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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01 고사성어 - 사분오열, 여취선여, 학립계군, 주중적국, 갈택이어



사분오열 (四分五裂)

四(넉 사) 分(나눌 분) 五(다섯 오) 裂(찢을 열)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지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다. 전국시대,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衛) 진(秦) 등 7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절. 진나라는 상앙(商 )의 변법(變法)을 시행하여 국력이 증강되자 천하를 통일하고자 빈번히 주변 나라들을 침공하였다. 


이에 6국은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으로 진나라의 계획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진나라는 장의(張儀)의 연횡책(連橫策)을 채용하고 그를 재상(宰相)으로 임명하여 6국을 돌며 유세하도록 하였다. 장의는 먼저 위(魏)나라 왕을 설득하였다.


위나라는 남으로 초나라에, 동으로는 제나라, 서쪽으로는 한(韓)나라, 북으로는 조나라와 접해 있습니다. 만약 주위의 나라들과 관계가 나빠져서 그들이 공격해 온다면 사방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위나라는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렇게 되면 나라는 사분오열될 것이니, 차리리 진나라에 의지하여 보장받는게 나을 것입니다.  


장의는 6국에서 이해와 유혹, 협박 등으로 그들의 합종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다.  


사분오열(四分五裂) 이란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짐 을 뜻한다. 





여취선여 (予取先與)

予(나 여) 取(취할 취) 先(먼저 선) 與(줄 여)

무언가를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다. 진(晋)나라에 지백(知伯)이라는 귀족이 있었다. 그는 또 다른 귀족인 위환자(魏桓子)에게 영토를 강요하였다. 


위환자는 후에 위나라의 선조(先祖)가 된 사람인데, 그도 당시에 다른 사람들의 영토를 차지하려 하였으므로, 지백의 요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에 임장(任章)이라는 사람이 위환자에게 지백의 요구대로 땅을 떼어 주도록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백에게 땅을 떼어준다면, 지백은 자신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자만하여 적을 얕보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들도 이러한 피해를 입게 될까봐 단결하여 공동으로 지백을 상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백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서(周書)에서는 상대를 물리치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키워주고,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게 미리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故予之) 라고 했습니다. 위환자는 임장의 말대로 하였다. 지백은 과연 교만과 횡포, 그리고 탐욕 때문에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불렀다.  


여취선여(予取先與) 란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함을 뜻한다

  




학립계군 (鶴立鷄)

鶴(학 학) 立(설 립) 鷄(닭 계) (무리 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뜻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 康)의 아들 혜연조( 延祖)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延祖卓卓如野鶴之在鷄 ). 


학립계군(鶴立鷄群)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비유한 말이다. 




주중적국 (舟中敵國)

舟(배 주) 中(가운데 중) 敵(원수 적) 國(나라 국)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하다.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다. 전국(戰國)시대, 위(魏)나라 장군인 오기(吳起)는 문후가 죽자 그의 아들인 무후(武侯)를 계속 섬기게 되었다. 


느 날, 무후가 서하(西河)에 배를 타고 가다 중간쯤에 이르자 뒤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라고 했다.


그러자 오기는 이처럼 대답하였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彭 湖)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아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임금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난 함에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우리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舟中之人盡爲敵國也). 


주중적국(舟中敵國)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을 비유한 말이다. 

  




갈택이어 (竭澤而漁)

竭(다할 갈) 澤(못 택) 而(말 이을 이) 漁(고기 잡을 어)

멀리 내다 보지 못하고 눈 앞의 이익만을 꾀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편의 이야기다. 춘추시기, 진(晋)나라 문공(文公)은 기원전 632년, 성복(城 )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 군대와 격전을 벌였다. 


당시 진나라는 병력이 열세였으므로, 진문공은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호언(狐偃)이라는 자가 속임수를 써보자는 의견을 냈다.


진문공은 호언의 계책을 옹계(雍季)에게 알려주며, 그의 견해를 물었다. 옹계도 하는 수없이 동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연못의 물을 말려서 고기를 잡고, 숲을 태워서 사냥을 한다면 못잡을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듬해에는 잡을 고기나 짐승이 없게 될 것입니다. 속이는 계책도 이러합니다. 비록 어쩌다 한번은 성공할 지 모르지만 다음 번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먼 앞날을 내다보는 계책이 아닙니다.


갈택이어(竭澤而漁) 란 멀리 내다 보지 못하고 눈 앞의 이익만을 꾀함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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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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