊)나라로 가는 길에 점장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점장이는 묵자에게 북쪽으로 가는 것이 불길하다고 말했다.
묵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북쪽으로 향하여 치수(淄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때 치수의 물흐름이 너무 빨라 건널 수 없게 되자 묵자는 다시 돌 수 밖에 없었다.
되돌아 오는 묵자를 보고 그 점장이는 거만하게 굴며 묵자의 기분을 건드렸다. 묵자는 제나라에 가지 못하게 된 판국에 점장이의 비웃음까지 받게 되자, 몹시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말은 근거없는 미신이오. 당신의 말을 믿는다면 천하에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러한 말로써 나의 말을 비난하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것과 같소(以其言非吾言者, 是猶以卵投石也). 천하의 계란을 다 없앤다 해도 돌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오.
이란격석(以卵擊石) 은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 는 뜻이니, 이는 곧 손해만 볼 뿐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 을 비유한 말이다.
기사회생 (起死回生)
起(일어날 기) 死(죽을 사) 回(돌이킬 회) 生(날 생)
죽을 병에 걸렸다가 간신히 살아남
사기(史記) 편작창공(扁鵲倉公)열전에는 춘추(春秋)시대의 명의(名醫) 진월인(秦越人)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월인은 당시 의원(醫員)이었던 장상군(長桑君)으로부터 의술을 배워 천하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전설속의 신의(神醫)인 편작(扁鵲)이라 호칭하였다.
백성들을 치료해 주며 천하를 돌던 어느 날, 그는 괵( )나라를 지나면서 멀쩡하던 태자(太子)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왕의 부름으로 입궐하여 태자의 상태를 검사하였다.
태자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한 것뿐이었다. 진월인은 태자에게 침을 놓았다. 잠시 후, 태자가 깨어나자, 그에게 처방문을 써주었다. 그의 처방대로 치료를 받은 태자는 한 달도 못되어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진월인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는 저는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로 하여금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越人非能生死人也. 越人能使之起耳). 라고 하였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이란 죽을 병에 걸렸다가 간신히 살아남 을 뜻한다.
일국삼공 (一國三公)
一(한 일) 國(나라 국) 三(석 삼) 公(공변될 공)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함
춘추좌전 희공(僖公) 5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춘추시기, 진(晋)나라의 군주인 헌공(獻公)은 공자(公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위하여 대부(大夫)인 사위(士蔿)를 시켜서 포(蒲)땅과 굴(屈)땅에 성을 쌓게 하였다. 그의 축성작업에 불만을 품은 이오는 헌공에게 호소하였다. 크게 노한 헌공의 문책에 사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쟁이 없는데도 성을 쌓으면 그 성은 적군에게 이용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견고하게 쌓아 훗날 적에게 진지로 이용당한다면, 이는 곧 불충(不忠)의 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실하게 쌓는다면 이는 임금에 대한 불경(不敬)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불충불경의 죄를 범하였으니 어떻게 해야합니까? 덕으로 나라가 안정되어 후대가 견고하다면, 이보다 나은 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집에 돌아와서 여우가죽 옷 갈래갈래 찢어지듯, 한 나라에 세 임금 있으니, 내 누구를 따라야 할꼬(狐 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 라는 시를 읊었다.
일국삼공(一國三公) 이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함 을 비유한 말이다.
기호난하 (騎虎難下)
騎(말탈 기) 虎(범 호) 難(어려울 난) 下(아래 하)
이미 시작된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다.
수서(隋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에는 수나라의 건국에 관한 대목이 있다.
남북조(南北朝)시기, 북주(北周)의 자사(刺史)인 양견(楊堅)은 북주 대사마 독고신(獨孤信)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독고신의 또 다른 딸은 주나라 명제(明帝)와 결혼하여 황후가 되었으며, 양견은 또 자신의 맏딸을 명제의 아들인 선제(宣帝)에게 시집보내어 황후가 되게 하였다.
서기 580년, 선제가 세상을 떠나자 8세된 정제(靜帝)가 자리를 계승하였다. 이때 양견은 정제를 보좌하며 쉽게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 독고씨는 양견이 이미 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판단하여 그에게 제위를 차지하도록 종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의 일이 이미 이렇게 된 바, 당신은 맹수의 등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大事已然, 騎獸之勢, 必不得下).
581년 3월 정변(政變)을 일으킬 시기가 되었다고 확신한 양견은 마침내 정제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수(隋)나라 문제(文帝)였다.
기호난하(騎虎難下) 는 기호지세(騎虎之勢) 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미 시작된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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