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에 해당되는 글 343건

  1. 2021.02.07 중국사 100장면 - 33. 절도사들의 시대. 안사의 난(755~763년)




중국사 100장면 - 33. 절도사들의 시대

안사의 난(755~763년)


안사의 난때 안녹산의 진격 방향


안녹산의 체중은 200킬로그램. 어찌나 뚱뚱했던지 뱃살이 늘어져 무릎을 덮을 정도였다. 어느 날 현종이 그의 배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 뱃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기에 그리도 뚱뚱한가?)


안녹산의 대답인즉,


  (예, 오직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만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참으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아부다. 그는 현종의 사랑이 쏠려 있는 양귀비에게도 양아들로 행세했는데, 그의 나이는 양귀비보다 10여 살이나 위였다. 


이러한 능수능란한 처세로 말미암아, 그가 세상을 뒤흔드는 대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현종은 이 사실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안녹산은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란계 소그드 인을 아버지로, 돌궐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의 성씨인 '안'은 중국에 귀화한 이란계를 표시하며, '녹산'이라는 이름은 소그드 인에게 흔한 이름으로, '빛'을 의미하는 소그드 어의 한자표기이다. 


소그드인의 탁월한 중개무역 솜씨는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바, 안녹산의 사회생활도 역시 한족과 이민족간의 중개업 상인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익살스럽고 소탈하게 성격을 타고난데다 6개 국어에 능통했던 까닭에 점차 상인으로서의 솜씨를 인정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주 절도사의 눈에 들어 군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절도사란 부병제가 무너지고 모병에 의한 전문군인이 출현하게 되명서, 710년 처음으로 변방에 설치되었던 전문직 군관으로, 떠도는 농민과 이민족을 모아, 당 중기 이후 뚜렷이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 변방의 위구르, 토번, 거란, 발해 등의 세력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중앙권력이 약해짐에 따라, 절도사의 권한은 군정뿐만 아니라, 정치 일반에 미쳐 '번진'이라고 부르는 지방군벌로 변화해갔다.


한편, 명문귀족 출신인 재상 이임보는 정치에 싫증이 난 현조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당대 최고의 권신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입가에는 꿀, 마음에는 칼'을 가진 자로 일컬었는데, 그는 국내 귀족세력의 반대를 견제하고자 이민족이나 서민 출신을 절도사로 임명했다. 이에 안녹산은 이임보의 지원 속에 평로, 범양, 하동 삼번진의 절도사가 되는 파격적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권신 이임보가 죽고 양귀비의 6촌 오빠인 양국충이 재상에 오르자, 그의 출세가도에는 먹구름이 끼게 되었고, 그의 야심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간신 양국충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삼번진의 용병 군단을 몰아 대반란의 기치를 올렸다. 이때가 755년, 그의 병력은 20만에 달했다.


반란군은 이렇다할 저항도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안녹산은 낙양에서 즉위, 국호를 대연, 연호를 성무라 칭했다. 


현종은 72세의 늙은 몸으로 서쪽의 촉 땅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장안을 떠나 백리쯤 되는 마외역에 도착했을 때, 성난 호위병사들의 요구로 사랑하는 양귀비와 양국충 일족에게 죽음을 내렸다. 


연도의 백성들은 현종의 피난행렬을 막으며 반란에 적극 대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침내 현종은 아들에게 양위하게 되니, 그가 숙종이다.


점차 각지에서도 의병이 조직, 반격이 시작되었으며, 위구르에 원군도 요청했다. 이때 우리에게는 서예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안진경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는 당시 평원 태수로 있었는데, 위진 이래의 대표적인 명족 출신이었다. 그의 글씨는 종래 서예계를 풍미하던 왕희지의 '왕체'를 대신, 성당기의 서도를 대표하게 되었는데, '안체'라고 불린다. 


흔히 당나라 사람들은 '안진경의 글씨에는 힘줄이 있고, 유공근의 글씨에는 뼈가 있다'로 표현했는데, 그의 글씨가 호방하고 중후하면서도 탄력이 넘쳐 힘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뒷날, 당 왕조에 반기를 든 회령의 지방관 이희열을 설득하는 사자로 파견된 후, 그의 회유책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76세의 나이에 교살당했다.


한편, 안녹산은 반란을 일으킨 후 시력이 나빠져서 완전히 실명에 이른데다가 악성 종양까지 생기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그가 애첩의 소생인 안경은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이를 미리 알아챈 적자 안경서가 먼저 안녹산을 죽이는 것으로 시작된 반란군의 내분은 관군의 반격보다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어 안경서 토벌군이 일어나고, 안경서를 지원했던 안녹산의 부장 사사명이 안경서를 죽이고 대연황제라 칭했다. 그의 아들 사조의가 다시 사사명을 죽이고 즉위한 후, 패전을 거듭한 끝에 763년 자살했다. 


이로써 안녹산, 사사명의 반란, 줄여서 '안사의 난'이라고 불리는 당 중기의 대 반란은 마감되었다.


안사의 난 이후로도 당 왕조는 150여 년간 명맥을 유지하게 되나, 이제 중국사회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변경에만 설치되었던 절도사제가 전국에 확산되고, 이들이 점차 자립화하여 중앙권력에 도전하게 되니, 세계제국으로서의 당의 풍모는 어디서도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전화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