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18. 조조, 적벽에서 무너지다
중국, 삼국시대의 시작(208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1년/을파소, 고구려 재상이 됨
194년/고구려 진대법 실시
후한 말, 중국천하는 다시 군웅할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외척과 환관의 권력다툼으로 정치가 혼란에 빠지고, 생활고에 시달린 농민들의 반란이 쉴새없이 일어났다.
농민들의 불만은 황건적의 난으로 폭발했다. 황건적이란 가담자들이 누런 헝겊으로 머리를 싸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황건적의 난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각지에서 일어난 군신들은 저마다 천하를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들 중 조조, 손권, 유비 세 사람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두고 경쟁하게 되니, 이때를 삼국시대라 부른다.
흔히 조조는 꾀 많고 간사한 인물로, 유비는 덕망 높고 온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조조는 당대의 전략가로서 전투시에는 항상 진두지휘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환관의 양자였다고 하니, 몰락했을지언정 황족의 후예인 유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문인 셈이다.
조조를 두고 일찍이 허소라는 사람은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 될 상이라고 평하였다. 평화시대엔 유능한 관리가 되겠지만, 난세에는 간사한 영웅이 되리란 뜻이다.
조조는 후한 마지막 황제 헌제의 보호자가 되어 최고의 명문 출신인 원소의 대군을 격파, 중원을 수중에 넣었다. 중원 땅은 중국 대륙의 중심부로, 천하를 얻으려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곳이었다.
한편 유비는 전한 경제의 아들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몹시 가난하여 짚신이나 자리를 짜서 생계를 유지했다. 유비는 팔이 유난히 길고 귀가 컸으며, 말수 적고 희로애락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의형제 관우, 장비와 토벌전에 종군, 그 공으로 말단 관리직을 얻었다.
손권은 손견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에 19세 때 대권을 물려받았다. 그는 주유, 노숙, 장소 등의 보좌를 받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여 강동지방에 세력을 굳혔다. 그의 세력권은 양자강 중류에서 절강에 이르렀으며, 기름진 곡창지대가 대부분 그에 속해 있었다.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제갈공명이다. 제갈공명의 이름은 량, 공명은 자이다. 낭야군 양도현, 지금의 산동성 기수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를 따라 형주로 와서 살았다. 17세 때 숙부마저 죽자 융중으로 옮겨와 초가를 짓고 밭을 갈며 경전과 사서를 공부했다.
스스로를 춘추전국시대의 명재상 관중과 연나라 명장 악의에 비유했는데, 사람들은 때를 기다리는 용이라하여 '와룡선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조는 30세, 유비는 24세, 손견 29세, 손권 3세, 제갈공명 4세였다. 유비와 제갈공명이 만난 것은 그로부터 23년 후, 유비의 나이 47세, 제갈공명의 나이 27세 때이다.
유명한 적벽대전은 서기 208년에 벌어졌다. 당시 조조는 중국 북부를 완전히 통일하고 형주와 강동을 향해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중이었다. 당황한 손권에게 제갈공명은 연합을 제의, 손권의 군사 3과 유비의 수상부대가 공동작전을 펴게 되었다.
조조의 군사는 적벽(호북성 가어현 양자강 연안)의 강언덕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모두들 북방 출신인지라 풍토병에 시달리는데다 수전에 익숙치 못해 뱃멀미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자 뱃멀미를 덜기 위해 배들을 전부 쇠고리로 연결,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연환선을 만들었다.
이를 알아차린 주유의 부장 황개가 계책을 냈다. '조조군은 배의 꼬리와 머리가 맞닿아 그 진퇴가 자유롭지 못하니, 화공으로 일거에 격파할 수 있습니다. '
주유는 몽충(;폭이 좁고 길며 적선과 충돌하여 침몰시키기 쉽게 만든 배), 투합(지금의 전함) 10척에 마른 섶과 갈대를 가득 싣고 기름을 부은 다음 포장을 덮고 깃발을 꽂게 했다. 그 뒤에는 쾌속선이 따랐다. 준비를 마친 후 부장 황개로 하여금 항복하겠다는 편지를 보내도록 했다.
황개가 거느린 전선이 나타나자 조조의 군사들은 환호했다. '저기 봐라, 황개가 항복하러 온다!' 1km 지점까지 다가갔을 무렵, 황개의 신호에 따라 가득 실은 섶과 갈대에 일제히 불이 댕겨졌다.
때마침 불어온 동남풍을 타고 황개의 선단은 맹렬한 불꽃을 일으키면서 조조의 함대로 돌진 해 들어갔다. 그러나 쇠고리에 묶인 조조의 배들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삽시간에 일대는 온통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주유의 정예부대가 종횡무진, 조조 군사들의 목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적벽 일대는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조조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 허창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만약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승리했더라면 중국천하는 이때 조조의 손에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명전략가였던 그도 남쪽 지방의 변화무쌍한 기후, 특히 계절풍에 대해선 무지했던 모양이다. 바람 방향이 동남풍으로 바뀌는 것을 알았다면 지략가인 조조가 연환선을 허락했을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이 싸움을 계기로 조조의 세력은 위축되고, 유비는 형주와 익주를 얻어 발판을 굳혔으며, 손군은 강동을 지켜 동남쪽으로 그 세력을 뻗게 되었다. 바야흐로 위, 오, 촉 삼국이 정립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약 80년 후인 서기 280년, 위나라의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하고 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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