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 29. 중세문화 꽃, 대학
-대학의 성립과 발달(12세기)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135년/묘청, 북벌 주장하고 대위국 세우
1145년/김부식, '삼국사기' 편찬
1170년/정중부의 쿠데타, 무신정권 시작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대학들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대학의 기원은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다.
가장 오래 된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은 일반 교양과목과 의학, 철학, 신학 등을 가르쳤는데, 그중에서도 법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볼로냐 대학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법학자 이르네리우스의 로마법 강의와 그라티아누스의 교회법 강의로 유명했으며,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어 법률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대 학 주변의 시민들은 방세를 대폭 올렸으며, 학생들은 조합을 만들어 이에대처했다.
학생조합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방세 인하였다. 이들은 볼로냐 시당국에 방세 인상 금지를 요청했다. 만일 들어주지 않으면 모두 볼로냐 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대학은 강의실이나 기숙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공공건물을 빌려 강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학생조합이 갖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방세 인하 싸움에서 승리한 볼로냐 대학생들은 교수를 다음의 목표로 삼았다.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이러했다.
'학생들의 허락 없이 교수 마음대로 휴강하지 말라.'
'수업시간을 정확히 지켜달라.'
'교수는 강의를 대충하지 말라.'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가지 말라.'
'폭넓은 강의 내용을 원한다.'
학생들이 이런 요구사항을 내걸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교재를 제대로 구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당시는 아직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모든 책을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들어야 했는데, 이런 필사본의 값이 엄청나게 비쌌던 것이다.
교수의 연봉이 50후로린인데 교재 값은 한 권에 25후로린 이었으니, 학생 신분으로서 교재를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좋은 교수의 훌륭한 강의를 들으며 스스로 필기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데 교수들이 강의를 소홀히 하는 데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수를 관철시키기 위해 수업거부 혹은 등교거부 등 단체행동을 불사했다. 대학 재단이란 것이 전혀 없고 오로지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에 의해 대학이 운영되던 당시인지라 학생들의 단체행동은 곧바로 교수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그러자 교수들도 조합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만든 조합은 콜레지아라고 했다. 오늘날 단과대학을 뜻하는 칼리지는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종합대학을 일컫는 유니버시티는 학생조합 우니베르시타스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학생들도 장래 교수가 되려면 칼리지에 가입해야 했으므로 칼리지를 함부로 대하진 못했다. 칼리지에 가입하려면 엄격한 자격심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볼로냐 대학의 중심은 역시 학생이었다.
신학으로 명성을 떨친 파리 대학은 이와는 달리 교수가 중심이었다. 노트르담 성당 학교로부터 출발한 파리 대학은 정치 중심지인 파리에 있다는 유리한 입지조건에 아울러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 아벨라르두스의 명성에 힘입어 신학의 본거지가 되었다.
아벨라르두스는 여수도원장 엘로이즈와의 정신적 사랑으로 유명한 인무리기도 했다. 그의 신학 강의는 한 번에 5천 명의 학생들이 몰려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편 대학은 도시당국과 교회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랜 투쟁을 했다. 1200년경 파리 대학의 한 독일 유학생이 시민에게 모욕을 당한 문제로 학생들과 파리 시민간에 집단 싸움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경찰을 불렀고, 결국 학생 5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수들과 학생들은 즉시 국왕에게 항의, 학생을 살해한 경찰을 처벌하지 않으면 즉시 파리를 떠나겠다고 경고했다.
파리 대학의 권위는 막강했다. 교황을 비롯해 고위성직자 대부분이 파리 대학 출신인지라 국왕 필립 2세는 할 수 없이 문제의 경찰을 체포, 처벌하고 파리 시의 경찰책임자도 문책해야 했다.
그리고 현행범이 아니면 파리 대학 학생에겐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나아가 재판권을 비롯한 일체의 권한을 대학에 맡겨 자치를 허락했다.
중세 대학생들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3과목을 수료하면 대학 졸업장을, 산수, 기하, 천문, 음악 4과목을 수료하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법률, 의학, 신학 중하나를 택해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중 신학이 가장 어려운 학문으로 꼽혔다.
대학을 졸업하면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었다. 문학 전공자는 행정가나 교수로, 법학 전공자는 법률가나 관리로, 신학전공자는 신학교수나 고위 성직자가 되었다.
학생들은 성직자처럼 머리를 박박 깎고 공부에 열중했지만 점잖고 경건한 행동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술과 춤, 여자를 즐기기도 하였고 패싸움도 곧잘 했다.
13세기 이후의 유럽 중세문화는 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했다. 15세기 무렵엔 유럽 각지에 80여 개의 대학이 있었다고 한다. 대학은 자유와 진리의 상징이었으며, 중세문화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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