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이율 (不寒而慄)
不(아닐 불) 寒(찰 한) 而(말 이을 이) 慄(떨 률)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
사기(史記) 혹리(酷吏)열전에는 혹독한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중앙 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다. 당시,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은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과 도위를 지내다가, 남양 태수를 거쳐 다시 정양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남양태수로 재임하면서, 도위(都尉)였던 영성(寧成)의 일가를 죽인 바 있어, 이미 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정양 태수로 부임하자, 정양군내의 호족세력을 평정한 후, 2백여명의 범죄자들을 체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을 죄수 탈옥 기도죄로 구속하였다. 의종은 이 자들은 사형수들을 탈옥시키려 하였다 라고 판결하고, 그 날 중으로 4백여 명을 전원 죽였다.
이후 군내의 호족들과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其後郡中不寒而慄), 교활한 자들은 알아서 관리에게 협력하여 공무를 도왔다.
불한이율(不寒而慄) 은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불치하문 (不恥下問)
不(아닐 불) 恥(부끄러워할 치) 下(아래 하) 問(물을 문)
분발하여 학문을 함에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하는 정신.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는 배움의 태도를 일깨워주는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위(衛)나라 대부(大夫)였던 공어(孔 )는 매우 겸손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칭송을 받았다.
공어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호학(好學)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문(文) 이라는 봉호(封號)를 하사하였다.
당시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위나라의 자공(子貢)은, 공어에게는 잘못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만큼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자공은 스승인 공자에게 공어의 시호(諡號)는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 합니까? 라고 물었다.
공자는 말하길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敏而好學, 不恥下問). 그래서 그를 문(文)이라 하였던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은 하문불치(下問不恥)라고도 하는데, 이는 분발하여 학문을 함에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하는 정신을 형용한 말이다.
인금구망 (人琴俱亡)
人(사람 인) 琴(거문고 금) 俱(함께 구) 亡(죽을 망)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마음.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편에는 죽음에 대한 애상(哀傷)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동진(東晋)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는데,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 라고 물으면서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형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였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다.
그러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자요는 이를 내던지며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 하면서 한참동안이나 애통하였다.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인금구망(人琴俱亡) 은 인금병절(人琴幷絶) 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을 비유한 말이다.
백미 (白眉)
白(흰 백) 眉(눈썹 미)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 을 일컫는 말.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권39에는 마씨(馬氏) 5형제에 관한 기록이 있다.
마량(馬良:서기187-222년)은 양양(襄陽) 의성(宜城) 사람으로서 자(字)는 계상(季常)이었는데, 동네에서는 흔히들 마씨 다섯 형제 중, 흰눈썹이 가장 낫다네(馬氏五常, 白眉崔良) 라고 하였다.
마량과 읍참마속(泣斬馬謖) 이라는 성어(成語)의 주인공인 마속 등 다섯 형제는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들의 자(字)에 모두 常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오상(五常) 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들 형제 중 맏이인 마량의 눈썹에는 흰털이 나있었는데, 그의 재능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흰
눈썹이 최고 라고 하였던 것이다.
유비(劉備)는 촉(蜀)땅에 들어와서 마량을 좌장군연(左將軍 )으로 임명하였으며, 제위(帝位)에 즉위한 후에는 그를 시중(侍中)에 등용하였다. 마량은 유비를 수행하여 이릉(夷陵)전투에 참가하였다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백미(白眉) 란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 을 일컫는 말이다.
다다익선 (多多益善)
多(많을 다) 多(많을 다) 益(더할 익) 善(착할 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에는 한신(韓信)에 관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진(秦)나라 말기, 전국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항하는 세력들이 봉기하였다. 한신은 먼저 항우(項羽)의 휘하로 들어갔으나 중용(重用)되지 못하자, 다시 유방(劉邦)의 휘하로 옮겼다.
유방은 황제가 되자, 한신의 병권(兵權)을 없애고, 그가 모반을 꾀하였다고 하여 그를 체포하도록 하였다.
얼마 후 체포된 한신에게 유방은 그대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라고 묻자, 한신은 폐하께서는 불과 10만의 병마를 통솔하는 장수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유방이 다시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한가? 라고 물었다. 한신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臣多多而益善耳). 라고 하였다.
이에 유방은 이처럼 용병(用兵)에 뛰어난 그대가 어찌하여 나에게 붙잡히게 되었는가? 라고 묻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폐하는 장병을 거느리는 장수는 될 수 없으나 장수들을 이끄는 장수는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폐하께 잡히게된 까닭입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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