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고사성어'에 해당되는 글 53건

  1. 2019.06.23 고사성어 - 성동격서, 거기부정, 탐뢰무예, 편장막급, 망극재배




성동격서 (聲東擊西)

聲(소리낼 성) 東(동녘 동) 擊(칠 격) 西(서녘 서)

동쪽을 칠 듯이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는 뜻으로, 상대방을 속여 교묘하게 공략함을 비유.

  

통전(通典)의 병전(兵典)에 나오는 이야기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서로 다투던 시기, 위왕(魏王) 표(豹)의 투항으로 한나라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 위왕 표의 협공을 당하는 국면이 되어 매우 위험한 형세에 처하였다. 그는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한신(韓信)을 보내어 정벌에 나섰다.


이에 위왕 표는 백직(柏直)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황하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의 도하(渡河)를 저지하였다. 한신은 포판의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하였으나, 사병들로 하여금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게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강공의 의사를 나타내도록 하였다. 백직은 한나라 군대의 동태를 살펴보고 그들의 어리석은 작전을 비웃었다. 


한편으로  한신은 비밀리에 군대를 이끌고 하양에 도착하여, 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으로 황하를 건넌 한나라 군사들은 신속하게 진군하여 위왕 표의 후방 요지인 안읍(安邑)을 점령하고, 그를 사로 

잡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란 동쪽을 칠 듯이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는 뜻으로, 상대방을 속여 교묘하게 공략함 을 비유한 말이다. 



  

거기부정 (擧棋不定)

擧(들 거) 棋(바둑 기) 不(아닐 불) 定(정할 정)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뀜 을 비유한 말.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말기, 즉 기원전 548년 위(衛)나라 대부(大夫) 손임보(孫林父)와 영식( 殖) 등은 위나라 헌공(獻公)을 축출하고, 그의 동생인 상공( 公)을 군주로 삼았다. 복귀하려는 계책을 세우던 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영식의 아들인 영희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돌아가서 위나라의 정무(政務)를 그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전했다. 


영희는 매우 기뻐하며 곧 협조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숙문자(大叔文子)가 이 소문을 듣고, 영희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걱정하며 말했다. 


군자는 행동함에 그 종말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해도 좋은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 보기를 바둑 두는 일 같이도 여기지 않으니, 어찌 화를 면하랴! 바둑 돌을 들고 놓을 곳을 정하지 못하면 상대를 이기지 못하는데(擧棋不定不勝其 ), 하물며 군주를 모시는 일에 주관이 없어서야? 

12년 후, 영희는 군주로 복귀한 헌공의 손에 죽었다. 


거기부정(擧棋不定) 이란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뀜 을 비유한 말이다. 

  

  

  

탐뢰무예 (貪賂無藝)

貪(탐할 탐) 賂(뇌물 뢰) 無(없을 무) 藝(다할 예)

뇌물을 탐함에 그 끝이 없음.

  

국어(國語) 진어(晉語) 8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기, 숙향(叔向)이라는 사람이 한선자(韓宣子)를 만나러 갔다. 한선자가  나는 명색이 임금 아래에 있는 경(卿)인데도 재물이 많지 않네 라고 말하자, 숙향은 그에게 축하한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고사를 들려 주었다.


옛날 난무자(欒武子)라는 이가 경대부를 지낼 때, 겨우 1백명의 하인에 2백 경(頃)의 땅만을 소유하였으며, 집안에는 조상들에게 제사지낼 그릇조차 변변히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선왕(先王)들의 법령과 덕행으로 일을 처리하여 많은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 받은 그의 아들은 포악하고 탐욕스러워 많은 재물들을 긁어 모았습니다. 그의 행동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아버지의 덕행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경께서는 난무자처럼 재산이 없으시니, 덕정(德政)을 펴시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기에, 저는 축하를 

드렸던 것입니다. 


탐뢰무예(貪賂無藝) 는 탐욕무예(貪欲無藝) 라고도 하며, 뇌물을 탐함에 그 끝이 없음을 뜻한다.

  


  

편장막급 (鞭長莫及)

鞭(채찍 편) 長(길 장) 莫(없을 막) 及(미칠 급)

돕고 싶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함 을 비유한 말.

  

좌전(左傳) 선공(宣公) 15년조의 이야기다. 

춘추시기,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파견한 신주(申舟)는 제(齊)나라로 가는 길에 송(宋)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전에 이 일을 송나라에 통보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는 피살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초장왕은 크게 노하여, 기원전 594년 군대를 동원하여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약소국인 송나라는 초나라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동시에 진(晉)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송나라 사신이 진나라에 도착하자, 진나라 경공(景公)은 곧 출병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대부 백종(伯宗)은 이를 반대하며 경공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출병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채찍이 길다해도 말의 배까지는 닿지 않는다(雖鞭之長不及馬腹)고 했습니다. 하늘이 초나라를 도우고 있으니, 그들과 싸워서는 안됩니다. 진나라가 강하다고 하나, 어찌 하늘을 어길 수야 있겠습니까? 


편장막급(鞭長莫及) 이란 돕고 싶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망극재배 (芒刺在背)

芒(까끄라기 망) 刺(가시 자) 在(있을 재) 背(등 배)

몹시 불안한 상태를 비유한 말.

  

한서(漢書) 곽광( 光)전의 이야기다. 

서한(西漢)시기. 기원전 87년, 한무제가 세상을 떠나자, 여덟살 된 아들이 소제(昭帝)로서 제위를 계승하였다. 공신의 후손인 대장군 곽광은 한무제의 뜻을 받들어 황제을 보좌하며 국정에 관여하였다. 


소제가 21세로 죽자, 곽광은 한무제의 손자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제위에 앉혔다. 그런데 그는 음란하고 놀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국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에 곽광은 유하를 폐하고, 한무제의 증손자인 유순(劉詢)을 제위에 앉혔다.


새로 제위를 계승한 한선제(漢宣帝) 유순은 국권(國權)을 주무르는 곽광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한선제가 선조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곽광은 직접 수레를 몰고 그를 모셨다. 


한선제는 기골이 장대하고 날카로운 눈에 엄한 표정을 한 곽광을 보며, 수레 안에서 마치 등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若有芒刺在背) 참기 어려운 모습으로 떨고 있었다. 기원전 68년, 곽광이 죽자, 한선제는 비로소 이러한 느낌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망극재배(芒刺在背)란 몹시 불안한 상태를 비유한 말이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전화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