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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16 고사성어 - 은감불원, 일거양득, 시불가실, 공성계, 명경고현



은감불원 (殷鑒不遠)

殷(성할 은) 鑒(거울 감) 不(아닐 불) 遠(멀 원)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남의 실패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의 탕(蕩)이라는 시는 나라의 흥망(興亡)에 대한 교훈을 노래한 것이다. 


하(夏)나라 최후의 왕인 걸왕(桀王)은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박하다 결국 그들의 반항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16세기경 상(商)부락의 지도자인 탕(湯)는 군사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를 세웠다. 

기원전 14세기경에는 상나라의 왕 반경(盤庚)은 수도를 은(殷)지역으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상나라를 은나라라고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1세기 중엽 당시 서백후(西伯侯)의 아들인 발(發)에게 나라를 잃고 말았다.


은나라가 멸망하기 전, 서백후는 주왕에게 간언하기를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가지와 잎은 해가 없어도 뿌리는 실상 먼저 끊어진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라 걸왕 때에 있다(殷鑒不遠 在夏後之世) 라고 하였다.  

鑒 은 선례(先例) 본보기 라는 의미로 쓰였으니 殷鑒不遠이란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남의 실패가 바로 가까이에 있음 을 뜻한다.

  

  


일거양득 (一擧兩得)

一(한 일) 擧(들 거) 兩(두 량) 得(얻을 득)

모두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의 혜왕은 초(楚)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에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다음과 같은 고사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변장자(卞莊子)가 범을 찌르려고 하자 여관의 아이가 만류하면서 지금 두 범이 서로 소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는데,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마리의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될 것입니다(一擧必有雙虎之名) 라고 말했답니다. 


조금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이 다치고 작은 놈이 죽자,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은 공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一擧果有雙虎之功).  


一擧兩得 은 一石二鳥, 一箭雙(일전쌍조: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 와 같은 표현이며, 모두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을 뜻한다.

  

  


시불가실 (時不可失)

時(때 시) 不(아닐 불) 可(옳을 가) 失(잃을 실)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  


상서(尙書) 태서(泰誓)편은 주(周)나라 서백후의 아들인 발(發)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함에 임하여 군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소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대 무리들을 거느리고 하늘의 벌하심을 이루려는 것이오. 


하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그대로 따르시오. 그대들은 바라건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爾尙弼予一人, 永淸四海). 때가 되었으니 잃어서는 아니 되오(時哉弗可失)!  


기원전 222년, 서백후 문왕(文王)의 아들인 발(發)은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중국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주나라 무왕(武王)인 것이다. 


時不可失이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며, 물실호기(勿失好機) 와 비슷한 표현이다. 

  


  

공성계 (空城計)

空(빌 공) 城(성 성) 計(꾀 계)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준비가 전혀 없는 것을 비유한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텅빈 성(城)에 속아 넘어간 조조(曹操) 휘하의 한 장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제갈량은 양평이라는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두고, 대장군 위연(魏延) 등을 파견하여 조조의 군대를 공격케 하였다. 때문에 성 안에는 병들고 약한 소수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 때, 조조의 군대가 대도독 사마의(司馬懿)의 통솔로 양평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성을 지키고 있던 유비의 군사들은 이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군사들을 시켜 성문을 활짝 열고, 성문 입구와 길을 청소하여 사마의를 영접하는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자신은 누대(樓臺)에 올라가 조용히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고 성 앞에 당도하여 이러한 상황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 그는 성 안에 이미 복병이 두고 자신을 유인하려는 제갈량의 속임수라고 생각하고, 곧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空城計 란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준비가 전혀 없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명경고현 (明鏡高懸)

明(밝을 명) 鏡(거울 경) 高(높을 고) 懸(매달 현)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이라는 뜻으로 시비를 분명하게 따져 판단하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법관을 비유.

  

한(漢)나라 때의 괴담이나 전설, 일화 등을 수록한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에는 진(秦)나라 때의 신기한 거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나라의 함양(咸陽)궁에 소장된 진귀한 보물들 가운데, 너비가 4척, 높이가 5척 9촌으로 앞뒷면이 모두 밝게 빛나는 거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거울에는 거꾸로 선 모습이 나타나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비춰보면 그 사람의 오장(五臟)이 나타났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비추면 환부가 나타났으며, 이 거울은 사람의 나쁜 마음까지도 비춰 보였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이 거울을 이용하여 궁궐안의 모든 사람들의 충성심을 비춰 보았다. 심장이나 쓸개가 급히 뛰는 사람을 발견하면, 진시황은 즉각 그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 거울은 진나라 말기, 유방(劉邦)이 함양을 공격하던 혼란속에서 그만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明鏡高懸은 진경고현(秦鏡高懸) 이라고도 하며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 이라는 뜻이다. 이는 시비를 분명하게 따져 판단하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법관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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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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