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五里霧中 )
五(다섯 오) 里(거리 리) 霧(안개 무) 中(가운데 중)
현재의 상태를 알수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함 을 비유한 말
후한서(後漢書) 장해(張偕)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후한(後漢)시대, 경전(經典)에 뛰어난 성도(成都)출신의 장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평소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데다, 그와 교제하려는 황족들이나 귀족들까지 그를 자주 찾아왔다.
그는 이러한 붐비는 생활과 벼슬을 싫어하여 산중에 은거(隱居)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 산에서 저 산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다.
그런데 그는 뛰어난 학문외에도 도가(道家)의 도술을 익혀 안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는 사방 5리나 안개를 일으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곤 했다. 그 당시 사방 3리 정도의 안개를 일으킨다는 배우(裵優)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술법을 이용하여 도둑질을 하다가 체포되자, 이 도술을 장해에게 배웠다고 진술하였다. 이 바람에 장해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오리무중 (五里霧中) 이란 거리가 5리나 되는 안개 속에서 방향을 분간하지 못하듯 현재의 상태를 알수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소훼란파 (巢毁卵破)
巢(새집 소) 毁(헐 훼) 卵(알 란) 破(깨질 파)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후한서(後漢書) 정공순(鄭孔荀)열전의 이야기다.
동한(東漢)말기, 공자의 20세손인 공융(孔融)은 한나라 헌제(獻帝) 밑에서 벼슬을 지냈다. 공융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조조(曹操)의 야심을 간파하고 그를 멀리 하였다. 때문에 조조는 공융에게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유비와 손권을 공격하려는 조조의 계획을 반대했던 공융은, 그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던 한 대부의 모략으로 조조에게 체포되었다.
공융의 7세 된 딸과 9세 된 아들은, 아버지가 잡혀 가던 순간 묵묵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도망하라고 했지만, 공융의 딸은 매우 침착하게 새집이 부서졌는데 알이 어찌 깨지지 않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 라고 말했다.
공융의 딸은 조조에게 붙잡혀 와서도 죽은 뒤에 혼령이나마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형의 집행을 기다렸다.
소훼란파(巢毁卵破)란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됨 을 비유한 말이다.
모수자천 (毛遂自薦)
毛(털 모) 遂(이를 수) 自(스스로 자) 薦(천거할 천)
자신의 재능을 알리며 자기가 자신을 추천함.
사기(史記) 평원군우경(平原君虞卿)열전의 이야기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은 자신의 집에 수많은 식객들을 두고 있었다. 조나라 효왕(孝王) 9년, 기원전 257년,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단(邯鄲)이 포위되었다.
이에 평원군은 초(楚)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사신으로 가게 되자, 식객중에서 자신을 수행할 사람 20명을 뽑고자 했다. 몇번이고 고르고 골랐지만 끝내 한 사람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자신를 추천하고 나섰다. 평원군은 유능한 사람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송곳처럼 금방 드러나게 되는 법인데, 당신은 삼년 동안이나 내 집에 있으면서도 무슨 재주가 있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소. 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수는 제가 지금 초나라 수행을 원하는 것은, 저를 자루 안에 넣어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군께서 저를 좀더 일찍 자루에 넣어주셨더라면, 저의 재능도 일찍 드러났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이란 자신의 재능을 알리며 자기가 자신을 추천함 을 비유한 말이다.
공석묵돌 (孔席墨突)
孔(구멍 공) 席(자리 석) 墨(먹 묵) 突(갑자기 돌)
여기저기 몹시 바쁘게 돌아 다니다.
한(漢)나라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는 격렬한 전쟁으로 사회가 몹시 불안하였다. 이에따라 각종 사상이 발생하고 자신의 이상과 견해를 전파하고자 각국으로 유세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자(孔子)와 묵자(墨子) 역시 이러한 사람들에 속한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많은 제후국들에서 유세하였다. 그리고 노(魯)나라 사람인 묵자는 본시 수공업자 출신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겸애(兼愛) 를 주장하며, 힘만 믿고 약자(弱者)에게 고통을 주는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는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는 묵자(墨子) 이외에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귀중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였다.
반고는 공자와 묵자의 이러한 유세 활동을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 질 틈이 없고, 묵자 집의 굴뚝에는 그을음이 낄 새가 없다(孔席不暖, 墨突不黔) 라고 표현하였다.
공석묵돌(孔席墨突) 은 여기저기 몹시 바쁘게 돌아 다님 을 비유한 말이다.
이시목청 (耳視目聽)
耳(귀 이) 視(볼 시) 目(눈 목) 聽(들을 청)
사람의 눈치가 매우 빠름 을 비유한 말.
열자(列子) 중니(仲尼)편에 실린 이야기다.
춘추시기 노자(老子)의 제자로 항창자(亢倉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귀로 사물을 보고 눈으로 소리를 듣을 수 있었다(能以耳視而目聽)고 한다.
이러한 소문을 전해들은 노(魯)나라의 군주는 상경(上卿)의 예(禮)로써 그를 초빙하여, 겸손한 말로 그러한 능력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이에 항창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소문은 전한 사람들의 망발입니다. 도가(道家)의 수련에서 눈과 귀를 쓰지 않고도 소리를 듣거나 물체를 볼 수는 있지만 귀와 눈의 기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가 눈을 쓰지 않고 귀로 물체를 본다는 것과 귀를 쓰지 않고 눈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가장된 것이오니, 이를 사실로 믿지마십시오.
이시목청(耳視目聽) 은 본시 도가수련의 한 단계로서 눈과 귀의 도움없이 정신만으로도 보고 듣는 것이 가능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耳視 란 직접 보지 않고 소문을 들어서 알아차림 을 뜻하고, 目聽 이란 직접 듣지 않고 표정을 보고 알아차림 을 뜻하니, 耳視目聽 이란 사람의 눈치가 매우 빠름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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