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컴 1993년 5월호 - 사람과 사람들

대자보 BBS에서 노동자료 정보센터까지

 



효과적인 노동운동에는 컴퓨터가 제격 

 

BBS의 활용이 점차 전문화 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노동 관계 자료만을 구축해 놓은 '대자보 BBS'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 정도의 BBS라면 거창한 단체나 기구에서 운영 하리라고 얼핏 생각들지만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만큼의 성과를 보고 있다.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차체부에 근무하는 주병진. 그가 하는 일은 판금작업이라고 하여 자동차의 차체를 두들기고 조립하고 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의 전산부장 (여기서는 부장밑에 아무도 없다. 가장 밑의 호칭이 부장이란다) 직책도 맡고 있으면서 대자보 BBS를 구축해 놓았다.

 

오래전부터 전국의 모든 노조와 노동단체를 하나의 전산망으로 연결시켜 보겠다는 것이 노동관계자들의 생각이었지만 현실에서 부딪치는 이런저런 문제로 아직 제대로 추진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일이 그 규모로 볼때 그리 쉽사리 이루어질 작업의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BBS의 구축이었다.


대자보 BBS는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동안 꿈꾸어 오던 노조 전산망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모두는 기대하고 있다.

 

우선 BBS를 이용하면 각 사업장마다 자신들의 현재 상황이나 각종 사례들을 업로드시키거나 다른 사업장의 자료를 참고하는 등 노동 운동의 정보 제공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모든일이 그러하지만 특히, 노동운동도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움직여야만 사업 자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일에는 컴퓨터만큼 적격인 것이 없음은 사용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 하고 있다.

 

여기서 대자보 BBS를 설치 운영하게 된 목적과 배경을 정리해 본다. "대자보 BBS는 동지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속에 운영되어 집니다. 대외적으로 알릴 사항은 게시판을 통해 홍보할 수도 있으며 특정사항이 발생하였을 때는 부서별 게시판을 통해 협조를 구할수도 있습니다.

 

소중하게 얻은 자료나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타 노동조합 동지를 위하여 자료를 제공해 주십시오..(중략) 각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논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그들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 필요하며 대부분 능력이 풍부한 간부와 조합원이 있음에도 정보의 집적과 분석, 체계적인 자료정리 및 정보수집이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항상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노동조합의 일상활 동은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의지가 바탕이 되지만 구체적인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전문적인 지식과 축적된 경험이 필요하게 됩니다..(중락) 많은 조합원들이 일을 추진하다 보면 정보 수집과 자료의 빈곤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의 효과적인 운영의 방법으로 전용 BBS를 구축하여 자료의 공유 및 내부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후략)"

 


용접에서 키보드까지


전남 고흥반도의 학동에서 태어난 주병진.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만 마치고 중학교 진학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처지였다. 그러나 집안 몰래 중학교 시험을 보았고 주위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다닌후 내친김에 고등학교까지 진출(?) 하기로 마음먹고 학비가 전액 무료였던 부산 기계공고에 입학하여 배관과를 졸업하였다. 이 학교는 학비면제는 물론 용돈 까지 주었다고..


졸업후 대우 옥포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취직 하였다. 옥포 조선소가 있는 거제도가 자신의 고향인 고흥반도보다 훨씬 살기 좋다고 느껴온 한편으로는 쉴 틈도 없이 용접봉을 태우는 그로서는 평소 마음 먹었던 야간 대학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용접봉을 갈아끼우는 시간은 불과 10초입니다. 하루종일 태우는 용접봉의 양은 몇 트럭 분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유를 보아가면서 대학 진학을 하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가 용접봉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결국 야간 대학은 포기하고 방송통신 대학 경제과에 입학하여 3년차까지 다녔으나 이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일에 지치고 학업에 대한 미련으로 심신이 모두 휘청거리던 그에게 말없이 다가온 것이 컴퓨터였다. 조선소 전산실에 근무하던 선배를 통해 컴퓨터 (지금 생각하면 그건 PC가 아니라 단말기였단다)와 처음 만났고 이 기계가 의욕 상실에 빠져 있던 그에게 생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정도로 쉽게 친해졌다.

 

거제도에서 컴퓨터를 마땅히 배울곳도, 참고할 교재도 없던 그는 선배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리고 퇴근하면 컴퓨터 앞으로 출근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때가 가장 열심히 컴퓨터 공부를 한 시기 였습니다. 선배의 도움으로 컴퓨터의 개념도 익히고 코볼, 포트란 코딩작업을 하면서 컴퓨터 매력에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C 언어를 접하게 되었고 지금은 거의 모든 작업을 C 언어를 통해 처리하고 있습니다. 어셈블리를 공부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역시 어렵 더군요."


그런 과정에서 그가 몸 담고 있는 대우조선이 경영합리화 정책의 일환으로 인원의 감축이 있었고 희망자는 대우자동차로 근무지를 변경해 주었으며 그는 89년 서울로 올라와 현재의 부평공장의 차체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거리에서 부딪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컴퓨터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서울 생활의 좋은점이 더군요. 매월 서점에서 새로 쏟아져 나오는 컴퓨터 관련 전문지와 단행본을 보며 용산의 전자 상가를 유람하는 것이 낙이 되었습니다."


이럭저럭 컴퓨터에 어느정도 도사(?)가 되어가고 있을 즈음, 그의 컴퓨터 실력에 대한 소문을 듣고 노조에서 연락이 왔다. 노조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발휘될 장이 생겼음과 같은 노동자들을 위해 뜻 있는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노조 업무 전산화에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작년 12월, 전산부장에 임명 되었다.

 

 


노조 관련 프로그램과 함께 개발된 자료왕국

 

컴퓨터 시대에 걸맞게 노조 집행부에서도 지난해 부족한 예산을 쪼개어 1천8백만원을 투자하여 486 1대, 386 2대, 286 1대, 레이저 프린터 등을 고루 갖추었으며 그는 노조의 일상적인 업무인 회계, 자료, 조직, 일정관리 등의 업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면 필요한 사항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출력되는 관계로 노조원들의 관심도 점차 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이러한 노조 업무 전산화 작업을 하면서 조직관리, 문서관리 등 업무용 프로그램을 짜다보니 프로그램의 중복으로 시간이나 경제적으로 낭비 요소가 많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여러 업무에서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자료 왕국'이다. 자료왕국은 한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으로 그래픽 화면에서 작동하도록 하여 자체에서 한글 지원이 가능하고 화면 구성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는 물론, 문서작성, 스프레드시트, 파일변환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제품은 소프트웨어 전시회에서 좋은 호평을 받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와 평소 친분이 있던 컴퓨터 전문지 회사를 통해 판매되어 한 때 엄청난 판매를 기록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판매량이 그의 수입과는 연결되지 않았으며 현재로서는 판매 계약도 중단된 상태에 있다.

 

그는 자료왕국의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판매되는 소프트웨어의 버전업은 개발자의 당연한 의무로서 지금은 버전 1.6까지 나와 있지만 곧 2.0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판매도 새로운 유통망을 구상하고 있는 한편으로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개소프트 웨어를 생각도 해보았지만 기존의 구입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그것도 쉬운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고민이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구상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공개로 알릴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것보다 급한 문제가 그를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다. 그가 속한 노조 집행부는 10월이면 임기가 끝나게 되어 그 이후에 그의 거취도 불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할일이 많다.

 

대자보 BBS를 현재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호스트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전국적인 노조 전산망으로 발전 확대되기 위해서는 전문 단체에서 운영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생각이다.

 

이 작업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현재 386으로 사용되는 호스트도 486급으로 교체하고 OS도 유닉스로 바꿀 생각을 갖고 있다. 대자보 BBS의 홍보와 함께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좋아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갖는 일이다.

 

프로그램 개발을 한다고 정신없이 세월지나 서울에 온지 4년여. 그동안 가족들과 어린이대공원 한번 가보지 못해 7살박이 큰아이의 원망이 대단하단다.

 

일요일이면 컴퓨터 관련 자료 수집이나 프로그램 개발로 으례히 컴퓨터 앞에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재미없는 아빠로 오래전에 인정(?) 받은바 있다.

 

큰 아이가 자라서 컴퓨터를 배우고 훨씬 발전된 대자보 BBS가 운영이 되어 완벽한 전국 노조전산망이 구축되면 그 때쯤이면 아빠가 했던일이 인정받지 않겠냐고 웃으며 건네는 농담에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듯 했다.




 이글은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잡지, 마이컴 1993년 5월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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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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